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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기 위해 선생이 보여준 ‘공생공락’의 삶 따르렵니다”

등록 2020-06-28 18:17수정 2020-06-29 02:37

[가신이의 발자취]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영전에
“탈성장 주장 민주주의자이자
소농 중요성 강조한 농본주의자”
“풀뿌리 민중 눈으로 세상 본
사상가이면서 실천가”

“민중 언어로 쓴 글 높이 평가
후쿠시마 이후 ‘녹색당 전임강사’”

지난해 4월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내고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해 4월 문학론집 <대지의 상상력>을 내고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김종철 선생님을 보내드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 선생님도 엄청난 고통을 겪고 계셨을텐데, “하 변호사 너무 애쓰지 마소”라고 말씀해주셨다. 선생님은 마음이 따뜻한 어른이셨다.

집에 돌아와 책장에 있는 <녹색평론> 창간호를 꺼내 들었다. 선생님은 1991년 11월에 이 창간호를 만드셨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로 시작하는 창간사는 선생님의 사상이 축약되어 있는 글이다. 심각한 생태위기속에서 과학기술 만능주의와 전통적인 진보사상의 한계를 지적하며, 산업문명을 넘어설 수 있는 ‘생명의 문화’를 재건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셨다. 그리고 녹색평론의 창간이유를 이렇게 밝히셨다.

“<녹색평론>을 구상한 것은 지극히 미약한 정도로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희망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이 마음으로 173호가 나올 때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두 달에 한번 잡지를 만드셨다.

선생님의 생각은 추상적이거나 허공에 떠 있지 않았다. 선생님은 근본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현실주의자였다. ‘장포심(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심층적으로 생각하라)’의 관점을 강조하셨고, 이반 일리치와 같은 중요한 사상가를 한국사회에 소개하면서, ‘문명의 전환’을 위한 굵직굵직한 현실의제들을 공론화했다.

선생님은 경제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탈성장’을 주장하셨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에는, 핵발전의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알리셨다.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를 소개한 것도 선생님이셨다. 특히 농업·농촌·농민을 살리기 위해 농민기본소득이 절실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선생님은 화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셨다.

선생님은 민주주의자이셨다. 민중을 먹여 살리는 것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신념을 가지고 계셨다. 109호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하늘이 맑아지는 순간이 잠시뿐이라고 해서,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가 잠시 동안만 실현될 수밖에 없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포기해도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은 영물(靈物)이어서 그 잠시 동안의 맑은 하늘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마음속 깊이 그 기억을 평생 갖고 살면서 언젠가 그것이 다시 실현될 날을 꿈꾸고, 노력하고, 싸우는 게 인간이다.”

선생님은 농본(農本)주의자이셨고, 소농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농민들이 스스로 기른 작물을 불태우는 것을 보며 충격을 받은 것이 <녹색평론> 창간의 직접적인 계기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상층부 엘리트가 아니라 풀뿌리 민중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 사상가였다. 식량자급률이 20%초반인 나라에서 민중의 생존을 걱정했기에 농업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용산참사에, 밀양 송전탑 공사에, 강정해군기지 건설에 분노했고,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비판했다.

선생님은 쉬운 글을 좋아하셨고, 민중의 언어로 쓴 글을 높이 평가하셨다. 그래서 권정생 선생님의 글을 모아 <우리들의 하느님>이라는 산문집을 펴냈다. 또한 일본의 작가인 ‘이시무레 미치코(石牟禮道子)’를 이 시대 최고의 작가로 평가하셨다. 이시무레 미치코는 중금속에 오염된 어패류를 먹고 미나마타 병을 앓던 일본 민중들의 얘기를 글로 풀어낸 작가이다. 작가 스스로 “문학적 소양도, 학문도, 의학지식도 없는 그저 시골마을의 주부가 신변의 비상사태에 떠밀려 쓰기 시작”했다고 한 글에 대해, 선생님은 근대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묻는 글이라고 평가했다.

선생님은 사상가이면서 실천가이셨다. 선생님은 2007년 12월 한 대담에서 “저는 녹색당이 한국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없을 것같고, 그거 해서 문제가 풀리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지만,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 ‘녹색당 전임강사’를 자임하며 녹색당 창당을 가능하게 하셨다.

선생님은 ‘공생공락(共生共樂)’의 삶을 몸으로 보여주셨다. 후배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면 격려를 해 주셨고, 알려지지 않게 큰 돈을 여기저기에 후원하셨다.

선생님은 장일순 선생님을 무척 존경하셨다. 173호(2020년 7-8월호)에 남기신 마지막 글에서도, “돼지가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듯이, 사람은 세상에서 이름이 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장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급진적인 탈속(脫俗)의 정신을 담은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김종철 선생님의 생각과 삶을 잘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이제는 선생님께서 고통없이 평안하시길 빌 뿐이다. 선생님의 사상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숙제일 것이다. ‘위기의 시대’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공생공락’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고, 끝까지 선생님과 함께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하승수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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