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주차 임신부 송아무개(38)씨는 지난 8일 백일해 백신 접종을 위해 임신 초기부터 꾸준히 다니던 서울의 한 산부인과를 찾았지만 백신 접종에 실패했다. 지난달 백일해 백신이 동났다며 한 달 뒤 다시 찾아오라는 병원의 말에 재차 병원을 방문한 터였다. 병원에선 “백신이 소량들어와 바로 동났다”며 “산부인과든 내과든 직접 수소문해 백신을 접종하라”고 했다. 백일해 백신 접종 권고 마지막 기간(36주차)이 임박해 마음이 조급했던 송씨는 집 근처 20여곳의 병원 전화해 백신을 찾았지만 모두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동네 육아정보 카페에 올린 글에 ‘어느 소아과에 있다’는 답글을 보고 서둘러 달려간 끝에 접종할 수 있었다. 송씨는 “뱃속 태아에게 백일해 항체를 전달하기 위해 출산 전 27주차부터 백신 접종 안내를 받았는데, 출산이 임박해 겨우 백신을 접종하게 됐다”며 “겨우 찾아간 병원에서도 물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답을 들었는데, 임신부 입장에선 몸도 무거운데 백신을 접종 못 할까 불안한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1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임신부와 영유아 돌봄자·11~12살 어린이에게 접종이 권고되는 백일해 백신(Tdap·티디에이피) 품귀 현상이 9월부터 계속되고 있다. 방역당국은 지난달 34만여 도즈(34만명분)를 공급해 물량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백신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육아정보 카페엔 ‘다니는 산부인과에서 백일해 백신이 있다고 해서 갔더니, 대기하는 사이 동났다’거나 ‘한 병원에서 20개밖에 백신을 구하지 못해 남편은 접종하지 못했다’는 등 백일해 백신을 찾는 글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백일해는 ‘백일동안 지속되는 기침’이란 의미를 가진 급성 호흡기 질환이다. 기침이나 재채기 등 사람 간 호흡기를 주경로로 전파되는데, 가족 내 2차 발병률이 80%에 달할 만큼 전염성이 매우 높다. 임신부 뿐 아니라 6개월 미만의 영유아를 돌보는 가족들에게 접종이 권고되는 이유다. 초기엔 콧물과 재채기, 미열 등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1∼2주 뒤 기침이 점차 심해지면서 심한 기침 발작이 2∼3주간 지속된다. 1살 미만의 신생아의 경우 백일해에 감염될 경우 무호흡 증상이 나타나거나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백일해는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한데, 생후 2·4·6개월 등 영유아가 접종하는 디티에이피(DTaP) 백신과 임신부와 11∼12살 등이 접종하는 티디에이피(Tdap) 등 2가지로 나뉜다. 임신부는 총 1회, 영유아·소아는 기초·추가 접종에 따라 백신 종류와 횟수가 다르다. 백신 종류에 관계없이 만 12살 이하 어린이의 경우 국가예방접종 사업에 따라 두 가지 백신을 무료로 접종할 수 있다.
두 백신 가운데 최근 품귀 논란이 있는 백신은 임신부 등이 접종하는 티디에이피 백신이다. 국내에는 영국 제약사 지에스케이(GSK)와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파스퇴르(Sanofi Pasteur)가 백신을 공급해왔지만, 지에스케이(GSK)가 지난해 11월 ‘자료 검토’를 이유로 백신(부스트릭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1년째 사노피 파스퇴르 백신만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9월 초엔 사노피파스퇴르 마저 ‘표준품 보완’ 등을 이유로 한 달간 백신 공급을 중단하면서 ‘백일해 백신 품귀’가 시작됐다.
질병청은 지난달 34만여 도즈(34만명분) 물량 공급으로 백신 공급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현재 병원에서 요구하는 몇 달 치 물량을 확보하긴 어렵지만, 백신을 접종하지 못할 정도로 백신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백신 품귀가 계속되고 있는데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제품이 한 종류이고 언제 공급 중단이 될지 모른다’는 심리 때문에 일부 도매상에서 사재기를 해 (지금도 백신 품귀가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달 안에 12만7천도즈가 추가로 공급될 예정이기 때문에 백신 물량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백신 수급 불안정성 해소를 위해 백일해 백신 역시 독감 백신처럼 정부가 사전에 충분한 물량을 구입해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독감 백신은 정부에서 백신을 구매해서 공급하는 ‘사전 현물공급’이지만, 백일해 백신은 제약사와 도매상이 직접 시장에 백신 물량은 공급하는 방식이다. 최영준 고려대 안암병원 교수(소아과)는 “백신은 공정 과정에서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생산이 모두 중단되기 때문에 수급이 불안정하다. 특히 한국은 자국산 백신이 없기 때문에 백신 공급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에서 수요·공급을 예측하면서 공급이 다소 넘치더라도 여유 있게 백신을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질병청은 “당장은 아니지만, 백일해 등 다른 백신도 점진적으로 사전 현물 방식으로 확대하려고 의료계와 협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역 당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백일해 접종 가능 병원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질병청은
예방접종도우미 누리집을 통해 백일해 접종 가능 ‘지정 의료기관’을 안내하고 있지만, 이런 정보가 병원과 임신부들에게 충분히 제공되지 않고 있다. 질병청 관계자는 “국가예방접종 지원기관에 전화 후 방문하는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