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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한겨레가 GS건설 ‘홍보성 기사’를 쓴 이유

등록 2005-12-21 14:21수정 2005-12-21 14:25

서울 반포주공3단지 재건축 사업지역 모습. 오른쪽 아래 푸른색 비닐천막으로 덮여 있는 건물이 지난달 14일 재건축 시공사인 지에스건설의 철거 하도급 업체가 석면 해체·제거 허가도 받지 않고 부수려다 말썽이 된 328동이다. (왼쪽 아래 작은 사진) 반포주공3단지의 한 아파트 거실 천정에 시공돼 있는 석면 함유 건축자재 ‘밤라이트’가 재활용품 수거업자들이 전기 설비를 떼내는 과정에서 일부 부서져 드러나 있다.
서울 반포주공3단지 재건축 사업지역 모습. 오른쪽 아래 푸른색 비닐천막으로 덮여 있는 건물이 지난달 14일 재건축 시공사인 지에스건설의 철거 하도급 업체가 석면 해체·제거 허가도 받지 않고 부수려다 말썽이 된 328동이다. (왼쪽 아래 작은 사진) 반포주공3단지의 한 아파트 거실 천정에 시공돼 있는 석면 함유 건축자재 ‘밤라이트’가 재활용품 수거업자들이 전기 설비를 떼내는 과정에서 일부 부서져 드러나 있다.
매주 수요일에 나가는 <한겨레> 생명면(29면)을 자주 읽어온 독자들 가운데 이번 주 생명면을 펼쳐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얼핏 보기에 그동안 유지해온 지면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마치 특정업체를 홍보해주는 듯한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재건축에 들어간 서울 반포주공3단지 철거문제를 소재로 한 이 기사(석면제거 모범사례 될까)는 기사를 쓴 기자가 보기에도 시공을 맡은 지에스건설에 대한 홍보성 기사로 읽힐 대목이 적지 않다. ‘그 점을 알면서도 그렇게 기사를 쓴 이유는 뭘까’하고 궁금해 할 독자들을 위해 생명면에 못다 쓴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이 기사와 관련해 홍보성 기사가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해오지 않은 것을 보면 독자들은 이미 그 이유를 파악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석면(아스베스토)은 ‘불멸의 물건’이라는 뜻의 그리이스어 이름이 말해주듯 뛰어난 내열성과 내마모성 때문에 산업현장에서 오랫동안 널리 사용돼 왔지만, 잘게 부서져 먼지 상태가 돼서 공기 중에 떠돌다 사람의 폐 속에 들어가 박히면 폐암이나 중피종과 같은 치명적 질환의 원인이 되는 무서운 물질이다. 이런 석면 먼지의 대표적인 발원지는 우리 주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축물 철거 현장이다. 국내에 수입·사용된 석면의 80% 이상이 철거 작업 때 먼지를 풀풀 내며 부서지는 천정재나 단열재 등의 건축자재에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석면먼지 공해 문제의 대부분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철거현장의 석면관리에 있다는 점을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 정부 부처 가운데 석면공해 문제를 풀 수 있는 이 길목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부처는 없다. 노동부가 국민 대중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해’ 물질에 대한 대책이라기 보다는 건물 철거작업을 벌이는 노동자들의 건강이나마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석면 해체·제거 허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이 유일하다.

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에 관련 규정을 마련해 2003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이 ‘석면 해체·제거 허가제도’도 사실상 이름뿐이다. 제도 시행 이후 이 제도에 따라 별도의 석면 해체·제거작업 계획을 세워 노동부의 허가를 받아 이뤄진 건축물 철거작업은 해마다 10건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해마다 전국에서 재개발사업이나 재건축, 증·개축을 위해 수많은 건축물의 철거가 이뤄지고 있 것을 감안하면 노동부의 ‘석면 해체·제거 허가제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노동부의 허가 없이 철거된 수천 수만채의 건축물에 들어 있는 석면함유 자재는 어떻게 처리됐을까? 정부와 공공기관의 건물을 포함해 석면함유 자재가 쓰인 나머지 건물들은 하나 예외없이 석면먼지를 날리며 부서진 것은 물론이다.


석면철거 허가제를 운영하는 것이 노동부이다 보니 철거현장에서 석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데 대한 비난의 화살은 일차적으로 노동부로 쏠리고 있다. 허가제라는 제도를 낳아 놓기만 했을 뿐 제도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할 쪽은 철거현장에서 나오는 석면 먼지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찾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는 환경부와 건설교통부 등이다.

