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 모습. 연합뉴스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 등으로 4년 뒤엔 건강보험 법정 준비금(적립금)이 반 토막 난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자체 전망이 나왔다. 정부가 건강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도록 한 국민건강보험법 한시 조항도 올해 만료될 예정이어서 건보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필수의료 강화 등을 위해 구체적이고 연속성 있는 국고지원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건강보험 재정전망 및 정부지원 법 개정 필요성’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20조2000억원이던 건보 적립금은 2026년 9조4000억원으로 5년 만에 53.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9조4000억원은 건보공단이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한 달분 급여비에 불과한 규모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강보험 적립금이 (급여비 기준) 한 달 치밖에 남지 않는다는 것은 재정이 대단히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을 뜻한다”며 “의료기관이 청구한 금액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건보공단이 (급여비 기준) 최소 한두 달의 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연도별 건보 재정전망을 보면, 건보는 올해 9800억원의 흑자를 마지막으로 내년부터 적자(1조1513억원)로 전환된 뒤 2024년 2조200억원→2025년 2조8600억원→2026년 5조7300억원으로 적자 폭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재정 악화는 건보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으로 보험료 수입은 줄고, 인구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은 늘어난 탓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올해 9월부터 지역 가입자의 재산보험료 공제를 확대하고, 직장가입자의 식대 비과세 한도도 확대(최대 10만원 → 최대 20만원)하기로 했는데, 건보는 이런 개편으로 보험료 수입이 내년부터 2026년까지 연 2조3000억원 가량 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고령화와 그에 따른 만성질환 증가로 의료비 지출은 빠른 속도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 전망을 보면, 한국은 2025년께 만 65살 이상 고령자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올해 전체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 가운데 65살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47.8%지만, 2026년에는 51.9%로 늘어날 전망이다. 건보공단은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이용량이 줄어) 일시적으로 급여비 증가가 둔화했으나, 고령화 및 만성·중증질환 증가, 의료이용 회복 등으로 급여비는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건보는 △2023년 보험료 인상률 1.49% △2022년 정부지원율 14.43% △수가 인상률 2.09%를 전제로 이런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런 이유로 건보 안팎에서는 안정적인 국고지원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과 국민건강증진법을 보면 국가는 보험료 예상수입액의 20%(국고 14% 건강증진기금 6%)를 건보공단에 지원하게 돼 있는데, 해당 규정은 일몰제로 운영돼 올해 12월31일 만료될 예정이다. 현재 국회에는 정부의 한시적 지원 조항을 삭제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관련법 개정안 5건이 발의돼 있다. 정춘숙 의원은 “건강보험 정부지원 확대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한 만큼,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적 운용을 위해 정부·여당도 정부지원 일몰규정 폐지에 조속히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등 노동·시민사회 단체는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강보험 정부지원을 항구화하고 확대하지 않는 것은 낭떠러지에 서 있는 서민들을 정부와 국회가 발로 걷어차는 것”이라며 정부의 건강보험 국고지원 확대를 촉구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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