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진(51)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예민한 사람’은 외부 자극에 민감한 사람이다. ‘매우 예민한 사람’은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자극적인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는 민감한 신경 시스템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미국 임상심리학자 일레인 에런) 인구의 15~20%가 이런 기질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전홍진(51)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우울증을 주로 진료하면서 예민한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올해 6월엔 예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두번째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을 펴냈다. 2021년 3월부터 <한겨레> 토요판에 생생한 사례들을 바탕으로 쓴 ‘예민과 둔감 사이’ 칼럼을 근간으로 하고 예민함을 강점으로 바꾸는 방법을 덧붙였다. 그는 초판 인세의 절반은 삼성서울병원에, 나머지 절반은 성균관의대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는 ‘매우 예민함’의 개념에 성격뿐 아니라 정신건강 요소가 관련돼 있음을 강조한다. 잘 관리하면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안, 우울, 트라우마, 분노와 연결돼 질병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병이 되어 병원에 찾아오기 전에,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을 잘 관리하고 주위 사람들도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책을 썼다고 했다. 그는 1997년 서울대병원 인턴을 시작으로 2008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임용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26년동안 3만명 가까운 이들을 진료했다. 이론과 임상 경험을 겸비한 ‘예민함 전문가’로서 책을 통해 ‘사회적 예방’을 꾀하는 셈이다.
지난 5일 전 교수를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연구실 한쪽 벽면에는 자살예방과 생명존중문화 기여에 대한 표창장(국무총리, 보건복지부 장관·2020년), 젊은 의학자상(대한신경정신의학회·2011년) 등 각종 상패와 위촉장 등이 진열돼 있었다. 그는 “출판 뒤 좋은 반응들이 나오고 있는데 ‘책을 읽고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됐다’는 반응이 제일 기쁘더라”며 웃었다.
―신간에서 핵심적으로 다룬 내용은 무엇인가요?
“겉으로 봐서는 잘 모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예민함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에 대한 내용을 이전 책보다 더 심층적으로 다뤘어요. 예민한 분들은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대인관계, 소리 등에 민감해요. 자기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결국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공황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그렇게 되기 전에 예민함이 선을 넘지 않도록 도와주고 나아가 예민함을 어떻게 하면 자신만의 능력으로 발휘할 수 있을지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심혈을 많이 기울였어요. 또 예민함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가족도 못지 않게 중요해요. 그래서 책에서 가족의 이야기를 많이 다뤘고요. 책 표지도 구성원들이 모두 비슷한 예민함을 가진 것을 상징하는 고슴도치 가족으로 만들었습니다.”
―책뿐 아니라 교수님이 출연하신 유튜브(
‘집순이·집돌이, 알고보면 예민한 사람?-나는 의사다 839회’ 조회수 145만회,
‘예민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닥터프렌즈’ 23만회 등)의 조회수도 매우 높은 편입니다. 예민함 주제에 사람들이 이렇게 호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살 유가족이나 외환위기 트라우마, 부부 간의 갈등도 책에 담았는데요. 이런 분들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 트라우마들이 굉장히 폭넓게 자리잡고 있어요. 게다가 우리사회가 따뜻하기보다는 경쟁적이잖아요. 예민한 분들이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걸 넘어서 서로 공감하고 도와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해요. 또 시대적 요인도 있는 거 같습니다. 우리사회가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었잖아요. 3만달러 이전과 이후는 산업 자체가 달라져요. 3만달러 이전에는 선진국이 만들어놓은 것을 잘 배우고 익혀서 국부를 이뤘잖아요. 이런 시대는 묵묵하고 성실하게 시키는 대로 일 잘하는 사람들이 잘 맞아요. 하지만 3만달러 이후 시대에는 남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걸 잘 잡아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인 사람이 필요해요. 예민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입력되는 게 많기 때문에, 대화하다 보면 남다른 발상에 정말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들이 있어요. 이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창의력이 필요한 현재 시대에 필요한 이들입니다..”
―예민함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우선 자신이 예민하다는 걸 잘 압니다. 또 그 예민함이 선을 넘지 않도록 하는 확실한 ‘안전기지’가 있어요. 안전기지는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볼비가 제시한 이론으로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으며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대상’을 의미해요. 안전기지는 부모님이나 반려동물, 적성에 맞는 직업, 운동 등 다양합니다. 그리고 가족이나 주변 환경을 안정시킵니다. 이것들이 모두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고생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자신의 예민성이 역치를 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거죠.”
―예민함이 그렇게 관리가 잘 되지 않은 경우에는 문제가 되겠죠?
