동물권단체 케어가 검은 개의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한 ‘토리’. 케어 제공
유기견이 청와대에 들어가 살게 되면 어떨까?
국내 주요 동물단체들이 <한겨레>와 함께 대선 후보들에게 ‘유기견 입양’을 요청하는 캠페인을 24일 시작했다. 청와대에 살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는 반려동물 ‘퍼스트도그’(first dog)를 유기견으로 하자는 것이다.
퍼스트도그는 ‘퍼스트레이디’에 빗대어 대통령 가족과 함께 사는 개를 부르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보’와 ‘서니’, 빌 클린턴 대통령의 ‘버디’가 유명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퍼스트도그 ‘팔라’는 사후에 대통령 무덤 가까이 묻히고 워싱턴디시의 기념관에 동상이 함께 서 있을 정도다.
반면 한국의 퍼스트도그는 대통령이 선물로 받았다가 퇴임 뒤 동물원이나 종견장으로 보내지는 ‘불행한’ 신세였다. 북한에서 보낸 풍산개는 김대중 전 대통령 퇴임 뒤 서울동물원으로 갔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부 진돗개는 혈통보존단체의 종견장으로 보내져 집단 사육됐다.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는 “대통령의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대통령 가족의 손길로 보살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며 “다른 입양과 마찬가지로 엄격한 사전 심사와 사후 모니터링을 전제하고 진행한다”고 말했다. 동물단체들은 대선 후보들이 직접 유기견보호센터를 방문해 ‘퍼스트도그 후보견’을 만나 친숙해지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새 대통령이 유기견을 청와대 개로 입양하면 동물 보호의 상징적 조처가 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 2008년 동물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유기견 입양을 권유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 제안을 받아들인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세계 처음인 셈이다.
이날 국내 주요 동물단체 세 곳은 각각 ‘퍼스트도그 후보’를 제안했다. 케어는 검은 개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자 ‘토리’를 추천했고, 동물자유연대는 세대간 인식 차이가 큰 개고기 문제를 환기하고자 ‘복남이’를,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동물 학대를 좁게 정의하고 있는 동물보호법을 개정해달라며 ‘뒷발이’를 퍼스트도그로 삼아달라고 요청했다. 관심 있는 독자는 포털 다음의 스토리펀딩 ‘대한민국 유기견을 퍼스트도그로’에서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다. <한겨레>와 동물단체는 후보들에게 청와대에 유기견 입양을 검토해달라는 요청서를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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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무섭지 않은 검은 개 ‘토리’ 케어는 2년 전 구조된 검은 개 ‘토리’를 추천했다. 케어 쪽은 “입양센터에 입소한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입양 대기 중이다. 옆자리 친구들은 새 가족을 만났지만 토리만 혼자 남았다”고 말했다. 토리는 온몸이 검은 털로 덮인 소위 ‘못생긴’ 개다. 입양자들이 순백색에 검은 눈, 하늘하늘한 멋진 털과 새까만 코의 ‘예쁜 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케어는 “과거 인종차별이 있었듯 개에 대한 우리 시선도 마찬가지”라며 “미국의 사진작가 프레드 레비는 이런 편견을 바꾸기 위해 어두운 배경에서 검은 개의 사진을 찍는 ‘검은 개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토리가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건 2015년 여름이었다. 경기 남양주 한 폐가에서 60㎝밖에 안 되는 목줄에 묶여 있었다. 빈집에 개가 몇마리 살고 있었고, 한 할아버지의 학대로 하나둘 죽어갔다. 케어 활동가들은 개의 소유권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고 검은 개를 구조했다. 치료를 받고 입양센터에서 단장을 받으니 ‘밤톨’처럼 귀여웠고, 그때 ‘토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박소연 대표는 “검은색은 다른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대통령이 개인의 행복이 아닌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검은 개 토리를 뉴스를 통해 전 국민이 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동물자유연대가 청와대에 입양을 요청한 진도 믹스(잡종) ‘복남이’. 망치로 머리를 맞아 부었지만, 치료를 받고 회복됐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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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살아난 ‘복남이’ 동물자유연대는 진도 믹스(진돗개 잡종) ‘복남이’를 추천했다. 2011년 봄 서울의 한 노인정에서 여동생 ‘복희’와 함께 살았다. 딱히 챙겨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노인정을 찾는 어르신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던 네 살 수컷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술안주로 복남이가 낙점됐고, 망치로 머리와 몸을 두들겨 맞았다. 옆 건물 유치원 교사가 참혹한 광경을 보고 신고했고, 구조된 복남이는 오른쪽 두개골과 안구가 함몰된 상태였다.
진돗개는 반려동물로 가장 많이 길러지면서 가장 많이 식용으로 사용되는 개다. 복남이 사건은 세대별로 상반된 시각을 드러낸다. 젊은층에게 동물 학대인 행동이 일부 노년층에게는 거리낌없는 일로 비친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개를 길러 잡아먹어도 된다는 관습적인 생각에 아직도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난다”며 “세대가 바뀌면서 개 식용과 동물 학대 행위는 점차 줄겠지만, 정부는 개 식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단계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방치되어 뒷발을 물어뜯는 자해 행동을 하다 동물보호단체 카라에 의해 구조된 ‘뒷발이’. 구조 직후의 모습이다. 카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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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다리 물어뜯는 ‘뒷발이’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뒷발이’의 입양을 제안했다. 지난해 경기 용인에서 구조된 이 개는 뒷다리에 유혈이 낭자한데도 보호자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었다. 카라가 구조해 수술을 한 뒤 상처를 봉합했다. 그러나 뒷발이는 뒷다리 물어뜯기를 멈추지 않았다. 카라는 “피 흘리는 모습에 할아버지(보호자)가 관심을 가지자 사랑받기 위한 행동으로 굳어졌던 것 같다”고 밝혔다. 카라에 온 뒷발이는 약물치료와 함께 산책하는 등 ‘마음’을 치료했고, 자해 성향은 많이 호전됐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평생 목줄에 매여 한 평의 공간에 살게 놔두지만, 그런 행위가 마음의 상처를 주는 동물학대라는 인식은 부족하다”며 “동물보호법상 ‘방치’를 동물 학대로 규정하고 과태료 부과 등을 통해, 만연된 동물 학대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