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의료진 등 직원이 확진되더라도 기존 7일이 아닌 5일만 격리하고 근무에 복귀하도록 했다. 정부는 지난달 말 의료기관에 배포한 업무연속성 계획(BCP, 비시피) 지침을 통해 병원이 자체적으로 필수기능 유지를 위해 의료인 격리 기준을 완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조처가 시행된 것이다. 다만 비시피가 제대로 시행되고 작동하려면 원내 감염의 책임 소재 등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시행 과정에서 보건의료노동자의 권리 보장 문제도 과제로 지적된다.
2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대병원은 25일 저녁 직원 단체 메시지로 ‘코로나19 격리기간 단축시행’을 공지했다. 기존에는 코로나19에 확진되면 검사일로부터 7일 격리했으나, 26일부터 5일만 격리한 뒤 근무가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병원 쪽은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에 따른 의료인력의 부담 가중 및 치료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병원은 격리기간을 단축하더라도 격리적용 예외가 된 구성원에 대해 △(5일 격리 후) 무증상 시에 출근 △지정된 격리기간(7일) 동안 직장활동만 가능 △마스크 철저착용 △동료와 접촉 최소화 △외부활동을 할 시 고위험군에 대한 적절한 조치 등 조건을 명시했다.
서울대병원의 조처는 정부가 의료기관에 배포한 뒤, 병원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도록 한 비시피 지침이 일부 시행된 결과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각 의료기관의 비시피 계획 마련에 대한 지침에서 병원 내 감염 증가 시 폐쇄를 막기 위해 위기 정도에 따라 세 단계로 △의료인 격리해제일 3∼5일까지 축소 가능( 24일에는 ‘위기’ 단계에서 검사 없이 3일 격리 후 근무가능으로 지침 변경) △일반병동에 코로나19 환자 입원 가능 등을 규정한 바 있다. 앞서 22일에 서울대병원은 무증상·경증 확진자를 일반병동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지침을 만들었고, 이번에 의료인 격리해제 완화도 시행하는 등 서울 내 타 상급종합병원들 보다 먼저 비시피 시행에 나서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선제적으로 시행했지만, 비시피 지침이 현장에서 제대로 자리 잡을 지는 미지수다. 이날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대 병원과 함께 ‘빅5’로 불리는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은 비시피 계획은 세웠으나, 실제로 격리나 입원 조처는 기존에 하던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병원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비시피 조처가 시행되기 어려운 이유로 “격리기준을 완화했다가 환자 감염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 때 병원이 책임을 져야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수도권의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한 간호사도 “만약 사고가 나서 환자가 고소한다고 하면, 대상은 병원이 된다. 의료 사고에 굉장히 민감한 곳이 병원이다. 의료사고가 나면 다른 환자들이 안 올 것을 걱정해서 병원들이 비시피를 시행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정부가 병원이 원내 감염 증가에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책임을 덜어줘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의료사고에서 무과실 책임 보상 같은 개념으로, 조치를 충실히 했는데도 감염이 일어난 거면 그 책임을 정부가 지겠다고 확실하게 얘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비시피 시행은 보건의료인력의 희생을 필요로하는 일이기에, 보건의료 노동자의 충분히 쉴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최소화 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경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장은 “비상상황에 비시피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권역별로 민간·공공 병원들에서 가진 의료자원으로 코로나19 진료를 적절히 분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비시피를 시행하기 전에 이로 인한 고통분담에 대해서도 노동자들과 민주적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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