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인 홍서윤(28)씨는 대학원 방학을 이용해 외국여행을 즐긴다. 몇년 전부터 필리핀, 싱가포르, 홍콩, 타이 등 아시아권을 다니다가 지난해엔 홀로 스위스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스위스 융프라우를 산악열차를 3번 갈아타며 올라갔다.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여행을 즐겼다. 홍씨는 지난달에도 일본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이곳 ‘배리어 프리 투어센터’에서는 휠체어로 찾아가기 쉬운 관광지를 안내해준다. 또 장애인·노약자를 위한 시설을 잘 갖춘 호텔, 도우미가 있는 해양스포츠 시설에 대한 정보도 알려준다.
휠체어 지체장애인 커플인 ㄱ(33)씨와 ㄴ(30)씨도 지난해 일본 홋카이도로 3박4일 여행을 다녀왔다. 호텔에 도착하니 문턱이 없고 장애인 화장실을 갖춘 방을 안내해줬다. 한국에서는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워 ‘자동차 영화관’에서 심야영화를 보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였는데, 일본 여행은 이런 시선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장면 해설이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을 삽입한 ‘배리어 프리 영화’는 여전히 적지만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진정한 ‘배리어 프리’는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는 데 있다. 홍씨나 ㄱ씨 커플처럼 외국여행을 즐길 수 있는 장애인은 소수에 그친다. 무엇보다 장애인들의 여행 욕구는 크지만 이들을 위한 맞춤형 여행상품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4월 홀로 이동이 가능한 장애인 23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최근 3년 사이에 외국여행을 경험한 장애인은 15.7%에 그쳤다. 비장애인의 외국여행 비율 49%(2014년)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장애인들은 외국여행을 가지 못하는 이유로 비싼 비용(65%)과 함께 ‘장애인을 위한 여행상품이 없는 점’(54.7%)을 많이 꼽았다.
대형 여행사의 경우 장애인 여행상품을 파는 곳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유니버셜디자인투어’처럼 장애인을 위한 외국여행 상품을 파는 업체는 극소수다.
국내여행 경험은 외국여행에 견줘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높은 문턱’은 여전하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응한 장애인 가운데 72.6%가 최근 3년 내 국내여행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이들도 ‘이동 편의시설 부족’(74.1%), ‘여행상품 부재’(44.8%) 등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윤삼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18일 “그간 장애인의 권리 향상 운동은 참정권과 노동권 등을 신장하는 데 집중됐다. 하지만 문화를 향유할 권리, 여행할 권리 등 개인 내면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장애인들이 직접 여행사나 관련 단체를 차리기도 한다. 시각장애인 김민아씨는 올가을 장애인과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사를 협동조합 형태로 설립할 예정이다. 김씨는 “여행 욕구는 있지만 패키지여행이 어려운 장애인과 노인의 여건을 고려해 개인별 사정과 취향에 맞게 여행상품을 짜주려 한다”고 했다. 지난 4월에는 지체장애인 10여명이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라는 시민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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