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의료·건강

약물 부작용, 주삿바늘에 덜덜…아픈데 무섭기까지

등록 2023-06-25 09:00수정 2023-06-30 16:23

[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약물 불안과 공포

진통제 부작용 척추시술 포기
범불안장애·특정공포증 진단
약물·주사 종류와 관련 없어
불안 줄인 뒤 시술 성공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검색창에 ‘에스레터’를 쳐보세요.

50대 주부 미연(가명)씨는 고혈압과 고지혈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지만 다른 곳은 건강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약을 복용할 때마다 부작용에 예민해서 무척 고생을 합니다. 소화불량은 기본이고 두통, 구역질, 어지럼증, 근육통에 소변도 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에 대한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약의 부작용을 읽고 나면 어김없이 그 부작용을 경험했고 다른 부작용도 생기지 않을까 겁이 나서 결국 복용을 중단하게 됩니다. 감기약만 먹어도 소화불량과 어지럼증이 생기는 정도입니다.

미연씨는 몸에 문제가 있어서 약에 민감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있습니다. 매번 간 수치에도 이상이 없고 신장 기능도 정상이라고 하지만 대장내시경을 할 때마다 고역을 치릅니다. 하제를 복용하고 장을 비우는 건 일반인에게도 힘든 일이지만 미연씨에게는 어지럼과 온몸 저림이 함께 옵니다. 정밀 검진을 위해 자기공명영상(MRI)을 찍는 통 속으로 들어갔을 땐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져 결국 촬영을 중단했습니다. 주사 맞는 일도 그에겐 공포입니다. 독감 등 예방접종을 할 일이 생기면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어지러워서 쓰러질 지경이 됩니다. 주사약에 대한 과민반응이 아니었습니다. 주사액이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얼굴은 하얗게 되고 심지어는 주삿바늘만 보아도 공포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 투병 기억에 ‘만성 걱정’

그러던 어느 날 미연씨는 물건을 들다가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정형외과를 방문했고 척추에 디스크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통증이 심해서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비교적 간단한 척추 시술을 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미연씨는 진통제 때문에 구역·구토·어지럼증이 생겨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진단받은 지 3개월 만에 체중이 6㎏이 빠져 피골이 상접해졌습니다. 시술 날짜는 다가오고 공포감이 너무 커져서 결국 시술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통증이 커서 진통제를 복용하면 부작용 때문에 고통이 가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그를 꾸준히 지켜본 정형외과 의사는 미연씨의 불안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고 정신건강의학과에 협진을 의뢰했습니다. 혈액 검사 결과, 미연씨는 약물에 대한 특이 반응이나 약물 대사에 관한 이상이 없었습니다. 미연씨의 불안은 약과 주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걱정도 팔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걱정이 많았습니다. 미연씨 어머니도 무척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미연씨가 초등학교 때부터 조금이라도 학교에서 늦게 오면 안절부절못했고, 작은 기침이라도 하면 당장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달려갈 정도였습니다. 미연씨의 아버지는 오랜 기간 암 투병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미연씨가 항상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유였습니다.

미연씨는 범불안장애와 특정공포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범불안장애는 만성적 불안과 과도한 걱정을 나타내는 경우를 말합니다. 일상에서 겪게 되는 여러 사건이나 활동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함으로써 지속적인 불안과 긴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상적으로 △안절부절못하거나 △벼랑 끝에 선 듯한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거나 △쉽게 피로해지고 △주의력에 결핍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정신이 멍해지거나 화를 내기도 하고, 근육의 긴장, 수면 문제(잠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지속이 곤란한 불만족스러운 수면) 등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정공포증은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서 발생하는 공포를 특징으로 합니다. 이러한 공포는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이며, 지속적인 두려움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자신이 무서워하는 대상이나 상황을 최대한 피하려 하고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공포가 유발됩니다. 공포의 대상도 동물형(동물이나 곤충 등 생명체), 자연환경형(높은 장소나 물·폭풍), 혈액-주사-손상형(피를 보거나 주사를 맞거나 기타 의학적 검사를 받기), 상황형(대중교통·비행기·엘리베이터 등 밀폐된 장소, 운전 등)으로 다양합니다. 약물과 주사에 공포를 보이는 미연씨는 ‘혈액-주사-손상형’으로 진단됐습니다. 약물 부작용에 민감한 것도 약에 대해 미리 걱정을 많이 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약물 용량 서서히 늘려야

미연씨는 먼저 심리검사를 통해서 자신이 느끼는 증상이 불안·긴장과 관련이 있고 실제 약물이나 주사의 종류와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미연씨의 경우는 설명서를 정독하는 방식으로 약이 유발할 수 있는 세세한 부작용을 모두 확인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약물 부작용은 대부분 발생 확률이 낮습니다. 약물 복용에 불안이 있을 경우 담당 의사와 상의해 다른 환자들의 절반 용량으로 적게 복용하다가 점점 증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적은 용량으로 편하게 복용할 수 있으면 불안과 긴장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미연씨는 담당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진료 뒤 불안을 줄이는 약물을 복용하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엠알아이 검사를 받은 뒤 주사를 맞고 시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불안이나 긴장이 강한 분은 평소 긴장과 관련된 우리 몸의 신경인 교감신경계가 항진돼 있습니다. 교감신경계가 항진되면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소화관 활동이 저하되고, 땀 분비가 증가됩니다. 여기에 약의 부작용이 조금이라도 더해지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게 부작용을 느끼게 됩니다. 약물 부작용이 모두 이런 불안에서 시작되는 건 아닙니다. 간에서 약을 잘 대사하지 못하는 특이 체질을 가진 분도 있고 항생제 부작용이 있는 분도 있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합니다. 이런 분들은 미연씨와는 다르게 특정 약물에 대해서 심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부작용이 생기는 약물을 잘 알아뒀다가 진료 시에 담당 의사와 상의하면 도움이 됩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