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비정규직 등 병가 못내고 혼자 ‘끙끙’
노동계 “정부 나서 공무원 수준 대책 세워야”
노동계 “정부 나서 공무원 수준 대책 세워야”
전자제품 애프터서비스 업체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39)씨는 지난달 ‘신종 인플루엔자 A’(신종 플루)에 걸렸다. 하지만 정작 김씨를 힘들게 한 것은 신종 플루가 아니라 직장이었다. 그에게는 유급인 병가를 낼 권리가 없었다. 김씨는 법적으로 개인사업자 신분인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이다. 결국 2주 동안 무급휴가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수입이 줄어 살림살이도 빠듯해졌다. 그는 “업무 중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컸지만, 회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4일 신종 플루가 확산되면서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비정규직, 특수고용직 등 신분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일부 특수고용직들은 병가가 많으면 업무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까봐 억지로 출근하기도 하고, 병원·지하철 등에서 일하는 청소 노동자들은 보호장구를 지급받기는커녕 마스크도 개인이 구입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미관상 좋지 않다며 회사 쪽이 막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상당수 기업에서는 병가를 허가하기에 앞서 진단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등 저임금 노동자는 비싼 검사비를 내고 확진을 받아 진단서를 내기보다는 증상을 숨기기에 급급하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진단서 없이도 감기 증상만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병가를 쓸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무원 복무관리 지침’에 준해 각 기업들이 비정규직·특수고용직에 대한 차별 없이 신종 플루 사후 대처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신종 플루에 관한 공무원 지침을 보면, 신종 플루 확진환자에게는 최대 60일까지 유급 병가를 주고, 의심환자나 가족이 감염된 공무원에게는 진단서 없이도 1주일 동안 유급 공가를 주도록 했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직장에서 신종 플루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개인 책임으로 미루는 것은 부당하다”며 “정부가 나서 공무원 지침 수준의 표준적인 사후 대처 방법을 제정해 권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