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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기후위기는 급박한 위험…정부의 방관은 위헌”

등록 2020-04-22 05:01수정 2022-01-11 18:17

[50번째 지구의 날]

‘위르헨다 판결’로 본 기후변화 위기
네덜란드 대법원은 “기후변화 대응해야” 정부 책임 천명했다


파리 기후변화협정
한국 포함 195개국 참여해 논의
온도상승폭 1.5도 이하 규정했지만
국가별 감축목표는 턱없이 모자라

네덜란드 세계 첫 기후재판 승소
“온실가스 배출량 25% 이상 줄여라”
“배출량 적다고 책임 작지 않아”
국가의 생명권 보호 의무에 경종

한국은 지금
‘2050년 저탄소 전략’ 초안 나왔지만
순배출량 ‘제로’ 시나리오는 없어
청소년단체, 정부책임 묻는 헌법소원
지난해 12월20일 네덜란드 대법원이 정부를 상대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합당하게 변경하라”고 판결한 직후 소송에 참여한 위르헨다 관계자들이 법정 앞에 모여 기뻐하고 있다. 위르헨다 제공
지난해 12월20일 네덜란드 대법원이 정부를 상대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합당하게 변경하라”고 판결한 직후 소송에 참여한 위르헨다 관계자들이 법정 앞에 모여 기뻐하고 있다. 위르헨다 제공

지난달 13일 국내에서 청소년들(‘청소년기후행동’)이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책임을 다하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청소년기후행동에 속한 원고 청소년 19명이 소송을 제기한 지 열흘 만인 지난달 24일 헌법재판소는 심판 회부 결정을 내렸다. 청소년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가 재판 진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했다고 본 것이다. 기각을 우려했던 변호인단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정부는 어떤 답을 내놓을까. 한국 청소년들의 헌법소송도 세계 최초로 승소한 기후소송인 네덜란드의 ‘위르헨다 판결’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위르헨다 판결은 네덜란드 환경단체인 위르헨다가 2013년 제기해 지난해 말 네덜란드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을 이른다. 위르헨다는 ‘시급한 의제’(Urgent Agenda)를 합친 말로, 이들의 소송엔 네덜란드 시민 900명가량이 참여했다. 이들은 2015년 1심, 2018년 2심에서 모두 “네덜란드 정부는 2020년까지 1990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25% 이상을 감축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이 판결은 네덜란드 정부가 계획한 온실가스 감축의 최저선을 사법적으로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최소한 이만큼은 줄여야 국가가 국민의 생명권 보호 의무를 다하는 것”이란 뜻이다.

이 판결 뒤 네덜란드에선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 대응이 알려지며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현재 세계에서 진행 중인 1천여건의 기후소송을 촉발하기도 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에서 온전히 벗어나려면 각국이 각자의 책임만큼 노력해야 한다. 세계 첫 기후소송인 네덜란드 ‘위르헨다 판결’도 그런 취지였다. 지난해 말 판결을 확정한 네덜란드 대법원은 “각 국가가 자신의 배출량이 범세계적 규모로 볼 때 영향이 미미하다거나, 다른 국가들이 그들의 부분적인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몫을 회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에 더 책임이 많은 선진국들이나, 배출량이 많은 일부 국가들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르헨다 소송의 쟁점을 살피려면, 2015년 한국을 포함한 195개국이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정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 파리협정은 선진국들에만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를 부과한 ‘교토의정서 체제’와 달리, 모든 체약국이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최근(2006~2015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기간(1850~1900년)에 견줘 0.87도 올랐다. 파리협정은 이 온도 상승폭이 2도보다 훨씬 낮아야 하며, 가급적 1.5도 이하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 목표 달성은 쉽지 않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간한 ‘1.5도 보고서’를 보면, 현재 속도로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2030~2052년 사이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은 1.5도를 초과한다. 현재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이 제출한 국가별 감축목표를 이행해도 그렇다. 2030년 지구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520억~580억톤에 이르러, 1.5도 기준을 170억~330억톤 초과한다. 이대로면 2100년 지구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3도가량 상승하게 되고,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된다.

‘청소년기후행동’의 청소년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책임을 다하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청소년기후행동’의 청소년들이 지난달 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책임을 다하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위르헨다의 소송 이전 네덜란드 정부는 2011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를 2020년 시점에 1990년 대비 30% 감축하는 것으로 상정해왔다. 네덜란드 환경부 장관은 2009년 네덜란드 하원에 보낸 서신에서 “감축률이 25%보다 더 낮아지면 2도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네덜란드 정부는 감축률 목표치를 20%로 하향 조정했다. 대신 2030년에 49%, 2050년에 95%로 감축을 가속화하겠다고 했다.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보아 달성 시기를 미룬 것이다. 위르헨다는 소송을 통해 “2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적어도 25%를 감축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정부 스스로 그렇게 밝히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최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감축 방안이 연기될수록 그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며 “게다가 정부는 (2020년 이후의) ‘가속화된 감축’을 위한 대안도 적절하게 제시하지 못해 목표의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인다”고 판결했다.

네덜란드 법원은 그러면서 ‘인권 및 기본적 자유의 보호에 관한 유럽협약’에 근거한 국가의 의무를 강조했다. “유럽인권재판소에 따르면, 국민의 생명이나 복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급박한 위험’이 존재하고 국가가 이러한 위험을 인지하는 경우 해당 국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법원은 이때 위험이란 단기간에 현실화하는 것만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치더라도 문제 상황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경우까지 포함한다고 봤다. 기후변화의 위험 역시 결국 장기간에 걸쳐 네덜란드 거주자들의 생명이나 가정생활을 파괴할 ‘구체적이고 급박한 위험’이란 것이다.

위르헨다 소송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된 배출가스 감축을 해본 적이 없다. 한국 정부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에 194개국과 함께 참여했다. 협정 체결 이듬해인 2016년 이를 비준했지만 지금까지 협정이 정한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된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 초안에도 순배출량을 0(제로)로 만드는 시나리오는 아예 빠져 있다. 2050년까지 전세계 순배출량이 0이 되지 않으면 ‘2도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데도 말이다. 소송을 제기한 청소년들과 변호인단은 이런 우리 정부의 책임 방기 문제를 지적할 생각이다.

청소년 기후소송을 대리한 이병주 변호사는 “우린 이 사건이 선언적이거나 환경운동의 캠페인을 위한 시험적 소송이 아닌, 이겨야 하고 이길 수 있는 소송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사건 심리가 충분히 되고, 좋은 결과가 나와서 한국이 더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집행하는 힘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4월22일 지구의 날 ☞ 유엔이 정한 세계환경의 날(6월5일)과 달리 민간운동에서 출발했다. 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일어난 해상 원유 유출 사고가 계기였다. 이듬해 게일로드 넬슨 미국 상원의원이 이날을 ‘지구의 날’로 선포했다. 해마다 이날 저녁 8시에 10분 동안 자원 절약 취지의 소등 행사를 연다. 한국에선 2009년부터 지구의 날을 전후한 일주일을 ‘기후변화주간’으로 지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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