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지법 “기준 위반 수치·기간 짧고 암유발 물질 아니다” 시쪽 손들어줘 시민·환경단체 “항소” 반발
자치단체가 수돗물에서 인체유해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나왔다고 속여 수돗물을 공급했다고 하더라도 유전적 변이나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 아니라면 주민들한테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 나와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울산지법 민사3부(재판장 하현국)는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천상·구영리 주민 560여명이 “건강상 유해 무기물질인 보론(붕소)이 기준치 이상 포함된 수돗물을 공급받아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며 울산시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보론은 유전적 변이나 암을 유발하는 물질임이 확인되지 않았고 먹는물 수질기준상 규제기준은 0.3㎎/L이지만 세계보건기구의 권장치는 0.5㎎/L인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 그 기준을 벗어났다고 해서 환경권이나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보론이 함유된 부적합한 수돗물을 공급했는데도 피고가 그 수치를 낮게 조작해 발표해 알권리를 침해했다는 원고의 주장도 보론의 수질기준 위반 수치나 기간이 비교적 짧고 갈수기에 해당하는 점 등으로 미뤄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울산환경운동연합과 주민들은 “재판부가 울산시와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상수도 행정이 투명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계기를 완전히 차단해 버린데다 울산시에 면죄부를 준 셈”이라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서토덕 환경운동연합 운영처장은 “서울시민의 식수원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면 과연 재판부가 똑같은 판결을 내렸을지 의문이 든다”며 “다른 자치단체들이 시민 건강권과 직결된 수돗물 검사수치를 또다시 조작하는 범죄행위를 따라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앞서 2004년 2~4월 〈한겨레〉가 울산시의 수돗물 검사수치 조작 의혹을 잇달아 제기하자 시 감사반은 자체 조사를 벌여 상수도사업본부가 2001년~2003년 범서·농소정수장 원·정수에서 각각 보론과 발암물질인 테트라클로로에틸렌이 기준치 이상 나왔는데도 환경부엔 기준치 이하로 나왔다고 수차례 허위 보고한 사실을 적발하고 담당직원 11명을 징계했다. 이에 천상·구영리 주민 560여명은 2004년 11월 울산시를 상대로 주민 1명당 200만원씩 모두 15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법원에 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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