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전북 익산에 사는 고립청년 이성현(가명·26)씨가 집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 박준용 기자
“유통기한 지난 냉동식품 나눔해주실 수 있나요?”
지난 1월30일 전북 익산,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마침 청년협동조합 활동을 하는 이완희(33)씨가 글을 발견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 같아 에스엔에스로 연락을 취했다. 예감은 맞았다. “식사는 하셨어요?”(완희) “네. 어떤 분한테 유통기한 지난 핫도그 받아서 먹었습니다. (중략) 제가 6원밖에 없네요ㅠ”
당근마켓에 도움을 호소한 이는 1997년생, 스물여섯 청년 이성현(가명)씨였다. <한겨레>는 지난달 27일 익산의 다가구주택 1층, 5㎡ 남짓한 성현씨의 원룸을 찾았다. 성현씨는 키가 140㎝ 남짓했고, 심한 피부 건선과 아토피를 앓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10일 완희씨가 처음 이 집을 찾았을 땐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고 했다. 건선이 중증으로 번져 진물이 흐르고 가피가 형성돼 있을 정도였다. “피부가 아파서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했어요. 어정쩡하게 서서 몸을 긁고 있었어요.”
성현씨는 지난해 말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한 뒤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1월 중순 기초생활수급자(생계·의료·주거) 신청을 했지만, 수급액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한달 반∼두달 남짓 시간을 버티기 어려웠다.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28만원인데, 세달치가 밀렸다. 당근 마켓에 도움을 요청하기 직전엔 수돗물로 끼니를 때울 정도였다. 보일러까지 고장나 한 달 이상 추위에 떨며 씻지도 못해 피부 질환이 더 심해졌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처럼 살았어요.”
이성현씨와 이완희씨가 처음 나눈 대화 내용. 이완희씨 제공.
7년 전 성현씨 부모님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보호자가 없는 만 18살 미만을 ‘보호 대상 아동’으로 보고 성인이 되어서도 ‘홀로서기’를 지원한다. 당시 성현씨는 지원 대상 연령보다 딱 한 살이 많았다.
일을 찾아 나섰지만, 키가 작은 성현씨를 채용하려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힘도 약하고, 기계 높이가 있어서 안 된다고 하셔서요.” 어렵게 취직해도 겨울에 피부 질환이 심해져 일하기 힘들어지면 쉽게 해고됐다. 가입기간 등 고용보험 조건에 맞지 않아 실업급여를 받아본 적도 없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다 일용직 일자리를 찾는 과정을 반복했다. 하지만 지난해 실직 뒤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최근 2∼3개월 간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던 이성현씨가 자신의 방에서 앉아 있다. 피부 치료 탓에 머리카락을 민 그는 사진 촬영에 앞서 후드를 올려 썼다. 박준용 기자
다행히 당근마켓에 ‘구조 신호’를 올린 뒤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지역의 한 병원은 성현씨의 입원 치료를 도왔다. 지자체는 시 자체 긴급 지원(40만원), 긴급생계비 지원(62만원)과 난방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눈 밝은 완희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성현씨의 경우 제도를 인지하지 못했고, 행정복지센터에서 안내받은 기억도 없다. 오쿠사 미노루 고립청년지원팀장(사단법인 씨즈)은 “반복해서 구직 도전을 하다가 채용되지 않거나 해고되면서 점차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이후 고립되는 청년이 적지 않다”며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지만 도움 받는 방법을 찾아나서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현(가명·26)씨가 전북 익산 시내 거리를 걷고 있다. 박준용 기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1년 청년 사회·경제실태조사 기초분석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만 18~34살 2041명 중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3.6%다. 보건복지부는 단전, 단수 등 39종의 입수정보를 통해 복지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있으나, 여전히 성현씨 같은 사례가 곳곳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8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된 성현씨는 지자체가 제공하는 자활 일자리(공공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다. 얼마 전부터 그는 본인처럼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을 도와주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졌다. “남 도와줄 때 성취감을 느낀 적이 있거든요.” 그는 올 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세상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뎌 볼 생각이다.
기초수급 받는데 두달…긴급복지지원 있지만 허점도
전북 익산의 고립청년 이성현(26·가명)씨가 당근마켓에 ‘구조 신호’를 올리기 전까지 상황을 되짚어보면, 정부의 요란한 복지 사각지대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점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성현씨는 1월 중순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한 뒤 실제 수급까지 한달 반이 걸렸다. 통상 자산조사 등 약 두달 정도가 걸리는 걸 감안하면 빠른 편이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급여를 신청했을 때, 공공기관은 일반적으로 30일,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60일 이내에 처리하도록 규정한다.
문제는 기초생활수급 신청자의 생계가 당장 막막할 때다. 이 경우 통상 행정복지센터(주민센터) 등에서는 보건복지부의 긴급복지지원 제도를 이용하도록 안내한다. 한시적으로 위기가구에 생활비·의료비·난방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다. 1인 가구 기준 소득이 155만8천원 보다 적고, 금융재산 600만원 이하 등 조건을 충족하면 된다. 1인 가구 기준 생계비 62만원을 최대 6개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홍보 부족으로 신청자와 담당자 모두 긴급복지지원 제도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신청해도 요건에 따라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긴급지원제도가 신청자에 한해서만 주로 진행되고, 지원 범위는 넓지만 문턱이 존재해 탈락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6일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를 보면, 긴급복지지원액과 인원수는 2019년 1592억원(54만5600명)에서 코로나19 이후 2020년 5085억원(147만명)으로 늘었다. 이후 2021년 4194억원(115만5600명), 지난해 2626억원(78만8600명)으로 지원액과 인원 모두 줄었다. 올해 배정된 예산도 3155억원 수준이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긴박한 상황에서 지원되는 긴급복지지원은 좀 더 폭넓은 재원확보가 필요하고, 현장 공무원에게 신속하게 지원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