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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토착 나무·풀씨 섞은 흙반죽’ 뿌렸더니 짜~안!

등록 2005-11-22 18:38수정 2005-11-23 13:53

도로 건너편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 본 대지산. 생태복원된 절개면 아래 쪽에 건너편 아파트의 그림자가 걸려 있다.
도로 건너편 고층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 본 대지산. 생태복원된 절개면 아래 쪽에 건너편 아파트의 그림자가 걸려 있다.
용인 죽전 ‘대지산 살리기’ 어떻게?

아파트 옆 도로에서 시작된 등산로를 한 5분쯤 걸어 올라갔을까. 더 오를 곳이 없었다. 산의 높이는 주위를 둘러싼 고층아파트들 보다도 낮았다. 아파트와 도로가 산자락을 모두 깎아낸 바람에 면적도 다 펼쳐놓는다 해도 축구장 4~5개 합한 정도 밖에 안될 듯한 조그만 동산이었다. 산 아래 쪽을 한바퀴 둘러 봤다. 어느 방향을 보아도 아파트만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겹겹이 이어져 있었다. 산은 그 회색의 콘크리트 바다에 떠 있는 녹색 섬이었다. 산의 이름은 대지산이다.

용인시 죽전지구 아파트촌 한 가운데 있는 대지산은 몇 년 전 송두리째 사라질 뻔했다. 죽전지구 택지개발사업을 벌이는 토지공사가 인근의 다른 야산들과 마찬가지로 밀어버리고 아파트 터를 닦으려 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나섰다. 2000년 7월 ‘대지산 살리기 운동’을 선언한 주민들은 대지산 일대를 그린벨트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을 냈다. 이어 ‘대지산 땅 한평 사기’ 모금을 시작해 석달여 만에 256명의 참여로 2000여만원을 모았다. 이 돈으로 정상 주변 땅 100평을 매입하면서 대지산 보존을 위한 발판이 마련된 듯 했다.

하지만 관련 기관에서는 꿈쩍도 않았다. 건설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주민들이 매입한 땅까지 강제수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힘입은 토지공사는 2001년 2월 대지산 자락에서 벌목을 시작했다. 합법적 수단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상황에서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막아서는 일 밖에 없었다.

환경단체가 맨 앞에 나섰다. 2001년 4월 29일 환경정의의 한 활동가가 대지산 정상의 한 상수리나무에 기어 올라갔다. 그리곤 “대지산 보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내려오지 않겠다”며 나무 위 시위에 들어갔다. 나무 위에서 버틴 지 열이틀째, 이색시위가 불러온 여론의 뜨거운 관심에 완강해 보이던 벽이 허물어졌다. 건교부가 대지산 보존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처음부터 쑥·패랭이 쑤욱~ 1년 지나자
작은 키나무들 자라고… 2년 지나자 듬성듬성 숲모습

위기는 넘겼지만 대지산의 상처는 이미 깊었다. 도로 개설 등으로 깎여 나간 산자락은 벌건 절개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민들의 진짜 대지산 살리기는 그때부터였다. 주민들과 환경단체, 토지공사는 토지공사의 택지지구 자연공원 조성사업을 통해 대지산을 살리기로 했다. 이렇게 해 2002년 시작된 대지산 자연공원 조성사업은 지난 3월에야 마무리됐다.

공원 조성사업을 통해 대지산에 설치된 것은 탐방로와 야생화밭, 수생 생물을 위한 연못, ‘곤충호텔’로 이름 지은 곤충의 번식을 돕는 시설, 벤치와 정자, 안내판과 가로등 정도가 전부다. 다른 자연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운동기구들도 가급적 시설물 설치를 줄이자는 대다수 주민의 의견에 따라 설치되지 않았다. 서두르면 몇 달 안에 모두 끝내지 못할 이유가 없는 사업 규모였다. 그럼에도 왜 공원 조성사업은 3년 이상이나 끌었을까?

용인환경정의 상근 활동가 고정근씨는 “대지산이 자연공원으로 되살아나 잘 보존되기 위해서는 조성의 과정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공원의 설계에서 시공에 이르는 각 단계마다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고 주민들을 적극 참여시킨 가운데 진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작업에는 주민들이 팔을 걷어부쳤다. 주민들은 자녀의 손을 잡고 등반로에 나무조각을 깔고, 야생화밭에 꽃을 심고, 곤충들의 번식지를 만드는 등의 작업에 즐거이 참여했다.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 속에 진행된 공원 조성사업은 성공이었다. 농림부와 산림청, 산지보전협회가 공동 주최한 제1회 우수 산림생태복원지대회에서 최우수 사례로 선정돼 지난 18일 대상까지 받았다. 상을 받은 데는 가장 훼손이 심한 절개면 지역의 복원을 맡은 업체의 역할이 컸다. 시공업체인 현우그린은 2002년 절개면에 대지산에서 자라는 다양한 나무와 풀들의 씨앗을 대지산 토양과 흡사하게 만든 기반토양에 섞어 뿌려 붙이는 생태복원기술을 적용했다. 김경훈 현우그린연구소장은 “나뭇가지 조각과 썪은 뿌리 등이 뒤섞여있는 토양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 기반토양에 대지산 훼손지 주변에 버려진 나뭇가지와 뿌리 등을 거둬 파쇄해 넣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생태복원기술을 적용한 결과 대지산 복원지에서는 단조로운 식생을 보이는 다른 복원지와 달리 처음부터 쑥, 패랭이, 끈끈이대나물, 벌노랑이 등 다양한 풀들이 앞다퉈 올라왔다. 1년이 지나자 흙 속에 묻혀 있던 참싸리, 낭아초 등 작은키나무들의 씨앗들이 싹이 터 자라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나자 절개면에서는 제법 수풀을 이룬 작은키나무들 가운데 자귀나무, 붉나무, 단풍나무 등의 큰키나무들까지 듬성듬성 솟아나 숲의 모습을 갖춰 갔다. 대지산은 이렇게 되살아난 것이었다.

상수리나무 위 시위를 벌였던 박용신 환경정의 토지정의팀장은 “대지산이 살아남은 것은 대지산을 사랑하는 주민의 노력과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대지산의 성공이 우리 주변의 생활권 녹지 보존운동을 더욱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용인/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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