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하봉 일대부터 도착지점까지 너비 55미터, 길이 2850미터의 웅장한 슬로프가 들어선 자리엔 수만 그루의 천연림이 파헤쳐져 맨땅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하봉 정상 부근의 슬로프 출발지점.
▶ 가리왕산에 들어선 알파인스키 활강경기장은 평창겨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순간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천년 주목이 우거진 천혜의 숲을 마구 훼손해가며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옛 모습으로 복원하겠다는 정부와 강원도의 계획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자칫 평창겨울올림픽을 환경파괴의 대명사로 기억되게끔 만들지도 모를 복원계획의 전망에 대해 짚어봤다.
인류의 대잔치라는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을 며칠 앞둔 2월 초. 올림픽 스키 종목 활강경기가 열릴 가리왕산 스키장 일대는 아름다운 순백의 설원으로 변해 있다. 각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시속 140㎞ 이상의 속도로 내달릴 스키 활강경기의 출발지점인 하봉(1380m)부터 결승선 도착지점(545m)까지의 슬로프 주변은 사방이 온통 눈천지다. 슬로프에 본격적으로 인공 눈을 뿌리기 전인 지난해 11월 중순 이곳을 찾았을 때 두 눈으로 지켜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당시 하봉 일대부터 도착지점까지 너비 55미터 길이 2850미터의 웅장한 슬로프가 들어선 자리 인근엔 맨땅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오랜 세월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온 수만 그루의 천연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얀 눈에 뒤덮인,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가리왕산의 맨살이다.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일대 184만㎡에 총건설비 2030억원을 들여 새로 지은 활강경기장의 ‘수명’은 놀랍게도 아무리 길게 봐야 한달 남짓. 그나마 실제 사용 일수는 단 8일. 겨울올림픽 6일간(2월), 패럴림픽 2일간(3월)의 경기가 끝나면 다시 해체돼 사라지는 게 가리왕산 알파인스키 경기장의 운명이다. 경기장이 들어선 곳이 2013년까지만 해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던 천혜의 숲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올림픽 뒤 원상 복원을 전제로 엄청난 돈을 들여 지은 일회용 경기장이란 얘기다.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일대에 수만 그루의 나무를 베어내고 슬로프와 작업도로를 냈다.
생태적 가치 높은 희귀식물의 천국
당장은 모든 눈길이 올림픽 개막에 쏠려 있긴 해도, 올림픽 이후 가리왕산 복원을 위한 준비 작업도 일단 시동을 건 상태다. 지난해 12월8일, 환경부·산림청 등 관계부처와 강원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가리왕산 생태복원추진단’은 올림픽 이후 곤돌라를 폐쇄하고 슬로프 전 지역을 복원하는 내용의 복원안을 최종확정했다. 앞서 산림청은 2012년 6월 가리왕산을 평창겨울올림픽 활강경기장 부지로 확정하면서, 올림픽이 끝나면 산림을 복원해 다시 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 중봉과 하봉 일대 78헥타르를 산림법상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해제한 바 있다.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겨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이후, 가리왕산 스키경기장은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끔찍한 환경파괴라는 반대 목소리가 드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리왕산은 인공 스키경기장이 도저히 들어설 수 없는 천혜의 터전이었다. 가리왕산은 왕사스래, 주목, 분비나무, 개벚지나무, 사시나무, 땃두릅나무, 만년석송, 만병초 등의 수목들과 금강초롱, 금강제비꽃, 산작약, 노랑무늬붓꽃 등의 다양한 풀꽃이 즐비한 희귀식물의 천국이다. 특히 가리왕산은 한국의 대표적인 풍혈지대로,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땅속에서 불어오는 독특한 지층구조를 간직하고 있다. 사계절 내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덕택에 종자은행으로 불릴 만큼 생태적 가치가 아주 높은 지역이다. 이곳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의 사실상 유일한 자생지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연유로 가리왕산은 산림법상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엄격히 금지됐을뿐더러, 두릅이나 곰취 같은 산나물조차도 함부로 캘 수 없을 만큼 인간의 손길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돼왔다. 애써 지켜온 천혜의 자연을 무참히 파괴하는 게 과연 올바르냐는 비난이 거센 배경이다.
