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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장애인

“꽂히면 파고드는 재능 덕분에 그림 활용한 제품도 나왔어요”

등록 2021-05-24 18:55수정 2021-05-25 02:04

[짬] 자폐스팩트럼 장애인 송종구 작가

지난 12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발달장애예술인 그림 공모전 수상작·굿즈 전시회’에서 송종구(오른쪽) 작가와 어머니 박정란(왼쪽)씨를 함께 만났다. 송 작가가 대상 수상작 ‘거리의 빛’을 활용해 제작된 굿즈 중의 하나인 천가방을 손에 들어보이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지난 12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발달장애예술인 그림 공모전 수상작·굿즈 전시회’에서 송종구(오른쪽) 작가와 어머니 박정란(왼쪽)씨를 함께 만났다. 송 작가가 대상 수상작 ‘거리의 빛’을 활용해 제작된 굿즈 중의 하나인 천가방을 손에 들어보이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지난 12일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발달장애 예술인의 작품과 그 작품을 활용해 디자인한 굿즈(제품)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는 지난해 한국장애인개발원이 개최한 발달장애 예술인 그림공모전 ‘당신의 재능이 제품이 됩니다’의 결과물로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전시가 미뤄졌다가 이날 뒤늦게 열리게 된 것이다. 전시장엔 수상작 40작품과 함께 수상작을 활용한 텀블러, 우산, 필통, 에코백 등 굿즈 18종도 함께 선보였다. 새달 10일까지 중증장애인 채용 카페 ‘아이 갓 에브리싱’(I got everything)의 전국 48개 매장에서 방문 고객 대상 굿즈 증정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이번 공모전에서 ‘거리의 빛’을 출품해 대상을 받은 송종구(30) 작가를 최근 전시장에서 만났다. 송 작가는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이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동행한 어머니 박정란씨의 도움을 받아 인터뷰를 했다.

발달장애 예술인 그림 공모전 출품
‘거리의 빛’으로 ‘대상’ 받아 전시
‘당신의 재능이 제품이 됩니다’
가방·우산 등 다양한 ‘굿즈’ 개발

새달 울산해양경찰서 위인 벽화전도
“남다른 능력 살려 일자리 연결 필요”

송종구 작가의 대상 수상작 ‘거리의 빛’을 활용한 우산 제품. 한국장애인개발원 제공
송종구 작가의 대상 수상작 ‘거리의 빛’을 활용한 우산 제품. 한국장애인개발원 제공

‘거리의 빛’은 미용실 사인볼을 그린 소품 수백 개를 이어붙인 콜라주 작품으로 아주 진한 원색이 많다. 송 작가는 어릴 때부터 거리에 나가서 여러 가지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울산 신정동에 살던 시절 거리에서 통닭집, 목욕탕, 금은방 등등을 보고 집에 오면 도화지에 연필로 그리곤 했다. “별별 것을 다 그려요. 간판, 탈, 제사상도 그렸고 뭐 하나에 꽂히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그것만 계속 파고들었어요. 전 세계 국가의 나라 이름과 국기를 다 외워요”

곁에 앉아 어머니의 얘기를 듣던 송 작가에게 물었다. 아르헨티나 수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원래 문답형 대화가 어렵지만 본인의 관심 분야라면 예외란다. 브라질 수도는? “브라질리아. 국기는 주로 초록색.” 그렇다면 빨간색이 들어간 국기는 뭐가 있을까? “일본” 초록색이 들어간 국기가 또 있을까요? “사우디아라비아” 막힘없이 답이 쏟아졌다.

어머니 박씨에게 송 작가가 원색이나 국기 같은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는지 물었더니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눈이 반짝 빛나면 뭘 발견한 거에요. 내일은 또 뭘 발견할지 알 수 없어요”라고 했다. 송 작가는 요즘 그림보다는 점토 작업에 빠져있다. 전통예술에 관심이 있어서 국악기, 탈 같은 것을 만들고 있는데 역시 오방색을 즐겨 사용한다.

공모전 심사위원장 유재춘 교수는 심사평을 통해 “송 작가의 작품은 제작에 상대적으로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에 우리도 함께, 작가를 따라 ‘꿈의 여행’을 동행해보았다. 디자이너의 판단에 따라 다양한 편집기법을 이용해 굿즈는 물론 여러 아이템으로 확산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송 작가는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는 등 2006년부터 회화와 공예부문에서 10여 차례 상을 받았고 2011년엔 서울 알파갤러리에서 사인펜으로 그린 회화 작품과 흙으로 만든 전통탈 등의 작품으로 개인전을 연 적도 있다. 2017년과 2020년에는 울산 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진행한 달력과 스마트폰 그립톡 제작에도 참여했다.

그동안 여러번 송 작가의 작업을 지켜본 울산발달장애인 지원센터 김민경 센터장은 “각각의 자폐스펙트럼 장애인마다 관심 분야가 다르다. 어떤 친구는 동물백과사전을 통째 외우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그런 특별한 재능을 활용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그리는 것에 집중하는 친구라면, 그걸 낙서라고 치부하지 말고 이번 굿즈 제작처럼 활용해 전시·배포 가능한 작업, 또는 경제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들의 활동을 취미에 머무르게 하지 말고 공공형 일자리를 만들어 꾸준히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이번 공모전 전시회처럼 수상작으로 굿즈를 만들어 판매할 수도 있고 종이가방이나 보고서 표지로 만들어 공공기관에서 쓸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최근 울산해양경찰서는 송 작가를 포함해 3명의 발달장애인 작가에게 의뢰해 경찰서 유치장에 걸 벽화를 제작했고 6월중에 개막식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범법자들을 계도하는 목적이다. 송 작가는 강감찬·지청천·최승로 등 한국 역사 위인을 모델로 한 그림 디자인을 내놓았다.

이번 공모전과 전시회를 주관한 한국장애인개발원 최경숙 원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장애예술인의 재능과 역량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지원하게 되어 기쁘다. 장애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장애예술인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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