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신영식씨가 강화도의 자택 옆 화단에 부인과 함께 앉아 있다. 당시 암은 이미 잘라낸 식도 주변으로 전이됐으나 말라리아에는 걸리기 전이어서 얼굴이 비교적 좋아 보인다.(인터뷰를 하면서 찍은 사진은 신씨의 요청에 따라 공개하지 않는다.) 열림원 제공
“환경운동도 사람도 일회용 되니 아쉬워”
“‘짱뚱이 시리즈’ 7권이 왜 빨리 안나오느냐고 묻는 메일이 많이 온다네요. 어서 그려야 될텐데….”
‘환경만화의 교과서’로 불리는 <하나뿐인 지구>와 100만권 이상 팔린 ‘짱뚱이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환경 만화가이자 운동가인 신영식(56)씨가 17일 바싹 마른 입술을 힘들게 움직여 말했다.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프리카 난민을 연상시키는 움푹 들어간 볼과 눈, 튀어나온 광대뼈에 피부 가죽만 씌워져 있는 듯한 그의 얼굴에서 그의 육체가 겪어온 고통을 읽을 수 있었다. 강화도 선원면의 한 아파트에 누워 있는 그 참혹한 얼굴에서 ‘짱뚱이 시리즈’ 제6권 <짱뚱이의 아빠> 속표지에 그려져 있는 인물을 떠올리기는 불가능했다. 그는 거기서 아내와 함께 자신을 목숨을 위협하는 암과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2004년 6월 어느날 서울 안국동에서 환경단체 관계자들과 핵폐기장 반대 기자회견을 한 뒤 점심을 먹던 그는 목에 무언가 걸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 다음날 병원을 찾은 그에게는 식도암 말기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늦었으니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달초 그는 가장 빨리 수술일정을 잡아준 공릉 원자력병원에서 식도를 잘라냈다.
방사선 대신 자연재료로 1년6개월 버텨 ‘기적’
매일 이별 준비하면서도 시리즈 7편 낼 의욕 수술 뒤 병원에서는 암의 전이를 막아야 한다며 방사선 치료를 권했다. 그는 거부하고 자신이 지은 강화의 흙집으로 돌아왔다. “오래 반핵운동을 해 온 사람으로서 원자력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도 못마땅해 했거든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한 방사능의 도움을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데다가, 자연 먹거리와 천연 항암성분 등으로 몸의 면역력만 높여주면 암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고요.” ‘짱뚱이 시리즈’에서 글을 맡은 동화작가이자 아내인 오진희(42)씨가 말할 기력이 떨어진 남편을 대신해 말했다. 수술 9개월 뒤 의사들은 그에게 암이 주변 장기로 전이됐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그는 계속 자연치료를 고수하면서 국도확장으로 파헤져질 봉천산 살리기를 주도하는 등 환경운동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멀쩡한 사람처럼 몸을 굴리는데도 잘 버텨주던 몸이 결정적으로 무너진 계기는 생각지도 않았던 말라리아 감염이었다. 보건소에서 내준 독한 치료약은 말라리아를 낫게 한 대신 쇠약해진 그의 내장 곳곳에 치명적 부작용을 남겼다. 복용 1주일 만에 간은 거의 기능을 상실했고, 위는 격렬한 경련을 일으킨 뒤 미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결과 그는 말라리아에 걸렸던 지난해 8월말 이후 곡기는 아무 것도 넘기지 못한 채 물과 쇄골정맥에 꽂아 넣은 주사바늘로 공급되는 포도당과 영양제,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힘겹겨 버티고 있다.
