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국립중앙의료원(가운데)과 미국 공병단 부지 모습. 연합뉴스
국립중앙의료원(중앙의료원)이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중증·응급진료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 규모로 병상을 늘리려던 계획이 기획재정부 반대에 부닥쳐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11일 중앙의료원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재부는 병원 이전과 건물 신축을 위한 사업비를 애초 요구보다 축소하겠다는 결정을 통보했다. 2021년 보건복지부와 중앙의료원은 의료원에 800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등 총 1050병상 운영에 필요한 사업비를 요구했다. 그러나 기재부가 적정하다고 본 병상 규모는 의료원 526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34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등 모두 760병상이다. 병상 규모가 줄면서 신축·이전 사업비 예산도 복지부와 중앙의료원이 요청했던 약 1조2341억원에서 1조1726억원으로 615억원가량 줄었다. 1958년 설립된 중앙의료원은 공간이 비좁고 시설이 노후화해 2003년부터 이전 논의가 시작됐다. 지난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을 계기로 중앙의료원이 중앙감염병병원으로 지정되면서, 병원 이전과 중앙감염병병원을 함께 짓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앞서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내 부지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일부 주민 반대 등으로 지지부진하다 2020년 4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의료원 인근 미국 공병단 터에 감염병전문병원을 포함한 중앙의료원을 짓자고 제안하면서 이전·신축 사업이 본격화됐다.
중앙의료원은 중앙·응급·중증외상·소아·분만 등 국민 생명을 좌우하는 필수의료 서비스를 상급종합병원 수준으로 제공하기 위해 1천 병상 이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중증·응급환자 치료에 필요한 다양한 진료과목 및 의료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 같은 신종 감염병 위기가 닥쳤을 때, 중증환자 치료를 위해서도 충분한 진료 역량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의료관리·예방의학)는 “민간과 공공 병원 의료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표준을 제시하고 주도하는 게 국가 중앙병원 기능”이라며 “서울 상급종합병원 대부분이 1천병상이 넘기 때문에 1천병상은 돼야 국가 중앙병원으로서 의료원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은 필수진료 과목 등 20개 이상 진료과목과 전문의를 갖추고, 치료가 어려운 입원환자 비율이 30% 이상이어야 한다. 현재 중앙의료원은 이러한 조건에 미치지 못하는 종합병원으로 분류된다.
복지부도 중앙의료원 병상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5월27일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중앙의료원은 이전 시 800병상 규모로 건립되고 중앙감염병전문병원 병상도 감염병 위기 대응에 충분한 수준으로 (재정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서 2021년 복지부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에서 중앙의료원의 응급·외상·심뇌혈관·소아·분만·치매 등 중증·필수의료 구심점으로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사업비를 줄인 데 대해 “(중앙의료원 신축) 지역에 대형병원이 몰려 있어 진료권 내 병상이 과잉 공급됐다”고 설명했다. 심혈관·응급 등 필수의료 분야는 현재 건강보험 보상(수가) 체계에서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이를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미 결정된 사업비 조정은 어려운 상황이다. 복지부는 “기재부와 사업비를 다시 협의하기보다 설계 공모 등을 우선 시작하려 한다”며 “해마다 기재부와 예산을 협의할 때 그간 사업성 검토에서 고려되지 않았던 부분을 추가로 설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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