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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물바람숲

한반도는 빙하기 야생동물의 피난처였다

등록 2013-09-25 15:20수정 2013-09-25 17:05

북아메리카에 사는 도롱뇽과 흡사한 이끼도롱뇽. 계통생물지리학은 이들이 어떻게 한반도에 살게 되었나를 해명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사진=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 생물자원 포털
북아메리카에 사는 도롱뇽과 흡사한 이끼도롱뇽. 계통생물지리학은 이들이 어떻게 한반도에 살게 되었나를 해명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사진=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 생물자원 포털
너구리, 다람쥐, 참개구리 등 한반도서 춥고 건조한 빙하기 피했다 다시 확산
유전자 분석 이용한 계통생물지리학 연구로 진화 수수께끼 속속 풀려

▷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 웹진 ‘물바람숲’ 기사 더보기

■ 미국 도롱뇽이 한반도에 산다 

축축한 계곡에 사는 양서류인 도롱뇽이 가장 풍부한 곳은 북아메리카이다. 전 세계 도롱뇽 535종의 70% 가까이는 허파도 아가미도 없이 피부로만 호흡하는 미주도롱뇽과에 속하는데, 이 무리의 99%는 북미와 중미에 서식한다. 미주 대륙 밖에 서식지가 두 곳 있는데 하나가 이탈리아 등 지중해 서부이고 다른 한 곳은 바로 한반도이다.

2005년 2월17일치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아시아 서식 미주도롱뇽 처음 발견”이란 논문이 민미숙 서울대 수의대 한국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 박사를 제1저자로 해서 실렸다. 미주도롱뇽이 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된 것을 두고 양서류 학계는 온통 흥분에 빠졌다. 이동능력이 미미한 북미의 도롱뇽은 어떻게 한반도까지 간 걸까?

아직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학계의 대체적인 가설은 이렇다. 한반도의 미주도롱뇽인 이끼도롱뇽은 북미의 친척과 6000만년 전에 갈라졌다. 미주도롱뇽은 북미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베링해협이 폭 1600㎞의 육교로 연결된 적도 있다.

그런데 무언가의 이유로 유라시아의 미주도롱뇽은 거의 멸종하고 북미에서만 번창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미주도롱뇽이 살아남은 까닭은 뭘까. 우연인가 아니면 한반도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나.

이런 수수께끼를 풀어줄 강력한 수단을 계통생물지리학이 제공하고 있다. 생물종이 어떻게 현재의 지리적 배치를 하게 됐는지를 분자생물학을 통해 밝혀내는 학문 분야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하는 것이 피난처이다. 지난 250만년 동안 지구에는 4만~10만년 주기로 빙하기가 찾아왔다. 생물들은 피난처에 움츠러들어 극심한 기후변화를 피했다가 다시 퍼져나가곤 했다. 그런 역사의 흔적은 생물의 유전자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 빙하기 때 한반도와 일본은 연결됐지만 너구리는 건너가지 않아

민미숙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이 동아시아가 고향인 너구리가 가장 최근의 빙하기가 한창이던 약 2만년 전 어느 곳에 피난했다가 어떻게 확산했는지를 계통생물지리학을 이용해 규명했다. 이 논문은 국제학술지 <동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렸다.  

현재 너구리는 한반도와 중국·러시아 동부, 일본, 그리고 인위적으로 유입된 유럽에 분포한다. 온대지방에 사는 너구리는 춥고 건조한 빙하기 동안 피난처에서 버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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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바다에서 증발한 수분이 눈과 얼음으로 육지에 쌓여, 해수위는 지금보다 100m 이상 낮았다. 건조한 초원지대로 바뀐 황해에는 매머드 무리가 돌아다녔고, 한반도와 일본은 육지로 연결됐다.

이상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박사 등이 최근 경기도 하남의 퇴적층 꽃가루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만1100~2만61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이곳의 연평균 기온은 현재보다 5~6도 낮고 강수량도 40% 적어, 백두산 근처 아고산대에서 볼 수 있는 가문비나무, 소나무, 자작나무 숲이 펼쳐졌다.

민 박사팀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러시아, 중국, 베트남, 일본의 너구리 147마리에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채취해 비교분석했다. 그랬더니 최근 빙하기 때 너구리는 한반도와 중국 동부, 일본에 따로 형성된 소규모 피난처에 모여 있다가 이후 유라시아 대륙으로 급격히 팽창했음이 드러났다.

모피를 얻기 위해 사육 중인 너구리.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모피를 얻기 위해 사육 중인 너구리.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한반도는 직접 빙하에 덮이지 않았지만 춥고 건조한 기후변화 영향을 받았고, 특히 백두산에는 빙하가 형성돼 중국과 한반도 너구리를 격리하는 장벽 구실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한반도와 일본은 육지로 연결됐지만 너구리의 이동은 없었다.

유전적으로 한반도의 너구리는 일본보다는 베트남 너구리와 더 가까웠다. 한반도와 일본 너구리의 유전적 차이는 2.4%인데 견줘 한국-러시아는 0.4%, 한국-중국 0.6%, 한국-베트남 0.6% 등의 차이를 보였다.

