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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홀몸노인 땔감 날라라 양평 야산에 인간 컨베이어벨트

등록 2006-01-31 18:44수정 2006-02-01 13:59

땔감 만들기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의 사항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땔감 만들기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주의 사항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21일 오전 9시50분께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 마을 근처의 야트막한 야산 산자락. 아빠 엄마의 손에 이끌려온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에서부터 해외에서 잠시 귀국한 70대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겉보기로는 도저히 공통점을 찾아낼 수 없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40여명이 모였다. 이번 겨울 들어 전국에서 열네 번째, 올해 들어서는 처음 열리는 생명의 숲 주관 ‘사랑의 땔감 나누기’ 행사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오전 9시 50분 40명이 모였다

숲에 쓰러져 있는 나무를 땔감용 길이로 자르는 사람들.(맨위) 땔감용 나뭇단을 릴레이식 전달을 시작할 장소로 옮기는 모습.(위에서 두번째) 나뭇단을 손에서 손으로 건네 산 아래로 운반하는 모습.(위에서 3~5번째) 땔감을 전달할 집 앞에 도착한 트럭에서 나뭇단을 내리는 참석자들.(맨 아래)
숲에 쓰러져 있는 나무를 땔감용 길이로 자르는 사람들.(맨위) 땔감용 나뭇단을 릴레이식 전달을 시작할 장소로 옮기는 모습.(위에서 두번째) 나뭇단을 손에서 손으로 건네 산 아래로 운반하는 모습.(위에서 3~5번째) 땔감을 전달할 집 앞에 도착한 트럭에서 나뭇단을 내리는 참석자들.(맨 아래)

이들이 이날 신론리 야산에서 할 일은 숲 가꾸기 과정에서 베어져 방치되고 있는 나무를 땔감용으로 알맞게 잘라 홀로 사는 마을 노인들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숲 가꾸기 사업을 펼치고 있는 생명의 숲 자료를 보면 해마다 전국의 20만여㏊의 숲에서 이뤄지는 숲 가꾸기 과정에서 베어지는 목재의 양은 160만㎥ 가량이 된다. 이 가운데 수집돼 이용되는 것은 50만㎥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농산촌의 노동력 부족과 고임금 등으로 수집돼 활용되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져 있다. 이날 행사의 목적은 이처럼 버려져 있는 나무들에게 그 일부나마 쓸모를 찾아주려는 뜻도 있었다.

이날 신론리 야산에 모인 이들의 하루 ‘나무꾼’ 봉사로, 우선 도움을 받게 될 사람들은 난방용 연료를 살 돈이 없어 싸늘한 구들장에서 추운 겨울을 나는 노인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냥 두면 어차피 썩어갈 나무를 연료로 활용하는 만큼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와 화석연료를 태워 만드는 전기를 덜 쓰게 됩니다. 화석연료 사용량이 줄어드는 만큼 대기중으로의 이산화탄소 방출도 줄어들게 되니까, 기후온난화로 위협받는 지구를 돕는 일이기도 합니다.” 미리 현장에 와 참석자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던 이원규 생명의 숲 간사의 설명이었다.

초등1년생부터 70살 할아버지까지

이 간사로부터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달받은 참석자들은 준비돼 있던 톱과 낫 하나씩을 뽑아 들고 산을 올랐다. 멀리 올라갈 것도 없었다. 건강한 숲을 만들려는 사람들에 의해 밑동이 베어진 소나무 참나무들이 산 입구에서부터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대로 방치될 경우 썩어가면서 산불의 불쏘시개가 되거나, 홍수 때 밀려 내려와 수해를 키우는 구실밖에 할 것이 없는 나무들이었다. 이미 쓰러져 있는 나무를 3, 40㎝ 길이로 잘라 단을 지어 묶는 일은 사실 어려울 것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톱을 처음 잡아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가지치기 낫은 처음 구경한다는 사람이 대부분인 초보 ‘나무꾼 부대원’들에게 쉬운 일은 아닌 듯 했다.

이종사촌 동생(공지현·15·개포중3)과 함께 왔다는 이승은(18·서울 명일여고2)양은 “힘은 들지만 오랜 만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어깨를 펼 수 있으니까 좋고, 재미도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기회만 되면 다음에도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 참석자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최병희(70) 할아버지였다. 중국 심양에서 16년째 방수시멘트 제조·판매업을 하고 있다는 최씨는 이달 초 사업상 잠시 귀국했다가 이날 생명의 숲 회원인 딸과 사위, 손자를 따라 나섰다. 주변에 쓰러져 있는 나무 가운데 가장 굵어 보이는 소나무에 톱을 들이댄 최씨는 “이렇게 힘이 있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냐”며 능숙한 솜씨로 톱질을 했다. 칠순 부친을 나뭇꾼이 되게 한 최씨의 딸 은숙(47·서울 서대문구 냉천동)씨는 “노인들을 집에 편안히 가만 계시게 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연로하더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가족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드리는 것이 진짜 효도”라고 말했다.

정오께 점심을 먹고 오후 1시께부터 다시 시작된 나무 자르기와 묶기 작업은 오후 3시께 끝났다. 하지만 진짜 힘든 일은 그 때부터였다. 땔감을 싣고갈 트럭이 들어올 수 있는 산 아래쪽까지 땔감용 나뭇단을 운반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 길옆 조금 널찍한 곳에 일단 옮겨 쌓아 놓은 나뭇단의 양은 작은 트럭 한 대는 너끈히 채울 수 있을 정도의 양이었다.

72살 할머니 “한달은 때겄네” 벙글

누군가 점심을 먹고 올라오는 길에 산 아래 농가에서 빌려온 지게는 이미 나무단 한 짐을 나르고는 아래쪽 다리 한쪽이 부러져 버린 상태였다. “어렸을 적 도끼로 쌀나무를 베러 가겠다고 했다”며 도시 출신임을 강조한 백규석(00·공무원)씨가 생전 처음 지게질을 하는 사람치고는 잘 지고 가더니 산 아래에 다 도착해서 그만 균형을 잃고 쓰러진 탓이었다. 사랑의 땔감 나누기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릴레이식 운반이 등장할 차례였다.

땔감을 쌓아 놓은 곳에서부터 트럭이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60~70m의 산길을 따라 사람들이 늘어섰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 어른, 여성들 사이에 남성들이 하나씩 끼는 형태로 인간 컨베이어벨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손에서 손으로 건네진 한 트럭 가량의 나뭇단이 산아래 쪽에 기다리고 있는 트럭에 실리기까지는 30여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트럭이 실린 나무는 기름보일러를 들였지만 아궁이를 그대로 두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군불을 때왔다는 신론리 용만순(72) 할머니에게 전달됐다. 용씨는 지난해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다리 수술을 하고 나서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가지도 못하고, 기름값이 무서워 기름보일러 작동스위치를 항상 ‘외출’에 맞춰 두고 전기 장판을 깔고 생활해 오고 있다. 집앞에 쌓인 땔감 선물을 본 용씨는 나무를 싣고 간 사람들에게 “고구마라도 삶아야 하는데 다리 때문에 농사를 못 지어서…”라고 말꼬리를 흐리면서도 “한 달은 땔 수 있을 양”이라며 기뻐했다.

양평/글·사진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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