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지난 14일 오후 경기도 여주 집에서 인터뷰하던 중 서로의 화상 부위를 살펴보고 있다. 여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4일 오후 2시 경기 여주시의 한 임대아파트. 현관에 들어서자 거실에 있던 준수(가명·8)가 벌떡 일어났다. 호기심 가득한 눈이 한껏 커졌다. 거실 한쪽에 앉아 “옆으로 와볼래?”라고 하자 조르르 달려오더니 좀처럼 일어나질 않았다. ‘탁, 탁, 탁’ 노트북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신기했을까. 준수는 손가락을 내밀어 키보드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싱긋 웃었다. 또래 아이들이 낯선 사람에게 보일 법한 경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준수가 워낙 밝아요. 뽀뽀하는 것도 좋아하고 안고 안기는 걸 좋아해요. 부모한테는 애교 많은 아들이죠.” 엄마 박미경(가명·40)씨가 준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준수가 엄마 볼에 ‘기습 뽀뽀’를 했다.
준수는 지적장애 2급이다. 어릴 때 그저 말이 좀 느리다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준수는 수업시간에 교실에 앉아 있지 않고 자꾸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준수를 찾으러 1학기 내내 거의 매일 학교에 가야 했다. 지난해 6월 지적장애 2급 진단을 받고 장애인 등록을 했다. 아빠 이영재(가명·40)씨는 “준수 나름대로는 열심히 말한다. 수다쟁이다. 그런데 발음이 잘 안돼 상대방이 잘 못 알아듣는다”고 말했다. 기자가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도 ‘네’ 정도가 전부였다.
화상 상처로 인해 왼손에 압박용 장갑을 낀 준수가 엄마에게 다가가 귀엣말과 함께 애정 표현을 하고 있다. 여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준수와 엄마, 아빠에겐 공통점이 있다. 씻을 때를 제외하곤 온종일 장갑을 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떡살’(비후성 반흔. 피부가 부풀어 오르고 가려움증과 통증을 동반)이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한 압박용 장갑이다. 조심스레 장갑을 벗자 상처 부위들이 드러났다. 아빠는 두차례, 엄마는 한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붉고 거무스름하게 변한 피부가 여전히 부풀어 올라 있었다. 상태가 가장 심한 아빠의 왼손은 주먹조차 쥐지 못할 정도로 굳어 있었다. 앳된 준수의 손 역시 마찬가지였다. 붉은 상처가 손가락부터 손목 바로 아래까지 퍼져 있었다. 불길이 지난 흔적이다.
화마가 덮친 건 지난 1월12일 밤 9시께였다. 준수네 가족은 시내 상가 건물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45만원을 내고 4년째 살고 있었다. 3월에도 집 안보다 바깥이 더 따뜻할 정도로 한기가 도는 집이었다. 가스비 부담에 거실에 석유난로를 켜고 생활한 게 사고의 발단이 됐다. 아빠 이씨가 난로에 기름을 넣는 중에 그만 기름이 난롯불에 튀었고, 불꽃은 단열을 위해 벽에 붙여뒀던 폼블록에 옮겨붙었다. 스티로폼 재질인 폼블록은 불길이 닿자마자 녹기 시작했고 유독가스까지 내뿜었다.
화상을 심하게 입어 두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한 준수 아빠의 양손. 여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불을 끄려고 했는데…, 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폼블록을 타고 무섭게 번진 불길에 아빠는 등과 복부, 손발에 화상을 입었고, 엄마도 손발에 화상을 입었다. 준수는 손과 얼굴 부위에 2~3도 화상을 입었다. 집은 전소했다.
불은 여섯살 막내딸마저 데려갔다. 막내딸은 집 현관 반대쪽 방에서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진 채 발견됐다. 아이는 방 안에 함께 있던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고 했다. “아이를 구하러 가려 했는데…. 가지 못했어요.” 엄마 박씨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세 사람은 서울에 있는 화상전문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처음에는 얼굴을 붕대로 꽁꽁 싸매 눈이 잘 보이지도 않았거든요. 준수가 무서워하면서 많이 울었어요.”(박씨) 엄마 박씨 역시 정신을 차리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눈을 떴는데 어디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여기가 여주냐고 물어봤을 정도였지요.”
이어진 화상 치료는 “맨살을 수세미로 문지르는 것 같은 고통”(이씨)의 연속이었다. “피부를 긁어내고, 다음날 진물이 올라오면 또 벗겨내고…. 이걸 매일 반복했어요. 보름쯤 지나 피부 이식 수술을 했는데 그 뒤로 통증이 좀 줄었어요.”
준수는 얼굴 화상 부위가 심하게 부어올랐다. “준수 얼굴이 원래대로 안 돌아올까봐 무서웠어요. 사고 직후엔 터질 것처럼 빵빵하게 부었거든요. 의사 선생님이 처음에는 이식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지금은 수술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이 좋아졌어요.” 엄마는 고통을 잘 참아준 준수의 뺨을 쓰다듬었다.
넉달 전 화재로 여동생을 잃은 준수(가명)군과 아빠가 14일 오후 경기도 여주 집에서 인터뷰하던 중 서로의 화상 부위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1월12일 석유난로로 인한 화재로 집이 전부 불타고 이 화재로 6살 여동생이 사망했다. 여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급한 치료는 마쳤다지만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은 크다. 아빠 이씨는 “아내나 저나 모두 발을 다쳐서 한 자세로 오래 서 있지를 못한다”고 말했다. 아이들 밥을 차려주려고 싱크대 앞에 1분만 서 있어도 진땀이 난다.
치료 또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씨는 자꾸 굳어 가는 왼쪽 손 재건 수술이 필요하다. 준수는 피부가 굳은 상태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피부 땅김, 기능 장애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어느새 준수는 자면서 피부를 긁는 게 습관이 됐다. 밥솥에서 연기만 올라와도 무서워하고 밤에 불이 나서인지 밤을 무서워한다. 전형적인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이다.
