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동호회 ‘미예찬’ 소속 작가들이 10일 오후 서울 잠실동 서울장애인창작스튜디오에서 막을 올린 ‘창립전’에서 함께 했다. 왼쪽부터 이상익, 윤희경, 이붕열 국제미술협력기구 대표, 김선기, 민영희, 고민숙, 류영일, 송광근씨. 사진 서울시립북부장애인복지관 제공
장애인 화가 모임 ‘미예찬’ 창립전…“작업실 있었으면”
휠체어에 앉은 송광근(35)씨가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자신이 그린 그림 <무릉도원>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전남 보길도에 있는 세연정이라는 정자예요. 도서관에서 우연히 사진을 봤는데…. 가보고 싶은 곳이 있을 때는 이렇게 그림으로 아쉬움을 대신합니다.”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안에 있는 서울장애인창작스튜디오에서 뜻있는 행사가 열렸다.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 소속 화가 7명이 결성한 미술 모임 ‘미예찬’ 창립전시회가 열린 것이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송씨는 고등학교 3학년때 감기약을 잘못 먹은 뒤로 뇌수막염에 걸려 지체장애인이 됐다.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홀로 서울로 와 장애인복지단체에서 마련한 재활훈련장에서 조각상에 마감재를 칠하는 일을 10여년간 했다. 몸이 더 나빠져 하던 일을 관두고 집에서 쉬던 중 지난 2005년 우연히 들른 서울시립북부장애인복지관에서 미술반을 운영한다는 걸 알게 돼 가입했다. 여기 와보니 자신처럼 못다 이룬 화가의 꿈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2002년부터 미술반에 들어온 고민숙(49)씨도 건강하던 27살, 갑자기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치료를 받던 중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다가 그림을 떠올렸다. 이들은 처음에는 연필과 스케치북만 들고 소묘를 배웠다가 차차 회화에도 도전했다. 이붕열 국제미술협력기구 대표가 매주 한번씩 방문해 그들을 가르쳤다. 입소문이 나자 그림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어릴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아온 윤희경(42)씨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지만, 결혼 뒤 자녀를 키우느라 그림을 중단했다가 이곳 회원인 김선기(40)씨의 소개로 미술반에 들어왔다.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이상익(59)씨는 하회탈을 만들다, 이곳 미술반과 인연을 맺으면서 회화로 전공분야를 ‘전향’했다. 지난해 민영희(41)씨가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이들을 결집하는 데는 미술반 ‘반장’인 류영일(49)씨의 역할이 컸다. 다른 사람보다 두손 두발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류씨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1톤 트럭에 이들을 태우고, 짐칸에는 휠체어와 그림도구를 실어 경기도 등지로 야외스케치를 떠나기도 했다.
불편한 몸인데도 이들은 왜 그림을 그리는 걸까. 류씨는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하면 정말로 통증도 잊는다”면서 “그때만큼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이다. 이날만 복지관 10평짜리 방이 그들을 위해 개방된다. 조그만 방에서 7명이 다닥다닥 붙어앉아 그림을 그린다. 각자의 개성대로 유화나 수채화를 그리고 싶지만, 빨리 마르기가 어렵고 좁은 방에 냄새도 나 아크릴 물감을 쓴다. 윤희경씨는 “우리들만의 작업실을 갖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2007년과 2008년에는 노원구 백병원에서 이들의 그림을 구입해 전시회를 열었다. 이들은 각종 미술대전에 참가해 수상을 받고 몇몇은 개인전을 열 정도로 실력을 쌓았다. 전업 화가까지는 아직 갈길이 멀지만 이들에게 붓은 삶을 지속시켜주는 도구다. 고민숙씨는 “그림만 보고서 장애인이 그렸는지 비장애인이 그렸는지 알 수 있나요?”라며 “가장 평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게 바로 그림이에요”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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