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김영순(39)씨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열린 ‘의료사고피해자 증언대회’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중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의료사고피해구제법’ 국회처리 촉구 증언대회
“내 나이가 팔십을 바라보고 있어 귀도 안 들립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의학 지식이 없다고 해서 병원 쪽이 부린 농간을 생각하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정규(74)씨는 비명에 죽어간 동생을 위해 단상에 올랐다고 했다. 9일 오후 의료소비자시민연대 등이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강당에서 연 ‘의료사고 피해자 증언대회’에 나선 것이다.
김씨의 동생(49)은 2002년 취객을 때리고 금품을 터는 아리랑치기를 당한 뒤 산기슭에 버려졌다. 종합병원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로 6시간 만에 숨졌다. 김씨는 “동생은 엉망으로 폭행당한 뒤 간 파열로 내출혈이 생겼는데, 병원은 이를 파악할 만한 검사나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이 소송을 낸 뒤 1심에선 ‘외견상 폭행당한 흔적이 없고, 만취 상태에서 다친 것으로 알았다’는 병원 쪽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여 패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병원 쪽에 40%의 과실을 인정해 1억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김씨는 “동생의 가슴 전부가 짓밟혀 함몰되고 얼굴은 피멍이 들었는데 폭행 흔적이 없었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며 “거짓 섞인 전문의학적 견해와 다투면서 6년 동안 재판을 하느라 가슴이 다 녹아 내렸다”고 말했다.
이날 증언대에는 둘째아이를 낳던 아내를 잃은 김영일(35)씨 등도 나섰다. 김씨는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궁 출혈 세 시간 동안 이뤄진 진료 기록을 찾으려 병원과 싸워야 했던 고통을 털어놨다.
이들의 증언과 병원 쪽의 주장에서 진실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레 가족을 잃은 뒤 의료 전문가 집단에 맞서 암호 같은 진료 기록을 뒤지며 ‘진실’을 찾아 헤매야 하는 고통은 증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연간 2천~3천건의 의료사고 상담을 받는 의료소비자시민연대는 지난 3월 두 주 동안 접수된 121건 가운데 진료기록을 입수한 20건을 분석한 결과, 환자가 의료진의 과실 여부를 입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강태언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의료계 40% 이상이 의료사고 관련 보험에 가입해 있지만, 환자 쪽이 과실 입증 책임을 지는 현 제도 때문에 보험으로 보상을 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날 증언대회를 주최한 시민단체들은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을 거듭 촉구했다. 여야 의원들과 시민단체가 마련한 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다시 법안심사소위로 돌아가는 등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법안은 의료사고에서 의사가 과실 없음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어, 정기국회 처리 여부가 주목된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