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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 충전기가 따로 없다. 늘 엄마만 먼저 나동그라진다. 아마 이번 주말에도 그럴 것이다. 어린이와 양육자의 체력 이야기다. 공원에서 몇시간씩 공을 차고도 아이는 카시트 쪽잠 30분이면 체력이 완전히 돌아온다. 90분 동안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게 뛰고도 승리가 확정된 뒤 또 드넓은 경기장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축구 선수들을 보면서, 나는 어린이들을 떠올렸다. 왜 그렇게 쉴 새 없이 뛰는 걸까. 어떻게 그런 체력이 가능한 걸까.
사실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뛴다. 바로 태동이다. 연구에 따르면 태아는 한번 잠들면 20~40분간 조용하고, 건강한 태아의 수면 주기는 최대 90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1시간30분마다 최소 한번씩은 아기가 사지를 뻗고 발을 구르고 딸꾹질을 한다는 말이다. 태아가 시간당 평균 31번 움직였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뱃속 아기에게 갈비뼈를 차여본 엄마라면 알겠지만, 태동을 얕봐선 안 된다. 임신 막달에 가까워지면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플 때도 있다. 임신 20~35주차 태아의 자기공명영상을 찍고 컴퓨터 모델링으로 아기가 발로 차는 힘을 계산한 연구 결과, 임신 20주차 태아의 발차기 힘은 29N(뉴턴)이었고 30주차엔 47N까지 커졌다. 47N이면 4.7㎏의 물체를 들고 있을 때 중력 방향으로 느껴지는 힘이다.
사실 태동은 그저 귀엽거나, 엄마 갈비뼈를 아프게 하는 일만은 아니다. 태동은 태아의 근골격계가 정상적으로 발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위 연구에 따르면 태아의 골격 안에 생기는 저항력(응력)과 골격이 순간적으로 변하는 정도는 임신 35주차까지 꾸준히 늘었다고 한다. 권투 선수가 주먹을 단련하기 위해 샌드백을 계속 치듯이, 태아 역시 뼈와 근육을 단련하기 위해 엄마의 자궁벽을 계속 걷어차는 셈이다. 짠하고 기특하다. 그리고 이런 ‘단련’은 태어난 뒤에도 이어진다. 쉴 새 없이 달리는 것이다. 실제로 더 일찍 걷고 뛰기 시작한 아이들이 나중에 더 강한 뼈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잉글랜드 연구자들이 1990년대 초에 태어난 1만4500여명의 삶을 차트로 기록한 평생 건강 연구를 통해 2327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생후 18개월에 운동 능력을 평가하고, 17살 때 엉덩이와 정강이뼈의 크기, 모양, 골밀도를 측정한 결과, 어린 시절 일찌감치 뛰기 시작한 청소년의 뼈 건강이 더 좋았다. 요컨대 아이가 어릴 때부터 활동적이면 근육이 더 강해지고, 걷거나 뛰거나 점프할 때 뼈에 더 큰 힘을 가할 수 있어서 뼈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연구팀의 이전 연구에서 일찍 걷기 시작한 아기는 생후 15개월에 여전히 기어다니는 아기에 비해 정강이뼈 골질량이 최대 40% 더 높았다는 결과도 나왔다. 다시 말해, 어린이가 시도 때도 없이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건 어쩌면 잘 자라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행동을 뒷받침하는 건 지치지 않는 체력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린이의 체력이 성인보다 뛰어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건 느낌만이 아니라 과학적 팩트다. 2018년에 어린이의 근지구력이 국가대표급 성인 운동선수와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프랑스 운동생리학자들은 8~12살의 일반 남자아이 12명과 19~23살 일반 성인 12명, 그리고 18~24살 국가대표급 운동선수 13명에게 자전거 타기를 시켰다. 이 운동선수들은 사이클, 철인 3종 경기, 오래달리기 등 특히 지구력이 필요한 종목을 하는 선수들이었다. 연구팀은 이 세 그룹에 대해 심박수, 혈중 산소 농도, 젖산염이 사라지는 속도 등을 측정했다.
인체는 두 가지 방식으로 근육을 움직인다. 첫째는 혈액 안에 있는 산소를 사용하는 ‘유산소’ 대사활동이 있는데,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힘을 낼 수 있다. 즉, 지구력에 중요하다. 또 다른 방법으로 산소를 쓰지 않는 ‘무산소’ 대사활동이 있다. 순간적으로 큰 힘을 낼 수 있지만 오래 지속되긴 힘들다. 부산물로 젖산염이 만들어지면서 근육이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측정 결과, 모든 검사에서 아이들은 운동선수로 훈련받지 않은 어른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어린이는 무산소보다 오래 힘을 낼 수 있는 유산소 대사를 더 많이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혈중 젖산염이 사라지는 속도, 즉 회복하는 속도는 어린이가 국가대표급 운동선수보다 빨랐다. 심박수가 어른보다 빠르게 높아지면서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혈중 젖산염이 더 빠르게 제거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어쩐지! 똑같이 공을 차고도 엄마인 내가 먼저 드러눕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최근 어린이들이 부모 세대보다 잘 못 뛴다는 점이다. 1964~2010년 28개국에서 9~17살 사이의 어린이 2500만명 이상이 참여한 달리기에 관한 50건의 연구를 분석하자, 46년 동안 어린이의 심폐 지구력이 크게 감소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에서 어린이의 심혈관 지구력은 1970~2000년 사이에 10년마다 평균 6%씩 줄었고, 전세계적으로는 10년마다 약 5%씩 꾸준히 감소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심혈관 관점에서 요즘 어린이들은 부모 세대가 어렸을 때보다 약 15% 덜 건강하다고 한다. 1마일(약 1.6㎞) 달리기에서 요즘 어린이들은 30년 전의 또래보다 약 1분30초 느리다.
어린이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운동이 도움이 된다는 연구는 차고 넘친다. 예를 들어, 위험한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체력이 더 좋고 사회성도 더 뛰어난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체력이 좋은 아이들은 뇌 속 해마의 크기가 더 크고 기억력 테스트 점수가 더 좋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실용적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아이 손을 잡고 힘껏 달려본 양육자라면 안다, 그 행복한 표정을. 그 얼굴을 보기 위해서라도 함께 뛰고 싶다. 안전하고 자유롭게. ‘왜 저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닐까’가 아니라 ‘건강하게 자라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내 아이는 물론, 세상 모든 어린이가 존경스러워진다. 어른들이 관점을 바꾸면 아마도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과학칼럼니스트
육아를 하며 과학 관련 글을 쓴다. 과학 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