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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강도 인간만큼 법적 권리 누릴 때 지구 구할 수 있죠”

등록 2020-09-29 14:57수정 2022-01-13 17:23

[짬] 지구와사람 강금실 대표

강금실 지구와사람 대표는 지난 5년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해온 것 자체가 자신에게는 실험이었다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강금실 대표 제공
강금실 지구와사람 대표는 지난 5년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해온 것 자체가 자신에게는 실험이었다면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강금실 대표 제공

<지구를 위한 법학-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지구중심주의로>(서울대출판문화원).

올해 창립 5년인 재단법인 지구와사람(대표 강금실)에서 지구법학회 활동을 해온 회원 8명이 ‘지구법학’ 교재용으로 함께 쓴 책이다. 2001년 미국의 생태 신학자이자 문명 사상가인 토마스 베리(1914~2009)가 처음 제안한 지구법학은 인간뿐 아니라 나무나 강과 같은 자연물도 법과 거버넌스(통치)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주체로 본다. 우주는 ‘객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주체들의 친교’이기에 우주 성원은 모두 인간들만큼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관점이다.

지구법학은 지난 20년간 조금씩 영토를 넓혀 왔다. 남미의 작은 나라 에콰도르가 2008년에 자연의 권리를 헌법의 독립된 장에 명기했고, 5년 전 유엔총회는 유엔 공식 프로그램인 ‘자연과의 조화(하모니 위드 네이처)’ 2016년 토론 주제로 지구법학을 채택했다. 자연물에 법 지위를 부여하는 좀 더 실질적인 진전도 있었다. 뉴질랜드 의회가 3년 전에 북섬 황거누이강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법무법인 원 대표변호사이자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 대표를 지난 18일 전화로 만났다. 지구와 사람은 오는 9~10일 서울 종로구 ‘유재’에서 ‘생명과 공동체의 미래’를 주제로 창립 5년 콘퍼런스를 한다.

올해 4월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한 지구와사람은 강 대표가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2013년에 만든 생명문화포럼이 모체다. 2009년 대학원에 입학한 강 대표는 2012년에 석사 학위 인정을 받은 책 <생명의 정치>를 썼다.

그가 법과 정치 영역에서 생명 공부로 나아간 데는 ‘권력 너머의 근본적 갈망’이 작용했단다. “2004년 법무부 장관 시절에 영세를 받은 게 계기였죠. 전두환 정권에서 판사를 할 때 국가보안법 이슈로 사회와 인간, 권력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노무현 정부 때) 법무부로 가선 그 고민이 더 깊어졌죠. 그러다 가톨릭에 입문했어요. 그 뒤로도 권력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정치철학 쪽에서 제국주의와 기독교 관계를 공부하다 권력 그 너머의 근본적 갈망이 생겼죠.”

그는 지난 5년을 자신과 단체 모두 “공부하며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대학원에서 이재돈 신부 강의로 생태신학을 접했어요. 생태윤리나 기후변화 문제를 공부했는데 재밌었죠. 졸업 무렵에 고민하다 (공부를) 계속하자고 생각했죠. 제가 장관도 하고 정치에 몸담기도 해 사회에 직접 기여하고 싶은 내적 갈등도 있었어요. 현실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정치를 해야 했죠. 하지만 인간과 우주가 어디서 기원하고 어디로 가는지와 같은 좀 더 큰 질문에 관해 공부하고 토론이나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멤버들 모두 다 비슷한 질문을 안고 있어요. 처음 7명이 생명문화포럼을 시작했는데 지금 회원은 100여 명입니다. 내실을 다지자는 생각에 학술과 교육 활동에 중심을 두고 있어요. 계속 공부하며 답을 찾고 있어요.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판사·장관 하며 ‘권력 문제’ 고민
뒤늦게 대학원 들어가 생명 공부

2015년 창립, 현재 회원 100여명

최근 회원 7명과 지구법학 ‘교재’ 내
“자연물도 법과 거버넌스 보호 대상”
9~10일 ‘생명과 공동체 미래’ 콘퍼런스

지구와사람은 지구법센터, 생태대연구회, 기후와문화연구회 같은 연구 모임을 두고 있고 매년 한 차례 국제 콘퍼런스도 한다. 지구법학이나 토마스 베리 사상을 다루는 강좌도 열고, 생태를 포함해 다양한 인문학 주제로 특별 강연도 수시로 한다. 이번에 나온 공동저술을 포함해 번역서 <야생의 법>(코막 컬리넌 저)과 <최후의 전환>(프리초프 카프라)까지 책도 3권이나 냈다. 강 대표가 지구와사람을 지식공동체라고 말하는 이유다. “계속 공부하면서 삶을 나누자는 의미로 지식공동체라고 불러요. 콘텐츠 중심이죠. 우리는 노는 것과 밥을 나눠 먹는 게 중요해요. 단체 일도 회원들이 나눠서 합니다. 회비도 알아서 내고요. 급하게 가기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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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 법학> 표지.

