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부상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 응급의료를 진두지휘해야 할 ‘현장응급의료소’가 사상자 절반이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야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의 인파 통제가 늦어지면서 재난거점병원 소속 재난의료지원팀(DMAT·디맷)을 비롯한 의료진의 현장 진입이 지연된 데다, 원칙적으로 현장응급의료소장을 맡아야 할 용산구보건소장이 디맷보다 늦게 도착한 탓이다. 재난응급의료 ‘컨트롤타워’가 돌아가지 않는 현장에서 의료진과 구급대는 각개전투를 벌여야 했다.
10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모바일 상황실(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대화록을 보면, 의료소는 29일 밤 10시15분 참사 발생 2시간 48분 만인 다음날 새벽 1시 3분에야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에 설치됐다. 당시 사상자 194명 중 96명(49%)이 병원으로 이송된 뒤였다. 보건복지부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매뉴얼에 따르면 의료소는 환자 중증도 분류, 이송 병원 지정, 응급처치 등을 맡는다. 의료진이 이송 병원을 정해 구급대에 환자를 인계하는 거점도 의료소다.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운영하는 중앙응급의료상황실과 소방, 응급의료기관, 지자체 관계자 등 400여명이 들어와 있는 카카오톡 대화록을 보면, 참사 초기부터 의료소 설치가 시급하다는 호소가 있었다. 소방청 지도의사는 밤 11시 11~15분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 골목에서 사람들 내보내도록 요청하고 큰 도로 쪽에 의료소 공간 확보해야 한다. 통제돼야 처치가 된다”며 “디맷(이) 의료소를 설치하고 심정지 환자를 처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뒤늦게 인파 통제에 나선 경찰로 인해 의료진이 현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은 정황까지 나타난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 관계자는 “의료진 조끼를 입은 지원센터 인력을 경찰이 자꾸 통제해 현장에 진입이 안 된다고 한다. 이런식이면 디맷(재난의료지원팀) 출동 못 시킨다”(밤 11시 41분) “신속대응반, 지원센터 모두 현장 진입 못했다. 자꾸 이런시면 저희 다 철수한다”(밤 11시 45분)고 알렸다. 제때 의료소가 설치되지 않으면서 의료진은 길에서 중증도 분류와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29일 자정 서울지역 응급의료지원센터 관계자는 “의료소가 따로 마련돼 있지 않고, 길에서 서울대 디맷이 분류·처치를 하고 있다. (의료진이) 구급대 찾아다니면서 (환자 이송) 병상을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중증도 분류에 따른 병원 지정, 환자 인계에 어려움이 더해진 상황은 결국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1㎞) 종합병원인 순천향대서울병원에 중환자 대신 사망자 76명이 집중되는 원인이 됐다. 의료진과 유기적인 협력 없이 구급대 자체 판단으로 병원 이송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의료소 설치 전인 밤 12시 41분 서울지역 응급의료지원센터 관계자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사망자 순천향(병원에) 이송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대화록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디맷은 11시 출동 요청을 받아 11시 20분 도착(20분 소요), 한양대병원 디맷은 11시 25분 요청을 받아 12시 5분(40분 소요)에 도착했다. 반면, 용산보건소 신속대응반은 29일 밤 10시 50분 모바일 상황실을 통해 출동 요청을 받았지만 1시간 16분 뒤인 밤 12시 9분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용산구보건소장은 밤 11시 30분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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