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위스테이 별내’가 지난달 29일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협동조합의 옷을 입은 아파트가 ’욕망의 중심’이 아니라 ’공동체의 그릇’ 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이번 ‘헤리의 눈’에서는 공동체 친화적인 아파트에 대해 고민해 온 사회혁신기업 ‘더함’의 김종빈 이사가 보내온 글을 소개합니다. - 편집자 주
최근 입주를 시작한 경기 남양주 위스테이 별내단지. 휠체어와 유아차는 물론 아이들과 어르신들의 통행 편의를 위해 차도와 인도의 경계석을 없앴다. 사진 더함 제공
“53년 만에 처음으로 제 몸에 맞는 집을 만났어요.”
얼마 전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에 입주한 김미연 조합원의 말이다. 그는 장애 당사자이면서 오랜 기간 장애인 권리 증진을 위해 헌신해 왔고, 한국 여성 최초로 UN장애인권리위원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몸에 맞는 집’을 처음 만났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많은 장애인들은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조차 위험한 순간을 경험한다. 규격화 된 내부와 가구, 동선 등 모든 것이 비장애인에 맞춰져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 적시하는 의무 기준들로 공공시설이나 대형 오피스 건물로의 접근성은 일정 정도 향상되었지만, 주거 공간 내부와 근접 환경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정부 및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장애인 가구에게 화장실 개조나 문턱 제거, 안전용 손잡이(핸드레일) 설치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지만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이 대상이다. 자비로 재원을 마련하더라도 자기 소유 주택이 아니라면 집주인과 협의라는 난관이 남아 있다.
‘위스테이 별내’ 조합원인 김미연(오른쪽)씨가 입주 전 더함 직원으로부터 주택 구조에 대해 설명 듣고 있다. 사진 더함 제공
당사자 관점이 반영된 공간의 힘
국내 최초로 시도된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위스테이’는 장애인 입주자를 고려한 ‘배리어 프리’(고령자나 장애인들도 편하게 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건축 분야에서 시작된 용어) 설계가 적용된 3개 세대를 가지고 있다. 나아가 세대 단위를 넘어 단지 전체를 유니버설 디자인 철학에 맞춰 ‘장벽 없는 아파트’로 조성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신체가 아주 불편한 조건이 되었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장애인을 넘어 누구나 생애주기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을 창시한 미국 유명 건축가 로널드 메이스는 장애인만을 위한 별도의 대처가 오히려 장애를 강조하거나 자칫 은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만을 위한 혜택처럼 보이거나, 일부 편의 제공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혁신기업 더함은 높은 주거비 문제에 대해 협동조합을 통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위스테이 사업을 시작했다. 아파트 입주자는 협동조합에 출자한 조합원이면서 동시에 임차인이며, 주변 시세보다 20~30% 저렴한 임대료로 8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사업인 위스테이 별내는 지난달 경기도 남양주 별내에서 입주가 시작되었고 2022년 상반기에는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에서 입주가 이뤄질 예정이다.
주거공급과 공동체 형성에 초점을 두고 일을 추진해오던 더함은 사업 초반에 김미연 조합원이 장애인으로서 주거공간 내에서 겪는 여러 어려움들을 접했다. 회의를 통해 배리어 프리 세대 및 단지 전체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았다. 세부적 사항들은 김미연 조합원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그러자 막상 그가 무척 놀랐다. 개인의 의견이 아파트 설계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는 거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 중 최초로 아파트 설계 단계에서 의견을 낸 사람이지 않을까요?”
김미연 조합원이 제일 먼저 제안한 것은 방문을 미닫이로 설치하는 것이었다. 가장 불편을 겪는다는 화장실과 드레스룸에 미닫이문을 설치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여닫이 방문을 열고 닫는게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다. 문을 열 때 안쪽으로 열리면 휠체어에 부딪히고, 바깥쪽으로 열리면 문을 잡은 상태에서 휠체어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턱이 있고 물기가 많은 화장실은 더욱 위험하다. 때문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여닫이 문을 사용할 때 문에 줄을 매달아 열고 닫는다. 또한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오랜 휠체어 생활로 약해진 다리 근육으로 양변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다. 위스테이 배리어 프리 세대에는 화장실에 단을 쌓아 변기의 위치를 높였다. 변기 옆 안전바의 위치도 사람의 신체 조건을 세밀하게 반영하여 설치했다.
배리어프리 세대 내 드레스룸과 화장실로 이어지는 문을 미닫이로 변경하고, 휠체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드레스룸과 화장실 사이 문을 제거했다. 또한 자주 사용하는 세면대는 두 공간 사이의 통로에 배치하여 건식으로 사용하도록 시공했다. 사진 더함 제공
단을 쌓아 변기 위치를 높이고, 사람의 신체구조에 맞춰 안전바를 설치했다. 사진 더함 제공
공동체가 메워가는 ‘유니버셜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공간은 장애인과 노인들에게만 이점을 주는 것이 아니다. 특히 영유아 자녀들이 있는 세대들은 대번에 그 효과를 느낀다.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위스테이 별내 단지의 모든 통행로는 바퀴 이동을 고려해 조성되었다. 특히 일반 아파트 단지와 달리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경계석이 없다. 덕분에 휠체어, 유아차, 자전거 통행이 수월할 뿐 아니라, 단지 안을 뛰노는 아이들과 주민들 모두 턱에 걸려 넘어질 우려 없이 편안하게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단지 커뮤니티 시설의 출입문에는 1미터 이상 길이의 긴 손잡이를 설치해 키가 작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무리 없이 문을 열 수 있다. 최근 편의점 등 상점들도 단지 내에 입점하기 시작했는데, 이웃 조합원들이 먼저 나서서 상점 업주에게 경사로 설치를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지금 당장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앞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더 잘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나는 순간이었다.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에 설치된 긴 유니버설 디자인 손잡이. 사진 더함 제공
장애를 가진 몸으로 살아가는 것,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것 모두 다양한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공동체 삶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한다.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가 이런 가치를 먼저 보여 주는 좋은 사례가 되어, 더 많은 주거공간이 삶의 다양성을 품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김종빈 사회혁신기업 더함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