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환경운동가 나렐리 코보(오른쪽)는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왼쪽)에 비견된다. 나렐리 코보 제공
미국 로스앤젤레스 남부에 사는 라틴계 여성 나렐리 코보(20)는 ‘엘에이 툰베리’라 불린다. 9살 때부터 지역 석유회사와 공해문제로 맞서 싸워 승리하면서 별명을 얻었다.
코보는 로스앤젤레스 남부 마을 유니버시티파크에서 자랐다. 이곳은 석유회사 알렌코에너지가 2009년에 개발을 시작한 유정에서 길 건너 900m 거리에 있었다. 멕시코계 엄마와 콜롬비아 출신 아빠 사이에 태어난 나렐리는 두 살 때 아빠가 떠나버려 엄마와 언니·오빠, 할머니, 증조부모 등 여덟식구가 함께 살았다. 9살이 되던 2010년 그는 갑자기 복통과 메스꺼움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몸에 경련이 오면 걸을 수가 없었고 식물처럼 꼼짝할 수가 없어 엄마가 부축해야 겨우 움직였다. 코피가 심하게 나 질식해 죽을까봐 앉아서 자야 했다. 나렐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마흔살인 엄마가 천식에 걸렸고, 일흔살인 할머니도 천식이 생겼다. 그 나이에 천식이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언니는 유섬유종을, 오빠는 천식을 앓았다.
나렐리 코보가 로스앤젤레스시 의사당에서 의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나렐리 코보 제공
코보네 식구만 그런 게 아니었다. 대다수가 라틴계인 마을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사람들 사이에 뭔가 잘못됐다는 말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냄새가 났다. 달걀 썩는 냄새 같기도 했고 어떤 때는 구아바나 초콜릿 냄새가 나기도 했다. 창문을 닫고 환풍기와 공기정화기를 틀어도 소용없었다.
길 건너 유정과 연관을 지어가던 즈음 독극물 전문가들한테서 석유 추출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에 대해 얘기를 듣게 됐다. 그들은 배출 물질에 오래 노출되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은 이른바 ‘피플 낫 포조스’(포조스는 유정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유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뜻)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렐리 코보는 9살 때 천식과 코피, 경련, 두통에 시달렸다. 나렐리 코보 제공
마을사람들은 환경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남부로스앤젤레스의 ‘남해안대기질관리국’(SCAQM)과 함께 석유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나렐리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시청에서 열리는 청문회에 주민들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하러 다녔다. 코보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검고 갈색의 라틴어를 쓰는 이민자들이 시청에 모여 목소리를 낸다는 사실은 실로 짜릿한 것이었다”며 “사람들은 나한테 내 얘기를 해줄 수 있는지, 내 노트와 이야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물었다”고 언론에 말했다.
지역신문 <로스앤젤레스타임스>가 이 사건에 대해 쓴 기사가 캘리포니아주지사 바버라 복서의 관심을 끌었고,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환경보호국(EPA) 조사관들을 불러 현장조사에 들어가게 했다. 하지만 조사관들은 그곳에서 몇 분 버티지 못했다. 냄새 때문에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크 러팔로(오른쪽)와 제인 폰다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도 나렐리 코보(왼쪽)의 활동을 지지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역과 연방 차원의 조사가 진행된 뒤 알렌코에너지는 유정을 일시 폐쇄하는 데 동의했다. 또 로스앤젤레스시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2016년 회사가 시추를 재개하려면 엄격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는 법원 명령을 받아냈다.
코보는 “소송 결과가 선포됐을 때 기뻤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우리가 캠페인을 시작한 건 2010년인데 2013년이나 돼서야 유정이 임시 폐쇄됐다. 우리는 영구 폐쇄를 원한다”고 말했다.
코보는 단지 마을 살리기에 나선 청년운동가가 아니다. 그는 운동을 시작했을 때 자기 마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석유와 가스 유정에서 400m 안에 사는 로스앤젤레스 시민만 58만명에 이른다. 코보는 “내가 어떤 곳에 가서 로스앤젤레스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은 ‘와, 대단하다, 명예의 전당, 할리우드, 유명배우…’ 하고 말한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유전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코보는 남부중앙청소년리더십연합이라는 단체를 창립하고 다른 단체와 함께 2015년 로스앤젤레스시를 캘리포니아대기환경법 위반 혐의로 고발해 승리했다. 이를 통해 유정을 새로 만들거나 확장하려면 새로운 절차를 밟도록 했다. 그는 지금은 유정과 학교, 병원, 공원 사이에 760m(2500피트)의 보건안전지대를 둬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젊은 환경운동가 나렐리 코보(20). 인물사진작가 크리스티안 몬테로사 촬영, 제공
코보는 “나는 보통의 어린애다. 화장에 사족을 못쓰고 춤추기를 좋아하며 여행을 즐긴다. 지금은 대학생이다. 나를 다르게 만든 것은 내 열정을 조금 일찍 깨달았다는 거다”라고 말했다.
코보는 지난해 1월 암 진단을 받았다.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암’이라는 끔찍한 말을 듣는 것도 힘들었지만, 치료비 걱정이 앞섰다. 다행스럽게 크라우드펀딩으로 치료비를 마련하고 자궁을 드러내는 근치적자궁적체수술을 받았다. 의사도 코보가 왜 암에 걸렸는지 말해주지 못했다. 코보는 의사한테 자신이 어디서 자랐는지 얘기하고 환경 검사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의사는 새로운 과학이 확보될 때까지 의문부호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코보는 지난 1월18일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는 “진정으로 기쁘고 흥분된다. 나는 인권 변호사로 경력을 쌓고 정치를 하고 싶다”고 언론에 말했다. 코보는 또 “나는 환경정의를 ‘나이, 성별, 인종, 사회경제적 지위, 거주지역에 상관없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라며 “이건 싸움이고, 내 공동체, 내 집을 보호하는 일이다”라고 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