더군다나 가리왕산 스키경기장은 애초부터 수익성 면에서도 낙제점을 면하기 힘들었다. 올림픽이 끝난 뒤 사후 활용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국제스키연맹(FIS)이 제시하는 경기장 조건은 ‘표고차(출발지점과 결승지점의 고도차) 800m 이상, 평균 경사도 17도 이상, 슬로프 연장 길이 3㎞ 이상’. 문제는 이 조건을 갖춘 가리왕산 스키경기장은 일반인이 도저히 이용할 수 없는 수준의 슬로프란 점이다. 심지어 국내 스키장 대부분의 수익성도 예전만 못한 상태다. 당장 인근의 태백 오투리조트만 해도 부도 사태를 겪은 뒤 간신히 다시 문을 연 처지다. 가리왕산 스키경기장이 처음부터 문제투성이였음을 생생하게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천혜의 울창한 산림을 자랑했던 가리왕산의 예전 모습을 과연 되찾을 수 있을까? 정부와 강원도가 약속한 가리왕산 생태복원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매우 안타깝게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키장 착공 이전에 이미 구체적인 복원계획이 마련됐어야 하나, 사실상 정부와 강원도의 움직임은 전무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복원에 소요되는 예산에 대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건설비용에 맞먹는 막대한 규모의 복원 예산을 두고, 중앙정부와 강원도가 서로 상대방에게 공을 미루는 폭탄 돌리기로 일관할 뿐이다.
숙암리 슬로프 도착지점 부근의 활강경기 관람시설.
스키장 건설을 위해 훼손되기 이전의 가리왕산은 왕사스래, 주목, 분비나무, 개벚지나무, 사시나무, 땃두릅나무, 만년석송, 만병초 등이 즐비한 희귀식물의 천국이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가리왕산에 서식하는 만병초. 2011년에 촬영한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부, IOC의 ‘어젠다 2020’도 거부
가리왕산 복원 작업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선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1996년 겨울유니버시아드로 훼손된 덕유산국립공원(무주리조트), 1999년 겨울아시안게임으로 마구 파헤쳐진 발왕산산림보호구역(용평리조트)이 대표적이다. 두곳 모두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주목 등 오랜 세월 지켜온 천연림이 무참히 훼손됐다. 당시에도 정부는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고 보호 대상 수목을 살리겠다고 공언했으나, 활착률(옮겨 심은 식물들이 제대로 사는 비율)은 극히 낮았다. 옮겨 심은 수목 대부분이 허망하게 죽어버렸다. 공사 단계부터 치밀한 이식 및 복원 계획이 준비되지 못한데다, 전담 조직 등이 작동하지 못한 탓이다. 여러모로 현재의 가리왕산 복원 작업과 닮은꼴이다.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2년 1월 ‘평창동계올림픽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가리왕산 스키장을 밀어붙였다. 국내외에서 숱하게 제시된 합리적 대안들, 그리고 무엇보다 2014년 12월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발표한 ‘어젠다 2020’ 등 몇차례의 궤도 수정 기회가 있었음에도, 정부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2014년 8월 벌목부터 시작된 건설 공사는 총 2030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2월 마무리됐다. 그사이 국제규격 축구장 110개 규모의 산림이 사라진 자리엔 스키 슬로프와 곤돌라, 리프트, 관람시설, 주차장 등이 들어섰다. 단 8일 동안의 ‘잔치’를 위해.
지구상에서 최초의 인공스키장이 들어선 건 1936년. 지난 70년 동안 전세계에서 스키장 수천곳이 문을 열었다. 단 8일 동안 문을 열었다가 자취 없이 사라질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은 인공스키장 역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이제 그토록 기다리던 잔치는 시작됐다. 하지만 화려한 잔치가 끝난 뒤 남는 것은? 평창겨울올림픽을 ‘빛낼’ 가리왕산 활강경기장은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의 대명사로 오래도록 기억되지 않을까.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