“관리가 잘 안 되면 사람의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돼버려요. 대표적인 사례가 관계없는 걸 자꾸 연결짓는 ‘관계 사고’예요. 예를 들어 배우자의 스마트폰에 광고 문자가 왔을 뿐인데 이에 대해 배우자가 바람피운다고 생각하거나, 직장에서 상사의 표정이 안 좋으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식이에요. 이렇게 되면 쓸데없이 본인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결국 방전돼서 퇴근할 때쯤 되면 기진맥진해지고, 주말에 가족들과 외출도 못하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잠만 자게 됩니다. 그러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도 안 만나는 방향으로 가면 고립되고, 단절되어 더 상황이 악화됩니다.”
전홍진(51)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교수. 이정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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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방전을 막고 예민함을 성공적으로 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앞서 말씀드린 안전기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긍정적인 자동적 사고’도 중요합니다. 예민한 분들 중에는 무슨 일이 생겨도 해봐야 안 되고, 사는 게 무의미하다는 식의 ‘자동적인 부정적 사고’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러한 부정적인 자동적 사고를 긍정적인 자동적 사고로 전환시켜야합니다. 나의 부정적 사고를 1~10번까지 쭉 적어보고, 이를 대체하는 ‘나에게는 남들에게는 없는 OO한 장점이 있다’,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는 나를 향한 게 아니고 그 사람의 성향과 관련이 있다’ 등 긍정적인 자동적 사고를 정리하고 익히면 마음이 안정됩니다. ‘적당한 좌절’도 필요합니다. 밥을 바로 먹고 싶은데 10~20분 정도 참았다가 먹거나, 물건을 당장 사고 싶지만 좀 기다렸다가 사는 식입니다. 매우 예민한 사람들은 견딜 수 있는 자극의 정도가 처음에는 낮은데 이런 식으로 마음의 맷집을 키워가는 겁니다. ‘체계적 탈감작법’도 있습니다. 두려움을 차례차례 줄여나가는 방법인데요. 대인 관계가 힘들다면, 가장 편한 가족들과 먼저 대화를 나누고, 그 다음 단계에는 친한 친구들과, 그 다음에는 잘 모르는 사람과, 그 다음에는 모르는 사람 여러 명과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단계를 점점 높여가면서 성취의 기쁨을 느끼고, 자신감을 길러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신의 예민함을 잘 다룰 수 있게 되고 능력으로 배양하면 예민함이 숨겨야 할 단점이 아니라 자신만의 장점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책 부제에 ‘뇌과학’이 언급돼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예민함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우리 이마 부분에 전두엽이 있습니다. 전두엽은 본능이나 충동을 누르는 기능을 합니다. 또 뇌 가운데에 사과같이 둥그런 데가 변연계인데 여기서 본능과 충동을 만들어내고 공포를 담당합니다. 예민한 분들은 변연계가 더 많이 작용해서 기억들이 불안이나 공포와 연결되고, 그런 기억들이 훨씬 많이 저장돼요. 지금 힘든 일이 생기거나 과거에 트라우마를 겪게 한 사람과 비슷한 사람만 봐도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것처럼 변연계에서 불안과 공포가 막 올라와요. 그럼 전두엽에서 이걸 억제시켜요. 그런데 우울증이 있으면 억제가 안돼요. 우울증의 특징이 음주와 마찬가지로 전두엽의 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죠. 이런 경우에는 (긍정적인 자동적 사고처럼) 좋은 기억을 자꾸 넣어서 디톡스를 해야 합니다.”
―2017~2021년 보건복지부 위탁 중앙심리부검센터 센터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자살의 70%는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하는데요. 지난해 20대 자살 사망률이 증가했다는데, 어떻게 보셨을까요?
“코로나19 이후 나타난 현상이고, 한국뿐 아니라 외국도 그렇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3년 동안 학교도 못 가고, 아르바이트도 못하는 등 고립·단절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자칫 도박이나 약물 등 어려움에 빠지기도 하는데요. 이분들은 사회적인 네트워크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안전기지와 좋은 대인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사회가 여러가지 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교수님의 몸과 정신 건강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실까요?
“저는 천직이라서 그런지 환자분들을 포함해 여러분들을 만나고 있는데 에너지 소진이 많이 되지 않는 편입니다.(웃음) 이분들 얘기를 듣고 있으면 공감도 되고, 도와드리고 싶은 생각도 들고요. 일이 흥미로워서 직업이 저의 안전기지가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교 때부터 테니스를 좋아해서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에는 매주 서너 시간씩 테니스를 칩니다. 또 가족들과 맛집 찾아다니며 맛있는 것도 먹고요.”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