건축물에 쓰인 석면함유 자재가 환경 속에 석면 먼지를 흩뿌리지 않고 안전하게 철거되기 위해서는 우선 철거업체들에게 이들이 철거작업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표준적인 석면제거 작업방법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하지만 건축관련 표준 작업방법을 규정한 건설교통부의 현행 <건축공사 표준시방서>의 해체공사 부분에는 석면 함유 건축자재 해체방법이 언급조차 안돼 있다. 또한 석면 제거작업은 위험도가 높아 작업자의 공임 산정을 위한 별도의 품셈기준이 마련돼 있어야 하지만 ‘건설공사 표준품셈’에도 이 점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석면함유 건축자재 철거공사의 견적을 내고, 발주를 하고, 작업진행에 모델로 삼을 수 있는 기준이 설정돼 있지 않은 것이다. 이 점은 민간업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택공사나 토지공사와 같은 공기업들이 시행하는 철거공사 현장에서까지 석면먼지가 마구 날리는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토지공사 품질관리처 관계자는 “석면이 함유된 슬레이트 지붕과 같은 외장재 철거작업은 지난 7월부터 자체 기준을 만들어서 시행하고 있으나, 외장재에 비해 철거작업이 어려운 석면함유 내장재는 철거 절차와 작업단가 등 기준을 마련하지 못해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때그때 판단해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공사는 아직까지 철거공사의 계획과 발주 단계에서 석면함유 자재의 별도 처리부분을 반영하고 있지 않으며, 최근 철거현장의 석면먼지 발생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현재 건설관리처가 중심이 돼 설계견적, 공사관리 등 철거작업 관련 부서들과 합동으로 외장재인 슬레이트 철거 관련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석면함유 건축물 철거와 관련된 분명한 기준이 없다보니 대부분의 업체들은 현장에서 잘 눈에 띄지 않는 석면함유 내장재는 일단 건물과 함께 부수고, 문제가 되면 사후 처리하는 형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석면공해에 대한 업체들의 이런 방식의 대응은 석면함유 자재를 허가를 받아 분리해 철거하지 않다가 적발되더라도 과태료나 가벼운 벌금을 무는데 그치고, 또 불법 철거를 적발하기 위한 단속마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다. 이런 잘못된 철거관행 속에서는 설사 석면함유 자재를 제대로 철거하려는 철거업체가 있더라도, 이 비용을 감안해 입찰에 응해서는 낙찰을 받을 수 없어 곧 도태될 수밖에 없다.

노동부에서는 이처럼 유명무실한 석면 해체·제거 허가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건설교통부의 협조를 받아 건축법 시행규칙을 고쳐, 건축주가 건축물 철거에 앞서 시군구에 반드시 해야하는 철거·멸실신고때 건축물의 석면함유 여부도 함께 신고하도록 하는 보완책을 마련했다. 이렇게 해서 철거·멸실신고 때 철거대상 건물에 석면이 함유돼 있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시군구가 이 사실을 노동부와 환경부에 통보하도록 해 석면처리가 제대로 되는지 감독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건축주의 양심적 신고가 없으면 있으나마나한 이 새 규정의 한계는 금방 드러났다. 새 규정이 시행에 들어간 지난 10월 이후 지금까지 수도권에서 새 규정에 따라 시군구에 석면함유여부가 신고되고, 이에 따라 환경부와 노동부에 통보된 사례는 전무하다. 심지어 얼마전 아파트 일부를 불법 철거하려다 말썽이 된 서울 반포주공3단지 재건축 현장의 철거업체가 지난달 11일 관할 서초구청 반포1동사무소에 제출한 철거·멸실신고서는 아예 석면함유 여부 표시란이 없는 옛날 신고서 양식에 작성됐는데도 그대로 접수·처리됐다. 이 에피소드는 담당 공무원들조차 새 제도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다.

