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회원들이 15일 오후 사회보장위원회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 충정로사옥 앞에서 ‘활동보조 24시간 보장’과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을 요구하는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선언’을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휠체어에 불편한 몸을 실은 여남은 명이 각자의 목에 팻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거지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최영은입니다.’ ’나, 인현. 나는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를 더이상 모욕하지 마십시오!’…. 이들의 요구는 예외 없이 자신의 이름과 동행했다. 이름은 이들의 개별적인 존엄성을 증명하는 상징이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팻말의 글귀를 읽었다. 자신의 이름조차 선명하게 발음되지 않았다. 제 입으로 읽을 수 없는 이들이 더 많았다. 활동보조인이 대신 읽기도 했고, 스마트폰에 미리 글귀를 입력해와서 ‘의사소통보조기구’(AAC)의 기계음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자신의 존엄성을 선언하는 일은 비상한 물리적 결행처럼 보였다.
15일 낮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사회보장위원회에서 열린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선언’ 행사장.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은 40여년을 목수로 일하다 심장질환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질병 수당을 신청하지만, 온갖 치욕만 겪는다. 그는 고용센터 건물 벽에 스프레이로 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질병 수당 항고 날짜를 잡아 주라고 요구한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노들장애인야학 교장)가 휠체어 바퀴를 굴려 건물 외벽과 유리창을 따라가며 스프레이로 쓴다. ‘나, 박경석. 개가 아니라 인간이다.’ 자신이 인간임을 입증하려는 듯 이름 석자를 여러 번 덧칠해서 쓴다.
이들은 2015년 4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지자체 사업 조정’ 등을 통해 3조원의 재정을 절감하는 ‘복지재정 효율화 추진 방안’을 결정한 이후 ‘복지 축소’가 본격화됐다며, ‘사회보장제도 협의·조정’ 권한을 가진 사회보장위원회의 역할을 중단시키고 ‘불승인’ 처리된 지자체 사회보장제도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20대 국회 들어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협의·조정제도’ 개정을 골자로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 상임위에 머물러 있다.
이날 장애인들의 ‘인간선언’은 대리석 외벽의 위용을 갖춘 고층빌딩 측면에 딸린 주차장에서 이뤄졌다. 정문 쪽으로 돌아가는 모퉁이를 경찰들이 가로막았다. 건물 내부는 고요했고, 건물 안에 들어앉은 조직도 고요해 보였다. 이들이 떠나고, 건물 청소노동자들이 바빠졌다. 유리창에 쓴 스프레이 글씨는 끌과 걸레, 진공청소기로 서둘러 지워졌고, 대리석에 쓴 글씨는 하얀 종이 합판으로 가려졌다. 안영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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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가 사회보장위원회 건물 외벽에 스프레이로 자신의 이름을 쓴 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