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온 한 아이 가슴에 커다란 덩어리가 발견됐는데, 소아암이었어요. 그 아이는 몇 주 전 다른 병원에서 같은 검사를 받았는데, 의사가 암인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 병원에 이를 짚어낼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부족하거나 없었던 거죠. 결국 아이 치료도 늦어진 거고요.”
수도권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한겨레>에 전한 말이다. 응급·분만·외상·소아 등 필수의료 과목 의사 부족이 시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달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뇌출혈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 충원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9일 윤석열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개두술, 심장 수술 등 고위험 고난도 응급 수술을 중심으로 정책 수가를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9∼10월 중 대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종합세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필수의료는 통상 사람의 생명 유지·증진에 직접적인 관련이 큰 분야를 뜻한다.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내·외·산·소)가 대표적이다. 이들 분야는 의사들에게 ‘기피’ 전공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2018∼2022년 소아청소년과·내과·외과·산부인과·비뇨의학과 등 6개 필수의료 전문과목 전공의 충원율은 ‘미달’이었다. 특히 올해 소아청소년과는 28.1%까지 낮아졌고, 흉부외과 47.9%, 외과 76.1%, 산부인과 80.4%였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응급·중증 환자를 맡는 부담이 크고, 노동시간이 길어 의사들이 기피한다. 30여년간 대학병원에서 근무한 흉부외과 의사는 “인력이 부족해 24시간, 365일 수술할 환자가 있으면 전화를 받고, 항상 불안하게 산다”며 “사람 목숨을 다루는 의료를 하면 ‘3대가 큰일 난다’고들 한다. 자녀를 볼 시간이 없고, 배우자에게 잘할 시간이 없고, 부모님 찾아뵐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의 경우 저출생 현상과 의사 과실이 없는 분만 사고에 대한 잦은 소송 등도 지원율 감소에 영향을 줬다.
이런 이유로 전공을 포기하고 대형 병원을 떠나 동네에 의원을 여는 전문의들도 있다. 지난해 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펴낸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외과 전문의 1009명(전체 외과 전문의 6275명)이 ‘표시과목 미표시'로 개원한 상태다. 전공을 살리지 않고 일반 의원으로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모발이식을 하는 등 아예 다른 일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흉부외과 전문의도 255명(전체 1140명)이 이런 형태로 개원했다. 소득 역시 내과·외과·산부인과·신경외과·비뇨의학과 분야에서 상급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전문의들에 비해 동네 의원 전문의가 1.4∼2.3배가량 더 많다.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형 병원이 해당 의료진을 더 많이 고용하도록 강제하는 조처가 필요하다. 현재도 의료법 시행규칙 등에 따라 입원환자에 비례한 의사정원을 배치해야 하고, 응급의료센터 등에 대한 의료인력 기준도 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강화된 규정을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영명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기획실장은 “어느 지역에 개두술이 가능한 전문의를 몇 명 배치해야 하는지 등 지역 평균 환자 발생 건수를 기준으로 인력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평가를 거쳐 병원들에 7000억원을 나눠 지원하는 ‘의료질평가지원금’ 지급에도 필수의료 의사 배치 여부를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현재 의료질평가지원금 평가 기준은 여러 가지를 규정한 백화점식”이라며 “필수의료 부문을 3분의 1 정도는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병원에 인센티브 주는 수가 구조 필요”
병원이 이익을 위해 필수의료 인력을 최소한만 두게끔 짜인 현행 수가·인센티브 체계도 문제다. 개두술 등 중증·응급이 많은 고난도의 필수의료 수술 수가가 다른 수술에 비해 큰 차등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는 “필수의료 분야 수가 인상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단순히 인상만 해서는 안 되고, 수가 구조 개편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년 마다 각 의료 부문별로 정해진 금액 안에서 수가를 조정하는 절차가 있는데, 각 진료과목이 서로 양보가 없어 의료계 내에서도 자체 조정이 쉽지 않다”며 “매년 2%가량 인상되는 수가는 행위별 수가(5850개)가 모두 적용된다. 수가 인상에서 검사 등 이미 원가 보전이 높은 분야는 제외하고, 보상이 낮은 수술·처치 등 수가 인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윤 교수는 “외래 환자들은 환자가 의사를 기다리는데, (필수의료가 많은) 응급 수술은 의사가 기다려야 한다. 병원 입장에서 원가가 훨씬 더 드는 일”이라며 “응급 수술의 수가를 일반수술 보다 높여 주고, 당직 의사들의 당직비는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전문의 배출 관리…의사 증원도 논의해야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필수의료 의사 배출을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임준 서울시립대 교수(도시보건대학원)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필수의료분야 의사부족,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권역별 책임의료기관이 국고지원으로 의사를 육성하고, 과목별 전문의 인력 수를 정부가 관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도 “국공립대에서 필수의료 정원을 처음부터 따로 뽑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전문가들은 국립대병원 소속으로 지방의료원에서 필수의료를 맡도록 하는 ‘공공임상 교수제’ 확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런 해결책들은 병원·의료계 합의를 도출해야 하고, 재원 조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보건의료단체와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의사 수 증원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2020년 국내 임상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에 비해 1.2명 적다. 필수의료 의사부족 또한 의사 수 부족의 연장선이지만, 의협은 의사 수 증원에는 반대한다.
의료계는 필수의료가 ‘기피’ 과목이 된 이유로 고난도 수술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소송 등 우려도 한몫한다고 본다. 박중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분만은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법적 문제도 생긴다. 산부인과의 경우 이 부분도 지원율을 떨어뜨리는 주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재도 분만 시 의료진의 과실이 없었음에도 발생한 사고에 정부가 최대 3000만원을 보상해주는 제도가 있다. 하지만 보상액이 적고 보상 범위가 좁다. 김윤 교수는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 일정 부분 사회적 기금으로 보상해주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