철거현장에서 나오든 다른 어디에서 나오든 석면먼지로 위협받는 국민건강 보호에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부치고 나서야 하는 정부 부처는 환경부다. 하지만 환경부는 철거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석면먼지의 관리는 노동부에 맡기고, 스스로 자신의 역할은 철거작업이 이뤄진 뒤 발생한 석면 폐기물의 관리때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좁혀 놓고 있다. 이에 따라 폐기물관리법에 석면함유 폐기물을 형태에 따라 일반 폐기물과 지정폐기물로 구분해 처리하라는 규정을 마련했으나, 그 구분 기준을 애매하게 해 놓아 철거현장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주택공사 설계관리처 관계자는 “폐기물관리법에는 스레트 등의 건축자재 안에 고형화돼 있는 석면은 일반폐기물로, 고형화된 석면제품 등의 연마·절단·가공공정에서 나온 부스러기는 지정폐기물로 처리하라고만 돼 있어, 철거작업 과정에서 석면함유 자재가 부서졌을 때 어디까지 고형화된 일반폐기물로 보고 어디까지 지정폐기물인 ‘부스러기’로 봐야 하는지 애매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도와 기준도 미비하고,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석면철거 작업의 수요가 부족해 기술력과 장비를 갖춘 전문업체 등 업계의 인프라도 부족한 상황에서 철거업체들만 잘못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석면함유 건축물 철거현장을 둘러싼 이런 사정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처지에서 지에스건설이 “(철거예정인 아파트에서) 석면이 검출된 결과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고 했다는 후배기자의 기사(<한겨레> 12월10일치 9면)를 보았을 때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까지 석면함유 건축물 불법철거가 문제된 현장에서 해당 업체가 선뜻 석면검출을 인정한 경우는 못 보았기 때문이다.

석면함유 건축물 불법철거 문제가 불거지면 대부분의 업체들은 어디에선가 떼어낸 건축자재 몇 조각으로 기준치를 밑도는 석면검출 분석결과서를 만들어와서는 문제가 없다고 강변하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었다. 업체들은 이런 조사를 위한 건축자재 표본 채취는 언론이나 환경단체들이 모르게 진행하거나, 설사 알더라도 이들의 현장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조사가 됐든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조사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분석기관의 분석능력 이상으로 분석을 위한 표본 채취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이런 분석결과서의 신뢰도는 항상 의문의 여지가 있다.

간혹 건축물 철거현장에서 석면불법 철거를 인정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이미 철거가 상당부분 진행된 뒤에야 이뤄져서, 업체들이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과태료와 벌금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태반이다. 반포주공3단지 재건축 사업 현장에서는 다행히 본격적인 철거가 이뤄지기 전에 석면 문제가 드러났고, 회사가 석면함유 자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제대로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환경단체와 철거현장 인근의 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고 있는 주민들의 석면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 재건축사업이 주택조합과 지에스건설 사이에 지분제로 계약돼, 친환경적 회사이미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기업인 지에스건설이 철거공사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진다는 점까지 유행하는 표현으로 ‘시추에이션’이 좋았다.

지에스건설의 대응을 보면 지에스건설도 이번에는 어떻게 빠져나가기가 어려운 구도라는 점을 이해한 것 같다. 그냥 석면을 따로 철거하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현행법도 미흡한 부분이 있는 만큼 현행법의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현행 법규에서 규정한 것 이상의 수준으로 제대로 해 석면철거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욕을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면 철거때 나오는 석면함유 자재 가운데 고형화된 것은 현행법에 따르면 일반 건설폐기물로 처리하면 되지만, 지정폐기물을 처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중의 비닐자루에 밀봉해 폐기물처리업체에 맡기겠다는 것이 그런 의욕의 표현이다. 여기에서 굳히기 작전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지에스건설로서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번 제대로 해서 국내의 대표적 친환경 건설사로서의 이미지를 만드는 기회로 이용하자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기업이 이런 계산을 하는 것은 전혀 비난할 일이 아니라,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서 적극 권장할 일이다. 어쨌든 지에스건설이 이번에 반포주공3단지 철거과정에서 석면철거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낸다면, 노동부와 환경부 등 정부 부처와 환경단체가 이를 이용하기에 따라서 지금까지의 잘못된 석면함유 건축물 철거관행이 바로 잡히는 계기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업체들에게 “왜 당신들은 그렇게 못하느냐”며 압박할 수 있는 사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미 노동부에서는 지에스건설이 계획대로 완벽한 석면철거의 시범을 보일 경우, 이를 석면철거의 모범사례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반포주공3단지 철거현장을 주목하고 있다.

아마 다른 대형 건설업체들도 친환경 이미지를 고려해서 굳이 압박을 받지 않더라도 지에스건설의 사례를 뒤따르면서 우리나라 석면공해 문제가 해결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데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든다. 만약 지에스건설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한겨레> 사회부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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