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 누리집 갈무리
“너, 어떻게 이런 못된 병을 숨기고 결혼을 할 수가 있어. 내 딸 인생을 망쳐도 분수가 있지. 이게 무슨 꼴이냐고!”
지난 6일 방송된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 나온 대사다. 예비 사위가 난치성 질환인 크론병이라며 예비 장인이 한 말이다. 장모도 “이 병 유전도 된다면서. 이 결혼 자네가 포기해줘”라고 한다.
그러나 크론병은 ‘못된 병’도 ‘유전병’도 아니다. 크론병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대사에 시청자 게시판에 수많은 항의가 올라오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40여건의 민원이 접수됐다고 한다.
크론병이란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이다. 설사, 복통, 식욕 감퇴, 미열 등의 증상이 있다. 원인은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환경적 요인, 유전적 요인과 함께 소화관 내에 존재하는 세균에 대한 몸의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흡연도 원인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가족이 질병이 있는 경우 같이 앓는 경우도 있지만 유전병이라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주로 유럽에서 많이 발생하며 전세계 수백만명이 앓고 있는 병으로 알려졌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등을 보면 국내 크론병 환자는 2010년 1만2234명에서 2021년 2만8720명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20~30대가 절반을 넘을 정도로 젊은층에서 주로 발병하고 있다. 10대 환자도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서구의 식습관과 비슷해지며 발병이 증가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조기 진단으로 약물치료를 받아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현재로써는 치료를 통해 ‘완치’가 아니라 증상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의학계는 크론병이 치료를 잘 받고 관리를 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한 병이라고 말한다.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 시청자 게시판. 누리집 갈무리
질병에 대한 ‘낙인’ 우려
시정차 게시판에는
‘환우들 두번 죽이는 못된 드라마다’ ‘부모들은 하루하루 애가 잘못된 정보를 접할까 피가 마릅니다’ ‘어린 환우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줬다’ ‘고혈압, 당뇨, 암, 뇌졸중도 다 가족력 관련 있으니 유전병인가요?’ 같은 항의글이 이어지고 있다.
잘못된 정보로 환자에게 상처를 주고, 어린 환자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항의글을 관통하는 것은 사회적 낙인에 대한 우려다.
환자들은 복통과 설사 등으로 화장실에 자주 가고 병원 진료도 자주 받기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고 한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어린 환자들이 학교에서 따돌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섞인 글도 종종 눈에 띄었다.
대한장연구학회가 국내 염증성장질환(크론병·궤양성대장염) 환자 470명을 대상으로 2021년 11~12월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질환으로 인해 사회 및 직장에서의 차별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24.9%,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고 느낀다’는 응답도 34.9%에 달했다. 학회는 “질환이 실제로 환자들의 사회경제 생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질환 및 환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 해소 역시 필요함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언론·방송이 질병을 다룰 때
방송인·가수 윤종신은 2012년 방송에서 “관리를 잘하고 살면 큰 불편 없이 잘 살 수 있는 병”이라며 크론병 투병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윤종신의 고백이 크론병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고 한다. ‘미스터트롯’ 출연으로 유명한 가수 영기도 최근 크론병 투병을 공개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언론과 방송이 조현병 등 질병을 묘사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꾸준히 권고해왔다. 대중매체가 질병에 대해 잘못 전달할 경우 시청자의 선입견을 강화시켜 특정 질병을 앓는 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주인공 차정숙은 극중에서 크론병 환자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는 경력단절 여성 차정숙이 화면 밖 더 많은 이들의 마음도 보듬는 순간이 오길 기다려 본다.
2012년 2월 <에스비에스>(SBS)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애 출연해 크론병 투병 사실을 공개한 가수 윤종신. SBS 유튜브 채널 갈무리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