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이 12일 국회 앞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뼈대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제공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가운데, 이 법안의 필요성을 두고 의료계·시민사회 내부에서 찬반이 부딪치고 있다. 실손보험 청구 절차가 간편해지면 미청구 보험금이 줄어드는 효과가 기대되지만, 의료 남용을 유발해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한다는 반발도 거세다. 환자의 개인정보 인권 문제도 제기된다.
한국소비자단체연합과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비자가 병원에 진료비를 낸 뒤 보험사에 별도로 보험금을 청구해야 하는 불편함이 없어져야 한다”며 “소비자 편익·권익 증진을 위해 보험업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3일 전체회의를 열어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 개정안을 심사했으나,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의결하지 않았다.
개정안은 병원이나 약국이 실손보험 가입자 요청에 따라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에 전송하게끔 한다. 지금은 가입자가 의료기관에서 진료비 내역서·진단서 같은 종이 서류를 떼어 보험사에 이를 팩스·이메일·우편 등으로 보내야 한다. 이 절차가 번거로워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거나 청구 기한(3년)을 넘겨 보험금을 받지 못하는 가입자들이 많다는 지적이 일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건보공단·보험사 통계를 근거로 계산한 결과, 지난해 미지급된 실손보험금은 2512억원으로 추산된다.
반면 보건의료 단체들은 이 법안으로 실손보험 청구가 활성화돼 의료기관들이 고가의 진료를 권하기가 더욱 쉬워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건강에 불필요한 의료 남용은 물론, 가입자들의 병원 가는 횟수가 늘면서 건보 재정까지 악화한다는 얘기다. 보험사에 쌓이는 전산화된 진료·건강 기록이 환자들의 보험료를 올리거나, 다른 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거부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이날 의견문을 내어 “보험사가 전자 형태로 집적된 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해 (가입자로 받을) 환자를 골라내고, 사업적 이익을 극대화한 새로운 보험상품을 개발할 수 있다”며 “민간 보험사들의 숙원 사업이던 이 개정안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도 12일 성명서에서 “보험사에 (진료기록 등을) 전송 과정에서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정보 유출의 책임을 둘러싼 분쟁도 초래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의료계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할 것을 (정부·정치권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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