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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두세 포기 심은 벼가 가을엔 서른 포기로 늘어

등록 2020-09-26 09:09수정 2020-09-26 09:18

[토요판] 커버스토리
이동현의 생태농업

우렁이 농법으로 친환경 농업
둠벙과 논 끝엔 새 노는 공간
투구새우, 드렁허리 등 살아나
생태농업을 하는 농부과학자 이동현씨는 논에 널찍한 빈터를 남겨놓는다. 생태계의 일부인 새들이 날아와 놀 수 있도록 한 새 놀이터다. 김종철 선임기자
생태농업을 하는 농부과학자 이동현씨는 논에 널찍한 빈터를 남겨놓는다. 생태계의 일부인 새들이 날아와 놀 수 있도록 한 새 놀이터다. 김종철 선임기자

군데군데 벼 포기 중간 부분에 짙은 분홍색 반점이 있었다. 새끼손가락 마디만한 크기였다. 나방의 알인가 했더니 우렁이 알이었다. 설명을 듣고 보니 논바닥에는 아이 주먹만한 성체부터 좁쌀만한 것까지 왕우렁이가 잔뜩 깔려 있었다. 큰 녀석은 봄에 모내기를 하고 넣은 것이고, 작은 것은 자연 부화해서 자라고 있는 새끼들이다. 가을에 논의 물이 빠지면 일부는 진흙 속으로 들어가서 살기도 하지만, 상당수는 물이 없어서 죽기 때문에 매년 봄 새끼손톱만한 작은 왕우렁이를 다시 투입해줘야 한다.

우렁이는 친환경 생태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꾼 중 하나다. 관행농업에서 제초제가 하는 일을 우렁이가 대신한다. 우렁이는 피 등 논에서 자라는 여러 잡초의 어린 싹을 왕성하게 먹어치운다. 이들이 일을 하려면 논에 물이 늘 차 있어야 한다.

농부과학자 이동현 ㈜미실란 대표는 곡성에 온 2006년 첫해부터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 그는 생태농업에서 물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렁이의 제초작업을 위해서뿐 아니라 논에 사는 다양한 생명체 등 생태계 순환을 위해서는 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농사를 시작한 이듬해인 2007년에는 약 1천평의 논을 습지로 만들었다. 연이 자라는 그 습지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습지여서 건조한 겨울에는 물이 말라붙는 것을 알고는 그 다음해에는 논 옆에 아예 넓다란 둠벙(웅덩이)을 팠다. 늦가을부터 봄철까지는 우렁이와 작은 물고기들이 둠벙으로 자리를 옮겨 살도록 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의 논에는 물방개, 풍년새우, 조개벌레, 물벼룩, 좀주름다슬기 등 숱한 생명체가 살아났고,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인 긴꼬리투구새우도 나타났다. 유기농 생태농업도 벼가 어릴 때에는 병해충 예방을 위해 친환경 약제를 서너차례 뿌리지만, 논에 사는 생명체에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독한 농약과 화학비료 때문에 보기 힘든 드렁허리, 물뱀도 이 대표의 논에는 많다. 작은 뱀이나 장어처럼 생긴 드렁허리는 논두렁을 헐고 사는 습성이 있는데 특이한 이름은 거기에서 유래했다. 논물이 빠지는 논두렁 구멍을 파는 드렁허리는 친환경 농부에게는 최대의 적수다. 그도 지난봄부터 여름 내내 드렁허리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생태가 살아 있는 농부과학자 이동현씨의 논에 크고 작은 왕우렁이가 기어다니고 있다. 잡초의 어린 싹을 먹고 사는 우렁이는 친환경 농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생태가 살아 있는 농부과학자 이동현씨의 논에 크고 작은 왕우렁이가 기어다니고 있다. 잡초의 어린 싹을 먹고 사는 우렁이는 친환경 농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그의 논 끄트머리에는 벼를 심지 않은, 폭 2m 정도의 긴 공터가 있다. 땅의 낭비처럼 보이는 이 빈 공간은 새를 위한 놀이터다. 이 대표는 “벼가 어릴 때는 괜찮은데 성장해서 빽빽해지면 백로나 기러기 등 큰 새들은 논바닥에 들어가지를 못한다. 그래서 그들이 여기서 먹이 찾아 먹고 놀다 가라고 일부러 비워뒀다. 새들도 생태계를 이루는 한 구성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내기를 할 때 줄 간격을 최소한 30㎝ 이상씩 띄운다. 보통 15~20㎝ 안팎으로 심는 다른 집 논에 비해 훨씬 넓다. 벼 포기도 2~3개만 심는다. 관행농업을 하는 농부들이 6~7개를 심는 것과 대조된다. 지난 17일 미실란 앞에 있는 이 대표의 논에 자라는 벼의 포기 수를 헤아렸더니 32~34개였다. 관행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일반 농가의 벼 포기 수가 가을에 대부분 10~14개에 그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심을 때는 듬성듬성 허술해 보여도 가을 수확량은 오히려 생태농업이 관행농업보다 더 많거나, 작황이 좋지 않을 경우라도 거의 비슷하다. 농부들이 조금 여유를 갖고 농사를 지으면 일손도 비용도 덜 들고 환경에도 좋다. 그러니 친환경 농지에 대해서는 공시지가를 높게 책정해주는 등 국가와 사회가 생태농업의 가치를 인정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생태농업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곡성/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드렁허리. 사진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드렁허리. 사진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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