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충북 청주시 식약처 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디지털치료기기 ‘솜즈’의 품목허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식약처 제공
정부가 불면증 치료 수단으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앱)을 공식 허가했다. 병원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은 뒤 약 대신 앱을 처방받아 행동 교정을 통해 불면증을 치료하는 방식인데, 이런 디지털치료기기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를 받은 건 국내 최초다. 의료 현장에 널리 사용되려면 적정 수준의 사용료 책정과 국민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15일 오유경 식약처장은 “국내 제조업체 에임메드가 불면증 증상 개선을 목적으로 개발한 디지털치료기기 ‘솜즈’(Somzz)의 품목허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디지털치료기기는 약과 주사 등 전통적인 의약품은 아니지만 디지털기술을 통해 장애나 질병을 예방·치료·관리하는 소프트웨어다. 의사 처방 뒤 사용해야 하고 치료 효과가 검증됐다는 점에서 단순히 건강을 관리해주는 헬스케어 앱과 다르고, 인체 전기자극 등을 통해 정신계나 면역계, 대사질환을 치료하는 전자약과도 다르다.
이런 소프트웨어가 의료기기로 인정받아 병·의원 치료 등에 쓰이려면 식약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솜즈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았다. 현재 전세계 14국이 이런 소프트웨어 디지털치료기기를 허가했으며, 불면증 치료기기 허가는 미국·영국·독일에 이어 한국이 네번째다.
솜즈는 의사가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인지행동 치료를 모바일 앱으로 구현했다. 의사가 병·의원을 방문한 환자에게 솜즈를 처방하면, 환자는 앱을 다운 받아 사용하게 된다. 환자가 수면시간과 환경 등을 기록하는 ‘수면일기’를 작성하면 앱이 수면의 질과 불면증 정도 등을 평가하고, 이에 맞춰 카페인·알코올 섭취 제한, 수면 공간의 자극 조절 등 개선책을 제시한다. 불면증을 과도하게 걱정하는 등의 심리를 교정하기도 한다. 이런 인지행동 치료법은 6~9주 동안 제공된다.
식약처가 국내 시험 기관 3곳에서 6개월 간 임상시험을 한 결과 솜즈를 사용한 환자의 46%가 불면증이 개선돼 수면일지만 쓴 대조군(12%)에 견줘 개선 비율이 높았다. 오유경 처장은 브리핑에서 “(일반적으로) 인지행동 치료법은 불면증 증상 개선 치료 초기단계의 비약물적 치료법인데, 솜즈는 이런 치료법으로 허가를 받은 것”이라며 “인지행동 치료가 효과가 없을 경우 약물 치료법으로 이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았다고 바로 솜즈가 상용화되는 건 아니다. 우선 보건복지부의 의료기기 고시, 건보 적용 여부 심사 등을 거쳐야 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 환자가 부담해야 할 기기 사용료가 다른 치료법에 비싸 자주 처방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디지털치료기기에 대해서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의사의 진료행위마다 가격을 매겨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와 다른 방식의 건보 수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병원 방문, 약 처방 횟수와 달리 건강보험공단이 환자의 앱 사용 빈도 등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는 “디지털치료기기가 쓰일 경우 처방된 앱에 대해서가 아닌 전체 치료 과정에 대해 수가를 지급해야 한다. 그래야 디지털치료기기가 다른 치료수단과 함께 완결적인 의료 체계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허가를 계기로 디지털치료기기들의 의료기기 품목 허가 신청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불면증 개선 용도의 다른 제품이 심사를 받는 중이고 30개 이상의 앱이 신청을 앞두고 있다는 게 식약처 설명이다. 특히 불면증·중독증상 완화 목적의 앱들이 주로 개발되던 것과 달리, 지난해부터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ADHD)나 발달장애, 경도인지장애 등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는 앱들도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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