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코로나19 위중증 환자를 돌보고 있다. 고양/김명진 기자
정부가 단계적 일상 회복을 한달 만에 중단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했다. 뼈아픈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원점에 서서 차분하고 빈틈없이 다시 길을 닦아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각 분야 전문가의 제언을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준비 없이 시작된 단계적 일상회복은 한 달 남짓 만에 멈춰 섰다. 최근 코로나19 확진자의 치명률은 지난 7월에 견줘 약 10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많은 환자들이 병상 부족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숨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는 올해 말까지 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엇이 잘못됐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방역의 컨트롤 타워가 실종됐다. 일상회복이 시작되면 확진자 수가 늘어날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병상과 인력을 늘리지 않았다. 11월 한 달 동안 정부가 추가로 확보한 코로나19 중환자 병상은 75병상에 불과했다. 감염 확산을 막을 보건소 방역인력도 늘리지 않았다. 정부는 보건소 방역인력 757명여명을 늘렸다. 필요인력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이처럼 이해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까닭은 한국 방역에 ‘정권 말 레임덕’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컨트롤 타워 역할은 보이지 않고 대통령 선거를 앞 둔 국회는 유불리를 따지며 몸을 사리고 있다. 정부는 복지부동하며 책임져야 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정부 부처 간 이견도 조정되지 않고 있다. 병상을 늘려야 한다는 질병관리청의 요구는 보건복지부가 묵살하고, 보건소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요구에는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방역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할 시기에 책임과 권한을 가진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다.
둘째 전문성이 부족한 관료주의 한계 탓이다. 보건복지부 관료들이 세세한 일까지 틀어쥐고 의사결정을 독접한 결과 방역체계는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병원에 환자 진료비의 5~10배에 달하는 지원금을 주면서도, 지원금만 받고 의료인력을 추가 채용하지 않는 병원에 대해 방관하고 있다. 때문에 현장 의료인력은 점차 소진되어 가고 있다. 대학병원이 코로나19 환자를 위해 중환자실과 일반병동을 함께 운용하지 않게 둠으로서 중환자실 입원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중환자는 7일 정도 입원하면 일반병동으로 옮길 수 있지만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면 10일 정도는 입원해야 한다. 정부가 제도를 허술하게 설계한 탓에 막대한 지원금을 병원에 주면서도 일선 의료인력은 혹사를 당하고 있고, 부족한 병상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코로나19 확진자 대비 중환자 입원 병상 수를 비교하면, 우리나라 중환자 병상의 효율성은 외국의 5분의 1 수준이다.
셋째 주먹구구식 방역 탓이다. 9월 하순부터 고령층 돌파감염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10월 하순에는 요양시설 집단감염이 크게 늘었다. 이런 분석에도 정부는 추가접종을 앞당기는 결정을 하지 않았다. 확진자 증가의 원일을 국민들의 느슨해진 긴장감과 이동량 증가 탓으로 돌렸고, 외국에서 마련된 지침대로 추가접종 시기를 결정했다. 그 결과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위중증 환자가 급격하게 늘었고, 부족한 병상 탓에 고령층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숨졌다.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컨트롤 타워를 복원해야 한다. 청와대에 전문가와 다양한 국민으로 구성된 ‘코로나19 방역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상회복을 위한 주요 정책을 대통령이 책임지고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단계적 일상회복위원회와 달리, 한국의 의료체계가 수용할 수 있는 위중증 환자 수와 이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병상 수, 인력 등 구체적 사안을 직접 결정해야 한다. 여·야당은 자신이 추천하는 위원을 위원회에 참여시키되 위원회의 결정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아야 한다. 정치적 책임을 걱정하지 않고 과감한 대책을 추진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줘야 한다.
대통령은 이 위원회의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병상과 의료인력, 방역인력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병상과 인력을 늘리지 않으면 단계적 일상회복은 다시 시작하기 어렵다. 설사 다시 시작하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멈출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 공공병원을 포함한 일부 병원이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도맡아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병원이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문가 중심으로 의료대응체계를 운영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는 병상과 인력 확보에 힘쏟고, 이를 운영하는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심으로 중앙임상위원회 지침을 만들고 환자 진료체계를 운영해야 한다. 중앙 정부가 병상을 배정하기 보다 지자체가 환자를 관리할 수 있게 전환할 필요도 있다. 확진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중앙이 환자 상태를 파악하려 하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없다.
끝으로 방역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코로나19 방역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과학적인 근거에 바탕한 방역을 할 수 있다. 백신접종 이상반응 판정 등급과 판정 근거, 확진자 감염경로 등과 같은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방역당국에 대한 신뢰도 높아질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꽤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방역체계를 제대로 개편하지 않으면 매년 서너차례 유행이 반복될 때 마다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국민의 소중한 일상과 자영업자의 경제적 손실을 댓가로 얻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코로나19 방역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