강 대표가 서문을 쓰고 로스쿨 교수 셋과 변호사 넷이 집필한 이번 책은 3부로 나눠 지구법학이 무엇인지 또 각국의 법과 정치 체계 및 국제사회에서 지구법학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짚고 있다. 공동 저자 모두 논의의 출발을 토마스 베리 사상에서 출발했다. 강 대표는 대학원에서 <토마스 베리의 위대한 과업>이란 책으로 베리의 사상을 처음 만났단다. “우리 시대가 지나친 화석 연료 사용으로 기후 위기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런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게 베리가 말한 ‘위대한 과업’이죠. 그의 글을 보며 세상 문제에 대해 근본적 접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에 이런 큰 이야기를 하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사상가는 드물어요. 1970년대부터 시작한 기후 위기가 인류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실존의 문제라는 것을 베리는 일찍 간파했죠. 그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법이나 정치 변화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했어요. 인간의 민주주의로는 지구를 구할 수 없다면서 데모크라시(민주주의)에서 바이오크라시(생명민주주의)로 가야 한다고 했죠. 제가 2006년 서울 시장 선거에 나갔을 때 식목일에 출마 선언을 하면서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히 푸른 것은 생명의 나무’라는 괴테의 글을 인용했는데, 베리의 책을 보며 그분의 사상이 저와 맞겠다는 생각을 했죠.”

강 대표는 인간 중심 법학이 지구법학으로 가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라고도 했다. “지구법학은 인간의 민주주의와 법으로는 지구를 구할 수 없다는 관점이죠. 근대 헌법이나 민법을 보면 국민공동체만 있어요. 지구법학은 지구공동체를 보죠. 유엔을 국가연합이라고 하는데 지구법학은 지구생명체 종의 연합으로 가자는 겁니다. 지구공동체의 논리적 귀결은 지구법학입니다. 그렇게 갈 수밖에 없어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인권이 핵심요소인 지금의 인간법학은 탁월한 법체계이지만 지구 위기를 막지 못했잖아요. 그렇다면 위기를 막을 수 있는 법과 정치체계로 가야죠. 그게 바로 지구법학입니다.”

강금실 지구와사람 대표. 강금실 대표 제공
강금실 지구와사람 대표. 강금실 대표 제공

그는 뉴질랜드 황거누이강 사례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에콰도르 헌법에 자연권이 들어간 것은 정치적 결단의 차원이지만 황거누이강은 구체적 법률 사례입니다. 상당히 오랜 갈등 끝에 만든 법입니다.” 덧붙였다. “한국의 비무장지대도 황거누이강처럼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쪽으로 갈 수 있어요. 우리 단체에서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지금 공부하고 있어요.” 그는 지구법학의 현실화를 위해선 “첫째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고 둘째는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책은 지구법학 실현을 위한 방도로 헌법 개정이나 전문 법원의 설치 그리고 생태위원회 같은 국가 기관의 신설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기초지자체 조례 개정으로도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자연의 권리 인정은 80년대 미국의 한 자치단체 조례로 처음 등장했어요. 조례로 강의 권리를 인정하면 지역 단위의 환경 파괴를 막을 수 있어요.”

‘인간법학의 구체적인 폐해’를 묻자 그는 “우리는 그동안 자연을 잊어버렸다”는 말로 답을 시작했다. “우리가 낙동강의 권리를 인정했다면 4대강 사업을 못 했을 겁니다. 코로나나 이번 수해로 많은 사람이 우리가 그동안 자연을 잊어버렸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어요. 다시 자연과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죠. 그동안 우리 사고 범주 속에 자연이 사라졌어요. 오직 인간만 있었죠. 특히 한국은 너무 급해요. 돈의 힘이 세져 인간 사회의 윤리마저 매몰되었죠. 균형이 중요해요.”

‘지구와사람 5년’을 자평해달라고 하자 그는 “무엇보다 저 자신에 대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제가 여기서 일을 찾고 성장해온 것 같아요. 지난 5년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해온 것 자체가 저에겐 실험이었죠. 한국 사회는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자연스러운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은 사회 갈등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내가 여유 있어야 남의 말도 들을 수 있고 이해도 하죠.”

계획은? “특별한 것은 없어요. 지금처럼 공부 계속하고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 하고 책도 내야죠. 근본 기조는 학술입니다. 융합적 학술이죠. 여러 영역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공간이 흔하지 않잖아요. 지구와사람에는 법률가 말고도 정치학자, 자연과학자, 디자인 회사 대표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저와 비슷한 질문을 안고 있는 분들이죠. 우리 단체의 교육적 방법론은 문화와 예술입니다. 지구법학도 지금까지 개론적 연구였다면 앞으로는 각론으로 들어갈 수 있겠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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