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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걷기로 재발 극복 운전사 도전”

등록 2006-03-28 17:16수정 2006-03-28 18:57

■ 병과 친구하기 ■
류마티스 관절염 엄옥성씨

“좌우지간 걸어다니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고 살고 있어요.”

지난 2003년 5월, 류마티스 관절염이 재발해 다리를 절뚝거리고, 주먹이 쥐어지지 않는 등 정상생활을 못했던 엄옥성(52)씨는 걷기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긴 끝에 2년여만인 지난해 7월께 정상인과 같은 수준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그의 주치의인 경희의료원 류마티스내과 이연아 교수가 “신기하다”고 말했을 정도로 빠른 회복이었다.

서울 중랑구 신내동 검문소 근처에서 살고 있는 그는 어지간한 거리는 버스를 타지 않는 등 하루에 적어도 1시간 이상씩 걸어다니고 있다. 낮 시간대에 걷지 못하면 캄캄한 밤에라도도 꼭 그날의 걷기 정량을 채운 뒤에 잠자리에 든다. 중랑구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40분 코스와 봉화 역에서 중화 역을 지나 망우리 금란교회를 거쳐 집으로 오는 2시간 코스는 그가 종종 애용하는 길이라고 한다. 등산, 줄넘기와 같은 운동을 하고도 싶었지만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좋지 않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오로지 걸을 뿐이다.

“갑자기 발가락 통증이 발생하는 등 류마티스 관절염 증상이 다시 나타났을 때 너무 놀랐어요. 처음 발병했을 때 팔꿈치를 제외하고 온몸의 관절이란 관절은 모두 아파 4년간 누워 지냈던 악몽이 되살아난거지요.”

그의 악몽은 두 딸에 이어 막내아들을 낳은지 1년 가량 지났을 때인 1989년 7월에 시작됐다. 통증과 함께 발가락을 들어올릴 수 없고, 왼쪽 발이 뒤로 젖혀지지 않는 증상이 갑자기 생겨 동네의원을 찾았다.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고열이 나고 통증이 무릎 부위로 퍼져나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는 류마티스 관절염이 급성으로 찾아온 바로 그 날 밤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거실로 나가 소파에 앉아 다리를 바라보니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르듯이 살갗이 부어오르는게 보였어요. 뒤이어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 거실 바닥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웠는데 그것이 4년간 ‘누워 생활하기’의 시작이었지요.”

그가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리게 된 이유는 분명치 않다. 다만 당시 입원치료를 받았던 한양대병원의 류마티스 관절염 전문가인 김성윤 박사의 말이 자신에게도 해당할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여성한테 생기는 류마티스 관절염의 상당수가 부실한 산후조리 탓이라는 것이다. 그는 1985년 둘째 딸을 낳았을 때 상가 건물에서 완구점을 운영하면서 가게에 딸린, 난방이 안되는 방에서 먹고자고 했던 것이 문제가 된 것으로 짐작한다. 또 2남6녀인 형제자매 가운데 여자들이 모두 관절이 좋지 않은 점을 보면 가족력도 있을 수 있다고 추측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에 처음 걸렸을 때, 제 나이가 38살이었어요. 갓 돌이 된 막내아들을 포함해 애가 셋이나 있었구요.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면서 ‘애기를 위해서도 난 살아야 돼’,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라고 수없이 되뇌곤 했지요.”

30대 중반 4년간 누워지낸 악몽… 방심하다 40대말 병 도져
하루 1시간 이상 걷기로 건강 되찾고 1종면허 따고 버스회사 취업 ‘노크’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는 움직이지 않으면 관절이 굳어 아예 못쓰게 된다는 말을 들은 그는 유일하게 통증이 없는 팔꿈치를 이용해 등밀이로 방바닥을 이리저리 쓸고 다녔다. 그렇게 3년을 보낸 뒤 혼자 일어나 앉았고, 벽을 붙들고 일어나 벽, 소파 등을 짚고 온집안을 옮겨 다닐 수 있게 됐다.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나와 걸어다니는 연습을 하기까지는 그로부터 또 1년이 더 걸렸다. 방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 지내는 식물인간과 같은 생활을 청산하는데 만 4년이 걸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방심했다. 1995년께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자 자신감에 넘친 나머지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를 중단한 것이다. 언제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았느냐는 듯한 생활은 끝없이 계속 될 것만 같았지만 2003년 5월에 끝이 났다. 병이 재발한 것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에 처음 걸렸을 때는 남편이 월급을 꼬박꼬박 타오는 등 가정형편이 어렵지 않았는데 재발했을 때는 상황이 아주 달랐어요. 외환위기 때 남편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집을 날리고 전셋집도 줄여가던 중이었기 때문이죠.”

재발한 류마티스 관절염을 온힘을 다해 극복한 그는 대학 4학년인 큰 딸과 고교 3학년인 막내아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최근 ‘밑천이 거의 안드는 사업’에 착수했다. 대형버스를 몰 수 있는 1종 면허를 남편과 함께 따는데 성공해 마을버스 등 운수업체에 취업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래도 운전연습 비용 정도의 밑천은 투자를 해야 하기에 10년간 부어온 보험을 해약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버스회사에서 나이를 문제 삼아 채용을 거부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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