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 정상 비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긴 줄을 서기도 한다.
취약한 고산 정상 밟혀 무너지는데, 정상 증명사진 행렬 이어져
깔판 깔고 삼겹살 굽기…유원지 갈 사람, 정상 올린 등산로 개수도 문제
깔판 깔고 삼겹살 굽기…유원지 갈 사람, 정상 올린 등산로 개수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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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으로 가는 산길을 조심스럽게 오른다. 수많은 등산객들의 발길에 속살을 훤히 드러낸 산길을 차마 성큼거리며 오를 수 없다. 돌계단조차 무너져 내리면서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상처는 더욱 깊고 넓다.
대청봉을 덮었던 산풀꽃들이 사라진 지 오래고 돌무더기조차 흔들려 빠져나간 자리에는 부슬거리며 흙이 쓸려 내리고 있다. 상처를 딛고 서서 할 말을 잃은 채 오래도록 침묵에 빠진다.
상처를 딛고 서서 우리들이 할 일은 고작 정상 비석을 붙들고 증명사진을 찍는 일뿐일까? 상처 위에 깔판을 깔고 술판을 벌이는 일뿐일까? 상처를 덮고 아물기를 기다리는 자리에 들어가 도시락을 먹는 일뿐일까?
주말이면 대청봉은 정상 비를 붙들고 사진 찍느라 길게 줄을 서고 여기저기 깔판을 깔고 앉아 밥을 먹는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밥을 먹도록 되어 있는 중청대피소까지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지만 막무가내다. 취사금지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붙어 있으나 불만 피우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인 것이다.
아예 출입금지 구역 안으로 들어가 둘러 앉아 밥을 먹는 등산객들도 많아서 10여 년 전에 복원공사를 마쳤지만 고산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아고산지역은 복원이 더디거나 안 되는 곳이어서 우리들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만 편리함만을 찾는 등산객들의 눈에 설악산은 유원지일 뿐이다.
일일이 쫒아다니며 말을 해도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흘려 버린다. 흙은 쓸려나가고 바위가 드러난 대청봉은 돌무더기처럼 황량한 모습으로 누워 있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청봉을 떠나 깊게 패이고 돌들이 빠져나오면서 무너지는 산길을 따라 중청대피소 앞에 이르면 대청봉을 넘어온 사람들과 중청대피소에 예약을 하고 일찌감치 올라온 등산객들이 뒤섞여 밥을 해먹느라 장터처럼 붐빈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시끌벅적한 것이 유원지에 와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게 한다. 삼겹살과 소주, 막걸리에 상추와 곁들여 먹는 먹거리는 물론이고 무쇠불판까지 지고 올라온다. 이렇게 벌어지는 술판은 늦은 저녁까지 이어지고 대피소 안까지 삼겹살 굽는 냄새로 가득 찬다.
등산로에 돌계단이 깔리고 나무데크로 자연방해물을 없앰으로써 사람들을 정상부에 오르도록 부추겼다. 유원지에 갈 사람들이 이제는 고산 정상부를 찾는다. 그래서 이제 대청봉은 유원지가 되었다.
글·사진 작은뿔 박그림/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설악녹색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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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금지 팻말이 무색하게 고산식물 보호구역 안에서 식사를 하는 등산객들.
장터처럼 붐비는 중청대피소 부근. 해마다 8월의 주말은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때이다.
고산 등반객의 밥상이 푸짐하다. 이들은 산에 왔을까, 유원지에 왔을까.
대청봉에서 케이블카 반대 일인시위를 벌이는 필자.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설악산은 더욱 유원지처럼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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