민 박사는 “매머드와 사슴 등 큰 동물은 빙하기 때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행동반경이 좁은 너구리는 그런 이동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의 너구리는 100만년 이상 전 빙하기 때 한반도에서 이동해 간 무리가 격리돼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본 너구리는 염색체수가 38개로 한반도나 중국 너구리의 54개보다 적으며 외형 상으로도 차이가 난다.

이처럼 한반도가 너구리의 주요한 피난처가 된 결과로 유전다양성이 매우 낮은 현상이 나타났다. 민 박사는 “소수의 너구리가 한반도 남쪽에서 살아남으면서 일종의 병목현상을 일으켰고, 이후 집단이 급격히 늘어났지만 유전다양성이 낮은 결과를 빚었다. 여기엔 산업화 이후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인한 영향도 작용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너구리의 확산에 지질학적 기후변화보다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사람의 인위적 방사였다. 소련은 모피를 얻기 위해 1920년대부터 시베리아와 아르메니아 등에 러시아 너구리 1만 마리를 풀어놓았고, 이 가운데 일부가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핀란드에서만 2010년 16만 마리의 너구리를 포획하는 등 너구리는 유럽에서 퇴치할 외래종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한반도는 빙하기 너구리의 세계적 피난처였다' 기사 참조 )

■ 백두산 얼음이 가로막아 별개 종이 된 한반도 다람쥐

세계적으로 다람쥐 무리에는 25개 종이 있는데 이 가운데 24종이 북아메리카에 산다. 유일하게 미주 밖에 있는 다람쥐는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러시아 동부에 걸쳐 서식한다.

그런데 이들도 빙하기 때 몇 곳의 피난처에 고립됐다 팽창했으며 한반도는 그런 피난처 가운데 하나였음이 드러났다. 또 그런 고립의 결과 한반도 다람쥐는 이제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중국·러시아 다람쥐와는 종이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둥지에 모여있는 어린 다람쥐. 사진=김성호 서남대 교수
둥지에 모여있는 어린 다람쥐. 사진=김성호 서남대 교수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등 한국·러시아·중국 연구진은 이들 3개 나라 다람쥐 72개체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해 국제학술지 <분자와 세포>에 발표했다. 그 결과 빙하기 때 한반도와 러시아-중국 동북부에 적어도 2곳의 피난처가 있어 여기서 살아남은 다람쥐가 간빙기 때 동북아에 확산됐음이 드러났다. 그런데 백두산 일대의 빙하가 장벽 구실을 해 한반도 다람쥐와 동북아 다른 개체의 교류를 막은 것으로 밝혀졌다.

한반도 다람쥐와 러시아-중국 동북부 다람쥐는 유전적 차이가 11.3%에 이르렀는데, 이는 격리 시간이 293만~58만 년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교수는 “이제까지 형태나 생태적으로 한반도 다람쥐와 동아시아 다람쥐를 동일한 종으로 보아 왔지만 유전적으로는 별개의 종으로 구분될 수 있음이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똑같은 빙하기 기후변화에도 한반도의 반달가슴곰과 호랑이 등 대형 포유류는 중국 동북부, 러시아 개체와 유전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나타난 반면 너구리는 아종으로 구분되고 더 소형인 다람쥐는 아예 다른 종으로 나뉜 것이다.

빙하기 때 한반도를 피난처로 살아남은 참개구리. 사진=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 생물자원포털
빙하기 때 한반도를 피난처로 살아남은 참개구리. 사진=국립생물자원관 한반도 생물자원포털
한반도는 이밖에 참개구리, 꼬리치레도롱뇽, 흰넓적다리붉은쥐 등 동아시아 생물들이 빙하기 때 살아남은 피난처 구실을 했음이 다른 계통생물지리학 연구로 차츰 밝혀지고 있다.

이항 교수는 “유럽에서는 이베리아·이탈리아·발칸 반도가 빙하기 때 피난처 구실을 했음이 밝혀졌다. 동아시아는 유럽보다는 지리적으로 복잡하고 이제 연구가 시작단계이지만 한반도가 주요한 피난처의 하나였음이 드러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계통생물지리학 연구는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이 교수는 “지리산에 러시아 반달가슴곰을 도입해 복원한 것은 바로 이런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다. 반달가슴곰은 한국·중국 동북부·러시아가 하나의 ‘보전 단위’이다. 다른 종도 계통생물지리학으로 어느 범위를 지켜야 유전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 S. Min et. all., Discovery of the first Asian plethodontid salamander, Nature 435, 87-90 (5 May 2005), doi:10.1038/nature03474

S.-I. Kim et.al.,Phylogeography of Korean raccoon dogs: implications of peripheral isolation of a forest mammal in East Asia

Journal of Zoology 290 (2013) 225–235, doi:10.1111/jzo.12031

Mu-Yeong Lee et. al., Mitochondrial Cytochrome b Sequence Variations and Population Structure of Siberian Chipmunk(Tamias sibiricus) in Northeastern Asia and Population Substructure in South Korea, Mol. Cells OS, 566-575, December 31, 200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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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로서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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