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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버려진 퍼스트 도그…청와대 개들은 다 어디 갔을까

등록 2017-05-16 10:31수정 2017-05-16 10:42

이승만은 망명처로 데려가고, 김대중의 풍산개는 동물원으로
이명박은 청돌이 데리고 사저로, 박근혜의 진돗개는 뿔뿔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이 선물한 풍산개 ‘우리’와 ‘두리’의 2008년 11월 모습. 개는 사람과 가까이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이 선물한 풍산개 ‘우리’와 ‘두리’의 2008년 11월 모습. 개는 사람과 가까이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역대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 살던 개들은 대부분 ‘진돗개’였다. 대다수는 ‘선물’로 받은 것들이다.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고, 언론의 조명을 받았지만, 개들의 말로는 행복하지 않았다.

동물단체 동물자유연대, 카라, 케어와 <한겨레>가 지난달부터 벌인 ‘유기견을 대한민국 퍼스트 도그로!’ 캠페인은 청와대 개들이 더는 불행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기본적으로는 새 대통령이 유기견을 청와대에 입양해 동물보호 뜻을 전파하자는 취지이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입양된 반려견을 대통령 가족이 잘 돌보도록 감시하자는 뜻도 있다.

‘퍼스트 도그’는 백악관이나 청와대에서 대통령 가족과 함께 사는 반려견을 이른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반려견 ‘팔라’는 대중들에게 ‘퍼스트 도그’라는 단어를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 팔라는 루스벨트 무덤 가까이 묻히고 대통령기념관에 함께 동상이 서 있을 정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보’와 ‘서니’, 빌 클린턴 대통령의 ‘버디’도 유명하다. 모두 대통령 가족과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갔다는 게 공통점이다.

일방적 선물과 무차별 번식

반면 한국의 역대 퍼스트 도그들은 ‘일방적인 선물’과 ‘지속적인 공급’ 그리고 ‘무차별적 번식’이 특징이었다.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터라 공식적인 기록조차 찾을 수 없다.

이승만 대통령의 개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해피’라는 이름의 스패니얼 개를 길렀으며 1960년 미국 하와이로 망명한 이듬해 이 개를 데려갔다. 당시 <동아일보>는 하와이 지역신문을 인용해 ‘이승만씨, 애견 극비리 하와이 망명’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형 퍼스트 도그’ 관행의 원조였다. 많은 개가 선물됐고 청와대를 드나들었다. 스피츠 ‘방울이’는 언론에 자주 조명됐지만, 대다수 개들은 그렇지 않았다. 1975년에는 진도군에서 선물한 ‘진도’도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 또한 진도군에서 선물한 ‘송이’와 ‘서리’를 키웠다. 노태우 대통령은 요크셔테리어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풍산개 한 쌍을 선물했다. 북한에서 보낼 때 이름은 ‘자주’와 ‘단결’이었으나, 청와대는 이름을 ‘우리’와 ‘두리’로 바꾸었다. 정치적 부담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순종 풍산개는 찾아보기 힘든 귀한 개였다. 청와대는 그해 11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우리와 두리를 보내 일반에 공개했다. 둘은 각각 2013년 봄과 가을 세상을 뜰 때까지 전국에 자손을 퍼뜨렸다. 삼대에 걸쳐 100마리 이상의 풍산개가 탄생해 전국에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12일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풍산개 ‘퐁이’와 ‘안써니’를 사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와 두리의 후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랑한 퍼스트 도그 ‘청돌이’. 퇴임 뒤 사저로 데려갔다.  청와대 페이스북 갈무리
이명박 대통령이 사랑한 퍼스트 도그 ‘청돌이’. 퇴임 뒤 사저로 데려갔다. 청와대 페이스북 갈무리
이명박 대통령한테도 ‘개 선물’이 전달됐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2005년 12월 진도군은 진돗개 8마리를 보냈다. 대부분 일반인에게 분양되고 일부는 서울대공원에 보내졌다. 지금도 한 마리가 ‘빵순이’라는 이름으로 서울대공원에 머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유기 논란’을 일으키며 퍼스트 도그 ‘새롬이’와 ‘희망이’가 소속 종견장으로 보내진 ‘한국진도개혈통보존협회’와 청와대의 교류도 이명박 대통령 때 시작됐다. 한홍율 전 서울대 교수는 <한겨레>에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개고기 먹는 나라라는 악명이 높아서 정부가 협회를 조직해 진돗개 퍼레이드를 벌인 게 이 협회의 원조”라고 회고했다. 현재는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경기 광주에서 40마리 규모의 종견장을 운영한다.

