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30일 오전, 12월1일 세계 에이즈의 날을 하루 앞두고 서울 광화문광장 사랑의 온도탑 앞에서 ‘에이치아이브이(HIV)/에이즈(AIDS)’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회원들이 “에이즈 공포와 낙인을 넘어! 저항하는 소수자들의 행동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심혈관계 질환도 기저질환으로 갖고 있지만 방역당국으로부터 코로나19 백신 추가접종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인 50대 남성 손아무개씨는 감염에 취약한 고위험군이지만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뒤 우선 접종을 받으라는 연락을 한번도 받지 못했다. 손씨는 “올해 초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감염인들은 이상반응과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방역당국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며 “감염인 커뮤니티 안에서 미국 등 해외 발표자료를 번역해 공유하는 등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고 말했다.
‘에이치아이브이/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감염인 인권의 날’인 12월1일을 앞두고 <한겨레>가 코로나19 유행 가운데 놓여 있는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 감염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지난 17일 백신 추가접종 계획 발표 때 면역저하자의 추가접종 간격을 2개월로 ‘유지’한다면서도 추가접종 계획에 에이치아이브이나 에이즈 감염인은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관계자는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 감염인들은 면역력이 약하고 기저질환이 많으며, 쉼터와 같은 시설 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아 백신 접종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소 40개 국가가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 감염인에게 우선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실시한 것으로 파악한다.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 감염인들은 코로나19라는 거대한 감염병 앞에서 보호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보건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코로나19 환자 진료에 모든 공공의료 자원이 동원된 탓이다. 윤가브리엘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 대표는 “지난해 코로나19 유행 초기에 중이염이 생겨서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공공병원이 입원환자를 받지 않아 수술을 받기까지 1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방역당국이 코로나19 국면에서 에이치아이브이·에이즈 감염인을 보호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추가로 발생하는 감염인을 파악하는 데도 실패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겨레> 취재 결과 보건소의 역량이 코로나19 대응에 집중되면서 건강검진 기능이 마비됐고, 에이치아이브이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익명검사가 2년 가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시 보건국이 파악한 자료를 보면,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엔 서울에서 모두 2만7406명이 에이치아이브이 검사를 받아 122명이 양성 판정(양성률 0.4%)을 받았다. 코로나19 유행 첫해인 지난해엔 검사자가 4641명(양성 83명·양성률 1.8%)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는 검사 건수가 더 줄어 10월 말 현재 1490명만 에이치아이브이 검사(양성률 5.8%)를 받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원래 서울 25개 자치구가 모두 에이치아이브이 익명검사를 했는데 현재는 7개 구(종로·중랑·강북·도봉·관악·강남·은평)만 검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에이치아이브이에 노출될 가능성이 줄지 않은 상황에서 검사 건수가 줄면 감염이 되고도 감염 여부를 모르는 환자들이 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보건소 같은 공공기관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느라 여력이 안 되면 민간기관에 위탁을 해서라도 검사를 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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