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4년 7개월 만에 수입된 미국산 LA갈비 등 뼈있는 쇠고기가 검역을 위해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 코리아냉장에서 국립수의검역원 관계자들이 살펴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추가 광우병 발병해도 단독으로 수입중단 못해
30개월령 이상 허용 SRM 기준완화도 상식밖
30개월령 이상 허용 SRM 기준완화도 상식밖
지난해 4월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은 처음부터 실패를 예고한 협상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일정에 맞춰 열린 협상은 결국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인 ‘정치적 결단’으로 타결됐고, 그 내용은 예상을 뛰어넘는 개방과 검역주권의 포기였다. 합의 내용을 담은 수입위생조건 곳곳에 검역주권을 제한하는 독소조항이 발견됐고, 협상 과정에서 우리 협상단이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들도 언론보도 등을 통해서 드러났다.
특히,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병해도 우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수입 중단 조처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수입위생조건’ 5조는 명백한 검역주권 침해로 꼽힌다. 세계무역기구(WTO) 위생·검역협정은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국민건강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으면 수입을 잠정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
일본이나 대만, 멕시코 등에서는 아직까지 금지하고 있는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허용해준 과정도 허점투성이였다. 광우병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면 동물성 사료에 대한 사용을 막아야 하는데, 정부 협상팀은 미국 쪽이 ‘강화된 사료금지 조처’를 이행할 때 월령 제한을 푼다는 방침에서 후퇴해 공포 시점부터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로 분류해 식용 판매를 금지하고 있는 부위에 대한 수입을 허용하는 상식 밖의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당시 국회 청문회에 참석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왜 미국보다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의 기준이 완화됐느냐”는 질의에 내용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그렇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후 정부 스스로 관련 조항의 문제를 인정하고, 통상교섭본부가 나서 미국과 추가협의를 통해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의 기준을 미국과 똑같이 재조정했다.
협상 타결 뒤 수입위생조건을 농식품부 장관 고시로 확정하는 과정에도 부실이 이어졌다. 시간에 쫓겨 협상을 하다 보니, 협상 타결 당시에는 수입위생조건 영문 합의문만 만들어 양쪽대표가 서명을 했다. 한글 합의문은 협상 타결 2주 뒤에 문구를 확정하고 양쪽이 서명한 문서를 교환했다. 이 때문에 한글 합의문이 나오기도 전에 영문 합의문을 우리 쪽이 일방적으로 번역한 뒤 미국 쪽과 문구 조정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안예고가 이뤄졌고, 뒤늦게 확정된 한글 합의문의 핵심 조항 중 일부 문구가 입안예고한 수입위생조건과 다른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