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노인들이 2∼10억원을 가진 노인보다 사회적 불안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 노인이라 하더라도 손에 쥔 현금이 적고, 나이듦에 따른 ‘사회적 고립’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회적 불안이란 살아가면서 겪는 안전사고나 불신 경험, 사회적 문제 등에 근거해 유발되는 불안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전반적으로 경험하는 불안을 뜻한다.
3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노인의 사회적 불안과 함의>(곽윤경 부연구위원)는 지난해 65~74살 노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인의 사회적 문제 경험과 인식 조사’를 바탕으로 이러한 분석을 내놨다. 연구 결과 노인들의 ‘사회적 불안’은 보통 이상으로 높았다. 연구진은 사회적 불안을 5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각 불안에 대한 노인들의 인지 정도를 점수(5점 만점)로 측정했다. △사회불안 인식 3.49점 △적응·안전 불안(변화 따라가지 못하고 생활 안전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느낌) 3.05점 △불공정·경쟁 불안 3.41점 △불신·무망감 불안(사회·정부를 불신하고 희망이 없다고 느낌) 3.19점 △불평등 문제로 인한 불안 3.71점으로 나타났다. 5개 유형 인지 점수가 평균 3.49점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보유한 재산과 소득이 많을수록 사회불안 인식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으나, 이 유형을 제외한 4가지 불안에선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보유 재산 규모에 따라 불안 수준을 살펴보면 10억원 이상 보유 집단이 2∼10억원을 보유한 집단보다 적응·안전, 불공정·경쟁, 불신·무망, 불평등으로 인한 불안을 더 느끼고 있었다. 소득 수준별 분석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5분위) 집단의 4가지 불안 수준은 20∼40%(4분위)집단보다 오히려 컸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재산이나 소득이 많다고 해서 사회적 불안을 덜 느끼는 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곽윤경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이 높아 비상 시에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통계청의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가구주가 60살 이상인 경우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78.1%로 높았고, 저축 비율은 15.5%에 그쳤다.
특히 노년층의 불안은 ‘사회적 고립’에 뿌리를 두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소득이 많으면, 많은대로 그만큼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세금을 내거나 관리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부담이 곧 불안이 된다“며 ”노인이 되면 경제적인 부분 뿐 아니라 돌봄이나 삶에서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가 많다.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손 내밀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도 불안 요소가 되므로 영국에서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하듯 사회관계망의 중요성에 더 주목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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