흙집에 외풍이 심해 지난달 초 지인이 빌려준 아파트로 옮겨 온 뒤에는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의식을 되찾은 신씨는 아내에게 유언을 하고 영정사진을 마련했다. 부음을 낼 사람들의 명단을 뽑고, 작별인사를 할 요량으로 가까운 이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차근차근 세상과 이별할 준비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에 대한 희망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씨는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던 사람이 1년반 이상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고는 의사들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말을 한다”며 “남편이 생일인 정원대보름 전날(2월11일)까지 일어설 수 있으면 가까운 분들을 초대해 잔치를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언제든 세상과 이별할 준비를 하고 누워 있는 신씨에게 남은 아쉬움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지금까지 삶에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환경운동을 하면서 일회용품을 참 싫어했는데, 어느새 환경운동도 일회용, 그 속의 사람들의 관계도 일회용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신씨는 생각을 모으려는 듯 잠시 감았던 눈을 뜨며 힘겹게 말했다. 신씨는 “요즘 걸어가는 꿈을 자주 꾸고 있는데, 그런 꿈을 꿀 때마다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다”며 “생각 같아서는 곧 일어나 독자들이 기다리는 ‘짱뚱이 시리즈’ 7권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강화도/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매일 이별 준비하면서도 시리즈 7편 낼 의욕 수술 뒤 병원에서는 암의 전이를 막아야 한다며 방사선 치료를 권했다. 그는 거부하고 자신이 지은 강화의 흙집으로 돌아왔다. “오래 반핵운동을 해 온 사람으로서 원자력병원에서 수술을 받는 것도 못마땅해 했거든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한 방사능의 도움을 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데다가, 자연 먹거리와 천연 항암성분 등으로 몸의 면역력만 높여주면 암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고요.” ‘짱뚱이 시리즈’에서 글을 맡은 동화작가이자 아내인 오진희(42)씨가 말할 기력이 떨어진 남편을 대신해 말했다. 수술 9개월 뒤 의사들은 그에게 암이 주변 장기로 전이됐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그는 계속 자연치료를 고수하면서 국도확장으로 파헤져질 봉천산 살리기를 주도하는 등 환경운동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멀쩡한 사람처럼 몸을 굴리는데도 잘 버텨주던 몸이 결정적으로 무너진 계기는 생각지도 않았던 말라리아 감염이었다. 보건소에서 내준 독한 치료약은 말라리아를 낫게 한 대신 쇠약해진 그의 내장 곳곳에 치명적 부작용을 남겼다. 복용 1주일 만에 간은 거의 기능을 상실했고, 위는 격렬한 경련을 일으킨 뒤 미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결과 그는 말라리아에 걸렸던 지난해 8월말 이후 곡기는 아무 것도 넘기지 못한 채 물과 쇄골정맥에 꽂아 넣은 주사바늘로 공급되는 포도당과 영양제,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힘겹겨 버티고 있다.
흙집에 외풍이 심해 지난달 초 지인이 빌려준 아파트로 옮겨 온 뒤에는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의식을 되찾은 신씨는 아내에게 유언을 하고 영정사진을 마련했다. 부음을 낼 사람들의 명단을 뽑고, 작별인사를 할 요량으로 가까운 이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차근차근 세상과 이별할 준비를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에 대한 희망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씨는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던 사람이 1년반 이상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고는 의사들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겠다는 말을 한다”며 “남편이 생일인 정원대보름 전날(2월11일)까지 일어설 수 있으면 가까운 분들을 초대해 잔치를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언제든 세상과 이별할 준비를 하고 누워 있는 신씨에게 남은 아쉬움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지금까지 삶에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그동안 환경운동을 하면서 일회용품을 참 싫어했는데, 어느새 환경운동도 일회용, 그 속의 사람들의 관계도 일회용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신씨는 생각을 모으려는 듯 잠시 감았던 눈을 뜨며 힘겹게 말했다. 신씨는 “요즘 걸어가는 꿈을 자주 꾸고 있는데, 그런 꿈을 꿀 때마다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 같다”며 “생각 같아서는 곧 일어나 독자들이 기다리는 ‘짱뚱이 시리즈’ 7권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강화도/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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