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소송’ 쟁점과 재판부 판단
재판부, 역학관계 첫 인정 불구 환자 ‘흡연 책임’ 무게
의료계, “환자에 입증 요구 부당…석면 사례 따라야”
의료계, “환자에 입증 요구 부당…석면 사례 따라야”
‘담배소송’ 흡연자 패소 판결 논란
법원은 25일 국내에선 처음으로 내린 담배소송 선고에서 흡연과 폐암의 역학관계를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폐암 발병과 흡연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케이티앤지의 손을 들어줬다. 의료계에서는 “모순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흡연-폐암 개별적 인과관계 입증 안 돼”=재판부는 “흡연자의 폐암 발생률이 비흡연자의 그것보다 훨씬 높은 통계 등을 봤을 때 흡연과 폐암의 일반적인 역학관계는 인정되지만, 이를 개별적 인과관계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역학적 인과관계는 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진 통계적 관련성을 나타낸 것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폐암의 발병에는 흡연과 같은 단일 원인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개인적, 환경적 요인들이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다요인설’과, 흡연은 폐암만 일으키는 게 아니라 폐기종과 방광염 등 여러 인체기관에 다양한 질병을 초래한다는 ‘다결과설’이 현대 의학이 취하는 암에 대한 관점”이라며 “이 사건 흡연자들의 흡연과 폐암 발병 간 인과관계의 고리를 자연과학적으로 모두 증명하는 것 자체가 곤란하거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담배의 중독성을 강조한 원고 쪽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흡연은 정신병적 상태나 의식 이상으로 인한 비자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흡연자 자신의 판단에 의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한국 성인 남성의 흡연율이 1980년 79.3%에서 2006년 49.2%로 감소한 사실, 니코틴 의존을 이유로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나 행동치료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점 등을 들어, “흡연은 니코틴 의존에 따른 작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4일 선고 뒤 법정을 나서는 피고 케이티앤지쪽 박교선 변호사.이정아 기자 leej@hani.co.kr(왼쪽)/패소 판결이 나온 뒤 법정을 나서는 원고 쪽 배금자 변호사.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소송 7년이나 걸린 이유
‘연구 문건’ 정보공개 소송만 3년
‘법관 기피신청’으로 사건 재배당
담배소송 일지
엇갈리는 외국 사례 미, 환자 ‘520억원’ 승소
일·프랑스·독에선 패소
뉴욕, ‘순한 담배’ 집단소송
‘사상 최대 188조원’ 진행중 미국에서 흡연 피해 소송은 1950년대 처음 시작된 이래 80년대 말까지 담배회사 승소로 모두 귀결됐다. 판결에선 흡연자의 책임이 강조됐다. 90년대 이후 법원이 담배회사가 폐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중을 속여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회사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종종 나왔다. 하지만 일본과 프랑스, 독일 등에선 여전히 흡연자 책임에 무게를 두고 담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200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40년간 담배를 하루에 두 갑씩 피우다 폐암에 걸렸다며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를 상대로 소송을 낸 리처드 뵈켄의 손을 들어주었다. 뵈켄은 5550만달러(약 520억원)를 배상받았다. 법원은 담배가 치명적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필립 모리스가 알면서도 소비자에게 기만적 마케팅을 펼쳐왔다고 판시했다. 필립 모리스가 ‘순한(light) 담배’란 표기로 애연가를 속였다고 제기된 101억달러 짜리 소송은 담배회사 승리로 끝났다.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11월 “필립 모리스가 라이트, 저타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인체에 해롭다는 점을 명시해, 공정거래법과 주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일리노이주대법원의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뉴욕 연방지법은 지난해 9월 ‘순한 담배’ 흡연자들에게 최대 2000억달러(약 188조원) 규모의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 현재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담배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지난해 2월 폐암 환자 6명이 장기간 흡연으로 폐암에 걸렸다며 일본담배회사(JT)와 국가를 상대로 낸 6천만엔의 손배소 상고심에서, 담배 회사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원심 재판부는 △흡연이 폐암 등을 일으킬 중대한 위험이 있으며 유해하다는 사실은 사회적 상식이고 △중독성이 술보다 훨씬 약해 본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금연할 수 있어 담배 제조ㆍ판매의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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