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4일 오후 서울 은평구 시립서북병원에서 119 소방대원들이 코로나 환자를 병동으로 옮기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코로나19에 확진돼 재택치료를 받던 생후 7개월 아이가 병원 이송 도중 숨진 가운데, 의료진 감염과 응급실 병상 부족으로 응급의료체계가 ‘마비’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재택치료 환자가 50만명에 육박한 상황에서 이로 인해 응급이송 시간이 지연되는 등 ‘응급 의료 공백’을 막기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경기도소방재난안전본부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18일 오후 8시33분께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서 생후 7개월 아이가 ‘경기를 일으킨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 16일 확진된 아이는 재택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신고 뒤 6분 만에 출동했을 때 아이는 심정지 상태였다고 한다.
구조대원들은 심폐소생술을 하며 주변 응급실 10여곳에 연락을 취했는데, 해당 병원들은 “응급실 내 코로나 병상이 없다”, “영아 진료가 불가능하다”, “응급실을 현재 운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다. 구급차는 출발한 뒤 30여분 뒤인 오후 9시17분 약 17km 떨어진 경기 안산의 대학병원에 도착했으나, 아이는 숨진 상태였다.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이 지속되면서 확진·의심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응급 병상을 찾아 ‘뺑뺑이’를 도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오미크론이 확산되면서, 응급실 이송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응급환자를 받을 곳이 없어 확진 산모가 ‘구급차 출산’까지 했던 지난해 말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이번 응급의료 공백은 지난번과 양상이 조금 다르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12월 말 중환자 병상 가동률이 80%에 달할 정도로 중환자 병상이 부족했는데, 전날 오후 기준 가동률은 35.4% 수준으로 아직 여력이 있다.
문제는 응급 의료진들의 집단감염이다. 서울 강동구의 한 대학병원의 경우, 민간의료정보포털누리집에 ‘의료진 감염으로 응급 진료 불가’라고 알리기도 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응급실들이 아예 의료진 감염으로 일정기간 폐쇄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진 집단감염 시 응급의료를 유지할 의료기관 업무연속성계획(BCP)을 현실화하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이 계획에는 예방접종을 완료한 의료진은 확진되더라도 무증상·경증이면 3일 격리 후 근무하는 방안이 담겼다. 하지만 각 병원에서 실제로 적용되는 곳은 많지 않다. 유인술 충남대 의대 교수(응급의학과)는 “밀접접촉이라도 되면 환자 입장에서 의료진으로부터 감염됐다고 항의할 수 있어서, 여전히 현장에서는 부담스럽다”고 언급했다.
의료진뿐 아니라 응급실 내 음압격리 병상 등도 부족하다. 코로나19에 확진됐거나 의심되는 응급환자는 응급실내 격리 병상에서 치료해왔다. 하지만 격리 병상의 규모는 지난해와 비슷해, 오미크론으로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니 감염된 응급환자가 입원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유인술 충남대 의대 교수(응급의학과)는 “응급실은 밀집도가 높아서, 확진자가 나오면 자체 폐쇄하는 경우들이 생긴다”면서 “코로나19에 병실이 차출된 뒤 일반환자가 갈 병실이 부족해 응급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일반환자도 봐야하니 코로나19 환자를 입원시키고 격리할 병상도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감염된 응급환자의 경우 감염위험을 최소화하며 응급진료를 받게하는 방법이 시급하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오미크론 환자를 음암격리실에서 치료하기보다는, 응급실의 고위험군을 격리 치료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음압격리 병상이 아닌 곳에도 확진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중수본 관계자는 “마스크를 벗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응급환자는 음압이 아니어도 처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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