여동생에 관한 기억도 사라져버렸다. 여동생 사진을 보여주며 ‘누구냐’ 묻자 준수는 ‘모른다’고 대답하며 사진을 밀어냈다. “준수가 ‘그날’의 기억을 닫아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아예 말을 꺼내질 않습니다.” 박씨는 아들이 혼자 아픔을 감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다고 했다.
사고 당시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은 큰딸 지원(가명·17)이도 ‘그날’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원이는 사고 뒤 집 밖으로만 돈다. 지원이는 무료 전화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지난 3월8일 퇴원한 세 식구는 시의 긴급 주거지원을 받고 한달쯤 뒤 지금 사는 엘에이치(LH)전세임대주택으로 이사 왔다. 비극의 잿더미를 빠져나오고 싶지만 상황은 쉽지 않다. 의류회사 협력업체에서 물류 업무를 하며 세 아이를 키웠던 아빠 박씨는 집 보증금과 생활비, 병원비 등으로 생긴 빚이 어느새 8500만원이라고 했다. 아빠는 2017년 개인회생을 신청해 월 25만원씩 갚고 있지만, 이는 아빠 이름으로 빌린 7000만원에만 해당한다. 엄마 박씨의 이름으로 제3금융권에서 빌린 1500만원은 지금도 독촉장이 날아오고 있다.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 싶어요. 매달 병원을 가야 하는데 연차를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요.” 아빠는 언제쯤 취업 전선에 복귀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엄마도 가정 살림에 보태려고 아웃렛 매장 물류센터에서 잠시 일했지만 준수를 위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현재 준수네 가족은 긴급생계비 월 117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지원은 7월이면 끝난다. 다행히 세 사람의 입원 치료비 7000만원 가운데 본인부담금 2200만원은 지원을 받아 대부분 해결됐지만, 앞으로의 치료와 재건 수술 등에 필요한 비용이 문제다.
“준수가 20~30일에 한번씩 경기를 일으키는데, 심할 때는 입에 거품을 물어요. 준수가 한살이 되기 전부터 병원에 다니며 원인을 찾아보려 했지만 의사는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다’고만 했죠.”
준수는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에서 피부 재활 마사지를 받고 있는데 이 비용만 한번에 10만원, 한달이면 40만원이다. 마사지는 화상 부위가 딱딱해지거나 커지는 것을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이 외에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준수를 위한 언어치료와 심리치료 등에 드는 비용도 한달에 20여만원이다. 약값도 상당하다. 보습 연고가 한통 9만원, 마사지 오일은 한통 10만원, 화상 상처 부위에 붙이는 특수 밴드 한장에 14만원이다. 모두 자기부담이다 보니 이씨는 “(돈이) 무서워서 못 바를 정도”라고 말했다. 준수에게 먼저 발라주고 아빠와 엄마는 시중에 파는 아기용 로션을 바른다.
생계비 지원이 끊기면 준수의 마사지마저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흉터가 있어도 상관없지만 아직 어린 준수는 아니잖아요.” 엄마 박씨가 울먹였다.
엄마와 아빠의 가장 큰 멍에는 막내딸을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예쁘고 똑똑한 아이였어요. 엄마, 아빠가 울면 와서 눈물 닦아주고, 어린이집에 가서는 ‘반장’ 노릇도 하는 똑 부러지는 아이였는데….”(이씨) 한글을 다 떼고 오빠 준수에게 글자를 가르쳐주곤 했던 아이의 장례는 부부 모두 병원에 있는 동안 외할아버지가 치렀다. 막내딸은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산 어딘가에 뿌려졌다. 정확히 장소를 알려주지 않아 부부도 짐작만 할 뿐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만 본 게 여러 번이다.
그래도 엄마 박씨는 매일 마음을 다잡는다. 준수의 뇌전증과 화상 상처를 완치시키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아빠 이씨도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두고 거기에 갇히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직도 막내딸 생각을 하면 눈물부터 고이지만 남은 아이들이 이번 사고를 잘 극복하는 게 우선임을 알기 때문이다.
준수에겐 꿈이 생겼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으니 “의사”라는 답이 돌아왔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준수 아픈 것 낫게 해줘서?”라고 묻자 준수는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엄마 품에 꼭 안긴 채였다.
준수(가명)네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기업은행 035-100411-01-456, 예금주: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누리집(
www.childfund.or.kr)과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에서도 후원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1588-1940)으로 문의해주십시오. 모금에 참여한 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 연락해주시면 기부금 영수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10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준수네 가족 화상 재활치료와 생활안정지원 비용으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1000만원 이상 모금될 경우 목표액이 넘는 금액은 다른 위기 가정에 지원됩니다.
<한겨레>와 국제구호개발 엔지오(NGO) 세이브더칠드런이 함께 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16년간 이어진 가정폭력으로 폭행과 아동학대 후유증, 생활고에 시달리는 민석(가명)이 가족의 사연(
▶관련 기사 : 16년 가정폭력 벗어났지만…11살 민석이는 아직 말을 뭉갠다)이 소개된 뒤, 목표 모금액 1300만원을 넘긴 총 3242만8577원(5월27일 기준)의 따뜻한 마음이 모였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시민은 900만원이라는 큰 금액을 후원해주셨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에 “작은 도움들이 모여 힘이 되어서 아이들이 세상을 믿고 다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등의 응원 메시지를 남긴 후원자들도 있었습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후원금은 민석이 가족의 생계비와 심리치료비, 교육비 등으로 쓰이며 목표액을 넘어선 후원금은 민석이 가족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다른 위기 가정에 지원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여주/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