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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만에 엄마가 집으로 왔다. 정확히는 여동생 에이치(H)의 집으로 갔다.
엄마는 병원을 옮기는 걸 마뜩잖아했다. 통원치료가 이유였다. 엄마는 24시간 내내 의료진이 있는 병원에서 머물며 치료받길 원했다. 3차 병원에서 장기 입원하는 게 어려운 일인 걸 모르는지, 엄마는 ‘암 환자=입원치료’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혈액암은 통원치료가 기본이라고 한다’, ‘다른 암 환자도 보통 수술할 때나 입원한다’, ‘경험이 많은 의사가 좋지 않겠냐’, ‘옮기는 병원은 임상도 많이 하는 병원이다’라고 재차 설명하고, 몇번이나 실랑이한 끝에 엄마는 불안한 낯빛으로 마지못해 “알겠다”고 답했다.
검사 때문에 입원했다가 느닷없이 암이라는 말을 들은 엄마는 5일 만에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척추뼈 골절 탓에 침대에 몸을 눕히거나 일으키는 것도 도움이 없으면 쉽지 않았다. 다리에 힘이 없어 휠체어를 이용해야만 했다. 사실상 거의 혼자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 엄마가 홀로 생활을 이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남동생이 집에 있는 밤 시간을 제외하곤, 엄마가 혼자 화장실에 가다 넘어지진 않을지, 식사는 챙겨 먹을 수 있을지 모든 면이 불안했다. 그렇다고 회사를 다니는 내가 모신다고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급하게 재가 간병인을 알아봤다.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루 17만원, 단순 계산해도 한달 510만원, 간병인은 한주당 하루치 수당을 더 지급하므로 578만원이었다. 엄마가 거동을 아예 못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요양보호등급 신청도 불가능했다. 간병비 때문에 가계가 파탄 날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항암을 진행하면 뼈 통증을 덜 느낀다기에 한달 정도 뒤엔 엄마가 혼자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간병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하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간병인은 집보다는 병원 근무를 선호한다고 한다. 집에서는 다른 가사노동을 할 수도 있거니와,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사는 경우엔 보호자의 ‘감시’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전원을 위해 퇴원을 준비할 때, 4남매 단체 대화방은 퇴원 뒤 엄마 돌봄을 두고 바빠졌다.
“우리 집으로 엄마 모실게.” 전업주부인 여동생 에이치가 결심한 듯 말했다.
“엄마가 왜 너네 집으로 가. 기다려봐, 간병인 구할 거야.” 당황 반, 환영 반. 복잡한 심경의 나였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 나중에 힘들면 이야기할게.”
“그러지 마. 네가 너무 힘들어.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자. 장기전이야.”
“처형, 처형이 어머님 모실 거 아니면,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해요. 계속 우기면 진짜 처형 안 봐.”
불과 한달 전 코로나19로 아버지를 잃은 에이치의 남편이 나서서 엄마를 모시겠다고 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제부가 장모를 모시겠다고 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방법도 없으면서 거절하던 나는, 못 이기는 척 에이치의 말을 따랐다. 암에 걸린 엄마를 혼자 둘 수 없다는 에이치의 ‘의지’와 혼자 있는 게 불안했던 엄마의 ‘바람’, 그리고 다른 형제들의 ‘묵인’이 엄마를 에이치의 집으로 이끌었다. 나는 참으로 비겁했다.
새 병원에서 골수검사를 한 결과 양쪽 엉치뼈에서 90%, 75% 비정상적인 형질세포(골수종세포)가 발견됐다. 10% 이상이면 다발골수종으로 진단한다. 다발골수종은 병기가 무의미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엄마는 2~3기 정도에 해당한다고 했다. 담당의는 6개월 동안 항암을 한 뒤 골수검사에서 골수종세포가 5% 미만이 나오면 조혈모세포 이식(골수 이식)을 하자고 말했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만 70살 미만까지 시술하는데, 엄마는 만 66살이라 가능하고 이식하려면 체력 관리가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담당의와 2분가량 짧은 만남 뒤 간호사와 긴 상담이 이어졌다. “감염과 골절을 가장 조심해야 해요. 열이 38도 이상 오르는 게 지속되면 바로 병원에 와야 해요. 열이 나고 기침·가래가 있는데도 집에 있다가는 큰일 날 수 있어요. 무거운 걸 들거나 힘든 일을 하면 절대 안 되고요”라고 간호사가 설명했다. 쭈그려 앉지 말고, 누워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상체 보조기를 항상 착용하라고 당부했다. 앞으로 궁금한 점, 응급상황 대처 등에 대해선 간호사와 소통한다고 했다. 간호사의 업무용 휴대전화 번호를 받아 드니 절대반지를 손에 쥔 양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환자 전화번호 대신 내 번호를 등록했다. 엄마보다는 내가 의료진과 소통하는 게 좀 더 수월하니까.
본격적으로 치료 과정에 들어가면서 4남매는 할 일을 나누기 시작했다. 가족 중 환자가 있으면 분열은 필연적이라는 말을 누누이 들었다. 간병이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달라’라는 자기최면만으로 ‘우애’는 지켜질 수 없었다. 서운함이 쌓여 원망이 되지 않으려면 조율이 필요했다. 돌봄노동이나 비용 부담이 한쪽으로 쏠리면 상대적으로 덜 참여하는 이에게 화살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과 엄마가 미리 들어둔 사보험 등으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었던 건 천만다행이었다. 그 외 비용은 그동안 모아왔던 계비에서 충당하고, 형편이 더 좋은 사람이 더 부담하는 것으로 논의했다.
엄마 돌봄 이외의 것들을 에이치가 신경쓰지 않도록 했다. 이를테면 그동안 엄마가 맞았던 폐렴·독감·코로나19 백신 접종 내역은 뭔지, 엄마한테 당장 필요한 것들은 뭔지 알아보는 것들 말이다. 엄마가 에이치의 집에 머무는 기간은 약 한달로 잡았기 때문에 엄마가 집에 돌아갔을 때 필요할 것들을 미리 준비했다. 간병인을 구하고 엄마 집을 청소할 업체를 알아보는 문제는 여동생 제이(J)가, 반려견을 맡길 곳을 알아보는 문제는 남동생이, 나는 병원과 소통, 엄마 집 도배, 보험회사와 연락, 엄마에게 필요한 물품 정리 등을 맡았다. 누웠다 일어날 때 척추에 무리가 적게 가는 모션베드, 새벽에 화장실에 가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기저귀, 식기소독기, 방수패드, 체온계, 혈압계 등이 그렇게 쇼핑리스트에 쌓였다.
주보호자는 나로 정했다. 엄마를 돌보며 14개월짜리를 육아 중인 에이치, 워킹맘인 제이, 못 미더운 남동생보다는 돌볼 아이가 없는 내가 몸이 가벼웠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응급 상황에서 누구든 병원에 가서 엄마의 상태와 치료 과정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관련 내용을 숙지할 필요는 있었다. 구글 엑셀 시트에 진료일마다 치료받은 내역, 의사나 간호사의 코멘트, 피검사 수치, 병원비 등을 정리했다. 남매 단톡방 공지에 구글 엑셀 시트 링크를 걸어두고 틈날 때마다 엄마의 상태를 읽어두라고 말했다. 제발 그런 응급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라면서.
소소
갑작스레 ‘엄마 돌봄’을 하게 된 케이(K)-장녀가 고령화사회에서 청년이 겪는 부모 돌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