비영리단체인 진도개혈통보존협회는 진돗개 분양을 통해 권력기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진돗개 ‘진순이’를 분양했다. 2008년 진순이가 새끼 7마리를 낳았고, 혈통보존협회를 통해 전국 지자체에 분양됐다. 이 중 청와대에 남은 ‘청돌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에스엔에스(SNS) 스타’가 된 퍼스트 도그였다. 퇴임 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청돌이만 서울 논현동 사저에 데려갔다. 진순이는 다시 혈통보존협회의 종견장으로 보내졌다. 혈통보존협회는 “진순이와 둘리가 협회에 있다. 특히 둘리는 전형적인 진돗개 토종 느낌이 나서 진돗개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좋아한다. 대통령이 키운 개라는 걸 밝히지 않아 대부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 도그 ‘새롬이’와 ‘희망이’가 2015년 8월 낳은 새끼들을 안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퍼스트 도그 ‘새롬이’와 ‘희망이’가 2015년 8월 낳은 새끼들을 안고 있다.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 취임 때에는 취임준비위원회가 ‘영호남 화합’의 상징으로 진도에서 진돗개를 가져오는 그림을 만들었다. 삼성동 주민이 선물한 것처럼 ‘연출’됐지만, 사실은 진돗개 농장주 김기용(56)씨를 통해 가져온 것이었다. 청와대에 들어간 새롬이와 희망이는 두 차례에 걸쳐 12마리를 낳았다.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와 일반인에게 분양됐다.

일방적인 ‘선물’과 무분별한 ‘번식’은 생명의 무게를 가볍게 한다. 거저 얻은 동물은 쉽게 집단 사육되는 동물원과 종견장으로 보내진다. 개의 유전자에 박힌 사람과의 교감과 동물복지는 종종 무시됐다. 지방정부의 수장인 도지사, 시장에게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2015년 행정자치부가 전국 지자체와 청사, 사업소, 공원 등에서 사육하는 개, 말, 새 등이 21종 185마리라고 밝혔다. 진돗개 전문가인 윤희본씨는 “개는 사람 손을 떠나는 순간 개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선물하거나 동물원 등으로 보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토리’의 미래

퍼스트 도그는 대통령의 ‘사적인 일상’과 ‘공적인 정치’ 사이에 존재한다. 대통령 가족과 함께 사는 가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조명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때문에 역대 퍼스트 도그들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치적인 상징물로 이용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퍼스트 도그를 사생활에 가둬 보호하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면, 공적인 정치 영역에서라도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이용만 당하고 방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동물단체는 이번 대선 기간에 대선 후보에게 검은 개 ‘토리’, 진도믹스 ‘복남이’, 방치됐다 구조된 ‘뒷발이’ 등의 사연을 전하면서 유기견 입양을 요청했다. 문재인 대통령 쪽은 선거운동 중인 지난 5일 ‘토리’를 입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토리는 동물권단체 ‘케어’에 구조됐지만, 검은 개를 싫어하는 편견 때문에 입양되지 않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남 양산의 자택에서 풍산개 ‘마루’를 기르고 있다. 토리가 입양되면 마루와 함께 퍼스트 도그가 될 전망이다.(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특정 개가 퍼스트 도그로 선정되는 게 아니다. 청와대에 사는 개는 퍼스트 도그다.)

새 대통령의 퍼스트 도그들은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 청와대는 14일 “토리를 입양하겠다”며 “입양에 대한 절차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토리는 청와대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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