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이 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의료진들이 환자 정보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흉부외과는 원래 주변에서 다들 말려요. 제가 흉부외과를 경쟁해서 들어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지난달 20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흉부외과) 의국에서 만난 1년차 전공의 한지윤(25)씨의 목소리에는 의아함과 놀라움이 절반쯤 뒤섞여 있었다. 정원이 4명인 이 병원 흉부외과에 한씨를 포함해 5명이 지원해 경쟁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게, 흉부외과는 10시간 넘는 수술과 응급환자가 많아 의대생들의 ‘기피 과목’으로 꼽힌다. 실제 1994년 한해 57명이었던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자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26.1명으로 반토막 났다. 지난해 국내 전체 1535명이던 전문의 규모도 내년이면 자연 감소(은퇴 32명, 예상 배출 인원 21명)하기 시작한다. 심장 이식이나 대동맥 박리, 폐암 등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그랬던 흉부외과에 2005년(47명) 이후 18년 만에 처음 전공의 지원자가 40명을 넘으면서 숨통이 트였다.
“학생 때 흉부외과를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게 쉽진 않아요. 주변에서 다들 말리니까요. 그런데 실제 흉부외과가 어떤지 충분히 볼 기회가 있다면, 저처럼 흉부외과가 하고 싶었던 사람까지 기피하진 않을 거예요.”
지난달 20일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의국에서 만난 1년 차 전공의 한지윤(25)씨는 이 병원에서 인턴을 한 뒤 흉부외과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교육 여건’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한씨는 “저연차 전공의한테 환자를 보거나 수술방에 들어가 참관할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며 “(전공의들이) 다음에 더 잘하려고 퇴근 뒤 집에 가서 공부하는 교육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2021년 본원과 별도로 전공의를 뽑기 시작하면서 교육 환경 조성에 공을 들였다. 연 2~4회 기본적인 수술 기술 교육부터 모든 전공의에게 수련 기간 중 국외 병원 연수를 지원한다.
“1년차 때 매주 목요일 교수님이 과외하듯 강의를 해주셨어요. 전공의로선 신경 써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3년차 전공의 이혜주(32)씨 말처럼, 전공의들이 흉부외과 같은 곳을 기피하거나 중도 이탈하는 건 단순히 고단한 업무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교육을 받느냐는 전공의 중도 이탈에도 영향을 미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2017년 수련 포기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한 보고서(‘전공의의 수련포기 의도와 영향요인’)를 보면, 수련 과정이 전문의가 되기에 불충분하다고 답한 전공의 중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비율은 39.2%에 달해 ‘충분하다’고 한 전공의(8.0%)보다 5배 높았다.
이런 교육 여건에는 업무 분담이 필수다.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에는 수술 대신 중환자실과 입원환자 병실만 전담하는 전문의들이 따로 있다. 퇴원 환자 전화 상담의 70∼80%는 전담 간호사팀이 챙긴다. 1년 차 한지윤씨가 교육받느라 자리를 비워도, 시간에 맞춰 퇴근해도 흉부외과가 돌아가는 배경이다. 궁금한 점을 교수에게 물어볼 수 있고, 기다릴 필요 없이 간호사와 상담하면 되니 환자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교육 여건 강화와 업무 분담은 ‘매를 먼저 맞은 흉부외과가 자성한 결과’다. 올해 소아청소년과는 전공의 지원율이 25.5%(208명 정원에 53명 지원)까지 떨어져 대형병원이 입원 진료를 중단하는 난리를 겪었는데, 흉부외과는 14년 전인 2009년 지원율이 27.3%(77명 정원에 21명 지원)까지 바닥을 쳤다. 임청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56)는 “예전엔 병원이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 취급했던 적이 있었다”며 “종일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환자를 24시간 보니까 큐오엘(QOL, 삶의 질을 뜻하는 의료계 표현)은 많이 떨어졌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거기에 문제가 있었다고 반성을 하고, 극복하기 위해 흉부외과 차원에서 ‘레지던트(전공의)는 근로자이기 전에 피교육자’라는 개념으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흉부외과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학회 차원에서 모든 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수술 의사가 전국 20명 안팎인 선천성 소아 심장 질환 사례 등은 별도 교육을 운영 중이다. 병원들이 업무 분담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는 데엔 흉부외과 의료행위 시 2배로 보상하는 ‘수가 가산금’이 활용됐다. 가산금을 전문의와 간호사 인건비 등에 활용한 것이다. 김경환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장은 “처음에는 ‘왜 일하는 애들을 교육에 보내느냐’는 반발도 있었는데, 지금은 교수들이 협조해주고 있다”며 “전공의들에게 ‘미래를 위해 애쓴다’는 느낌을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임청 분당서울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맨 오른쪽)가 지난달 27일 회진을 하며 환자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제공
지역 ‘쏠림’은 난제…“병원들 전문의 채용 늘려야”
일부 지역과 병원 쏠림 현상은 풀어야 할 숙제다. 전담 전문의·간호사 등 인력이 부족한 지역과 병원은 더 전공의가 줄어드는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고착화할 우려가 있어서다. 올해 흉부외과 전공의 최종 합격자들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이 21명, 경기가 6명으로 전체 38명 중 73.7%가 서울·경기에 집중됐다. 그 외 대전과 대구에 각 3명씩, 부산과 광주에 각 2명씩, 충남에 1명이 합격했다.
‘전공의 업무 분담→교육 여건 강화→전공의 지원자 증가’라는 선순환을 만들어내려면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심장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지정받으려면 병원이 적정 수의 전문의를 고용하도록 해야 한다”며 “전문의와 전담 간호사 등 지원 인력을 늘려 전공의 업무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필수 의료 대책 중 하나로 고난도 수술이나 지역, 야간·휴일 등에 따라 수가를 더 지급하는 ‘공공정책수가’를 추진하고 있다. 이때 단순히 수가를 인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력 충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인력 기준과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민구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간호등급제(간호인력을 많이 채용한 의료기관에 더 보상하는 제도)처럼 환자 당 전문의를 몇 명 채용했을 때 수가(진료비 가격)를 가산해주거나, 병상 당 전문의 수 기준을 두면 병원도 채용을 늘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