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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이 귀하던 중세 및 근세에, 호밀, 보리 등의 일부 벼과 식물에 기생하는 자낭균의 일종인 곰팡이 ‘맥각균’(Claviceps Purpurea)이 사람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었다. 악마의 뿔과 같이 생긴 맥각으로 오염된 빵을 먹은 마을 사람들에게서 심혈관계 이상, 환각, 근육 이상 등을 주 증상으로 하는 집단 중독이 발생하곤 하였다.
맥각이 지닌 독성에도 불구하고, 그 성분들이 오래전부터 자궁 출혈 억제, 편두통 치료 등에 효과가 있었는데 부작용은 줄이고 더 좋은 약리 작용을 지니는 물질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맥각 알칼로이드의 공통 화학구조는 리세르그산(Lysergic acid)이다. 1938년 스위스 제약회사에서 일하던 알베르트 호프만 박사는 자궁수축 작용 없이 호흡기나 순환기에 흥분 작용을 지니는 치료제 후보 물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유명한 환각제인 리세르그산 디에틸아마이드, 이른바 ‘엘에스디’(LSD, Lysergic acid diethylamide)를 새로 합성하게 되었다. 1943년 우연히 호프만 박사가 직접 엘에스디의 환각 작용을 경험하게 되고, 1947년 제약회사가 이러한 강력한 신경 작용에 착안해 이를 신경질환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선전하며 제품화하였다.
호프만 박사가 초기에 경험한 환각 작용의 묘사에는 이미 엘에스디의 ‘긍정적인 환각 작용’(good trip)과 ‘부정적인 환각 작용’(bad trip)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엘에스디의 작용에 대한 경험담을 들어보면 ‘음악을 냄새 맡는다’ 등의 공감각적 변화, ‘시간과 공간이 무너진다’ 등의 시공간 감각의 변형, ‘뭔가 성스러운 것이 안에서 열리는 느낌’ 등의 종교적인 경험, ‘기존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느낌’, ‘자아로부터의 해체’ 등 실로 다양한 인지 기능의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이와는 다르게 ‘집 안 물건이 악마와 같은 것으로 변하는 매우 고통스럽고 두려운 환영’과 같은 좋지 않은 환각도 존재한다.
환각 작용 외에 엘에스디는 일부의 사람에게서 정신분열증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고 극도의 피해망상, 불안, 공포심을 유발하며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분석되고 있다. 또한 이에 따른 살인과 자살 등 폭력과 사회문제 유발과 연결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엘에스디는 강력한 마약류로 규제되고 있으며 미국의 경우 엘에스디를 소지, 판매하는 경우 200만달러(약 25억8천만원)의 벌금 및 4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따라서 엘에스디를 의약용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연구는 1960년대 중반 이후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나 최근 이 물질의 의학적 효능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노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엘에스디 또는 그와 유사한 작용을 나타내는 실로사이빈은 임상 연구에서 우울증과 불안을 감소시키며 말기 암 환자에게서 정신적 탈진을 개선함이 보고되었다. 또한 사회성, 특히 공감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이타적 행동 등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증진하고 종교적인 믿음을 확장시키며 사회성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의 혈중 농도를 증가시킴이 보고된 바 있다. 이러한 사회성 조절 작용에는 뇌 인지 기능의 조절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내측 전전두피질에서의 신경 활성 조절 등을 수행함이 보고된 바도 있다. 외부에서 전달되어오는 정보를 통합하고 이를 과거의 경험과 연결하여 생존에 적절한 반응을 나타내도록 각종 신경 네트워크 활성을 조절하고, 보통 상태에서와 다르게 변화시킴으로써 엘에스디가 새로운 차원의 인지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연구 결과와 주장도 있다.
현재 엘에스디류 물질의 의학용도 연구는 환각 작용이 크지 않은 낮은 농도의 엘에스디나 실로사이빈을 투여하여 의학적 효과만을 얻으려는 미세용량 투여 연구(microdosing)가 중심이 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보다 기초신경과학·신경약리학적인 차원에서 엘에스디가 작용하는 수많은 세로토닌성, 도파민 수용체 중 의학적 용도에 걸맞은 표적단백질에만 선택적으로 더 강력히 작용하는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또 표적단백질의 활성을 미세 조절하여 환각 등의 부작용은 없으면서 치료 효과는 뛰어난 물질을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모르핀 계열 약물의 경우 의존성과 중추신경계에 대한 작용은 거의 없으면서 진해 작용 및 진통 작용이 있는 물질들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거나 연구되고 있다. 엘에스디 계열 물질도 비슷한 전략을 가지고 연구가 진행 중이다.
1943년은 핵폭탄이 발명된 해이다. 같은 해 엘에스디의 정신 작용이 최초로 확인되었다. 혹자는 엘에스디를 정신세계와 마음의 핵폭탄이라 부르기도 한다. 엘에스디에 의한 정신 인지 작용의 변화는 때로는 천국과 같은 경험을 주지만 지옥의 문을 여는 것과 같은 고통을 줄 수도 있다. 유발 하라리는 책 <사피엔스>에서 우리를 진화의 객체에서 주체로 이끌게 된 다른 동물들과의 차별점은, 인류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의 관계를 만들고 믿을 수 있는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이라고 했다. 정밀한 기계는 사소한 이상으로도 사용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한다.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의 정밀한 조절 이상은 우울증, 불안, 편집증, 조현병 그리고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 모두 자연 상태의 동물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고통이다. 비틀스의 노래 중 ‘다이아몬드 박힌 하늘의 루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노래가 있다. 대문자 철자를 이어보시길 바란다. 엘에스디이다. 존 레넌은 아니라고 했고 폴 매카트니는 인정했지만 가사 중 ‘만화경 같은 눈을 가진 소녀야, 루시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하늘에 떠 있어’라는 부분을 보면 확실히 엘에스디와 관계가 있는 노래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한동안 인류의 어머니로 여겨졌던, 300만년 된 고인류 화석을 발굴한 연구팀은 고인류 화석, 인류의 어머니를 ‘루시’라 이름 지었다. 발굴 도중에 지겹도록 이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엘에스디와 관련된 물질의 연구가 인류의 어머니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류이기 때문에 갖는 숙명인 정신질환을 극복하고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까, 아니면 또 다른 종류의 강력한 마약이나 독성물질로 역사에 남을까.
당신과 내 마음이 다름을 인정하는 정신약리학자. 뇌 발달장애 기초연구 개척자로 뇌질환 동물모델, 기전 연구와 관련해 190여편의 논문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