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맨위부터) 서울고법의 새만금소송 항소심 패소판결 소식에 절규하는 새만금 주민들. 한국을 비롯한 여러나라의 환경운동가들이 기후변화협약 총회가 열린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더워지는 지구를 상징하는 부채시위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방폐장 후보지 결정 주민투표의 무효화를 주장하고 있는 환경단체 회원들. 서울 명동에서 빈그릇운동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에코붓다 활동가들. 정부에 기능성 음료의 방부제로 쓰이는 안식향산나트륨의 기준 강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서울환경련 활동가들. 지난해 1월30일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이수일 전교조 위원장, 도법 지리산생명연대 공동대표 스님, 정토회 법륜 스님 등이 정부에 단식중인 지율 스님을 살리기 위해 천성산 환경영향 공동조사 제안을 받아들일 것을 호소하고 있다. 한겨레자료·연합뉴스
2005년 새해를 환경운동단체들은 전국의 환경파괴 현장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시작했다.
경제회복을 내세워 대형 개발정책을 마구 쏟아내는 정부를 ‘녹색색맹 정부’로, 사회 상황을 ‘환경 비상시국’으로 규정하고 거리에 나선 지 두 달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하지만 차가운 보도 위에서 외치는 이들의 주장은 정부는 물론 먹고살기 바쁜 대중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환경의 위기’만이 아니라 ‘환경운동의 위기’라는 말은 지나친 것이 아니었다.
환경비상시국회의 초록행동단의 현장순례는 이런 이중의 암울한 상황을 넘어설 희망의 불씨를 찾아내려는 것이었다. 20일 동안의 순례가 끝난 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전국환경인대회에서 참석자들은 2005년을 사그라드는 환경의 불씨를 되살리는 ‘환경원년’으로 만들자고 결의했다. 하지만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환경원년’의 다짐은 2006년으로 이어져야 할 듯싶다.
정부는 국토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환경성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은 지역들까지 기업도시 시범지구로 지정하더니, 또 한편으론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해 11년 동안 금지해 온 수도권 공장 신·증설을 허용했다.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방폐장 터 선정은 수천억원이 걸린 이권사업으로 포장돼, 불법과 부정으로 얼룩진 주민투표 끝에 결정됐다.
환경단체들은 지난해 2월 서울행정법원에서 농림부 장관에게 새만금 간척사업 시행 인가 처분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도록 한 판결을 얻어내고 잠시 희망에 젖었다. 하지만 지난달 항소심에서 이 판결이 뒤집어짐으로써 새만금 갯벌의 미래는 다시 어둠 속에 빠졌다. 정부의 호남고속철 조기착공 방침과 계룡산 관통 추진은 경부고속철과 천성산의 사례가 아무런 교훈이 되지 못했음을 입증했다.
2005년 자기반성 목소리
한국환경회의가 지난 26일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관에서 연 정책토론회에서는 이처럼 지리멸렬했던 2005년 환경운동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성규 환경정의 사무처장은 “온 사회가 경제에 ‘올인’하면서 환경문제를 외면하는 상황에 맞서 환경운동 진영이 대안적 희망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했지만,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언제 환경비상시국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는데 환경단체들이 비상시국을 선언한 것이 스스로를 진퇴양난에 빠뜨리는 계기가 됐다”며 “‘반대를 위한 반대’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희망의 운동을 펼쳐야 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2005년 환경운동에 좌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방부제를 비롯한 식품첨가물에 대한 지속적 문제 제기는 결국 기업들을 굴복시켰다. 2008년 람사총회를 유치했고, 왕피천을 생태계보호지역으로 지정하게 하는 등의 성과도 있었다. 특히 2005년에만 1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겠다고 약속하게 만든 ‘빈그릇운동’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은 2005년 환경운동이 쌓은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꼽아도 좋을 것 같다.
2006년 새해를 맞은 환경운동 진영의 분위기는 2005년 이상으로 어둡다.
환경단체들은 우선 4월말 새만금에서 돌이키기 어려운 좌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농업기반공사의 계획대로라면 이때쯤 새만금 방조제 구간 가운데 아직 열려 있는 2.7㎞ 구간의 마지막 물막이가 완료되기 때문이다. 상고심이 남아있지만, 환경단체들 스스로 법원이 새만금을 구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은 듯하다.
이밖에 기업도시를 비롯해 지난해 쏟아진 개발계획 상당수가 본격적인 삽질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는 올해도 이런 개발정책 공세를 중단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대중의 관심이 경제에 집중될수록 환경에 대한 관심은 계속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환경’과 ‘환경운동’ 공통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질 터인데, 그렇다고 또 ‘환경비상시국’을 선언하고 나설 수도 없다는 것이 환경운동 진영의 고민이다.
류휘종 환경정의 기획실장은 “최근 환경운동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환경운동 진영이 환경문제를 주도적으로 발굴해 이끌어가기보다는 그때그때 발생한 환경현안을 뒤따라가기에 급급하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많은 환경운동가들은 이런 진단에 공감하며 “이제라도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는 환경운동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환경-고용·복지 연결 주목
환경운동단체들이 모색하는 새로운 환경운동 모델과 관련해 주목을 끄는 것은 환경과 고용·복지를 연결하려는 움직임이다. ‘환경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이 운동은 빈그릇운동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반대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해 볼 만하다.
새해를 맞은 환경운동 진영의 분위기를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은 주요 환경단체의 조직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단체들의 맏형격인 한 단체에서는 지난해 초 사무총장선거 과정에서 표출된 내부 갈등이 지난달 말 결국 곪아터지면서 몇몇 중견 활동가들이 집단으로 조직을 떠났다. 또다른 대표적 환경단체에서도 지난 연말 예년에 비해 많은 활동가들이 떠난 가운데, 빈 자리를 채울 역량 있는 활동가들의 충원이 잘 안돼 올해 사업에 차질이 우려된다.
따라서 환경운동 진영이 2005년의 무기력한 모습을 올해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흔들리는 조직을 추스르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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