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간호사가 25일 오후 어두컴컴한 대구 중구 남산동 대구적십자병원 내과병동 중환자실을 둘러보고 있다. 대구/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구적십자병원 개점휴업 “돈 안된다고 문 닫다니”
적십자비 지원 거의 없고 정부도 공공의료 무관심
적십자비 지원 거의 없고 정부도 공공의료 무관심
강성호(37·가명)씨와 파라비즈(33)는 대구 중구 남산동 대구적십자병원의 단골 환자였다.
산업재해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강씨는 12년 동안 병원이 문을 여는 날은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와 재활치료를 받왔다. 파라비즈도 공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친 뒤 1년 넘게 주말에 물리치료를 받아왔다. 그런데 이들은 더는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됐다. 지난 24일 마지막 남은 의사가 떠나면서 병원은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없는 사람들이 찾는 공공병원이 돈이 안 된다고 문을 닫으면 우리는 어떡합니까?” 전동휠체어를 타고 마지막으로 물리치료실을 둘러본 강씨는 울먹였다.
이 병원을 믿고 찾던 연간 2만명에 이르는 이주노동자들의 처지는 더 딱하다. 파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 파라비즈도 다음달부터는 이 병원에서 허리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됐다. 그는 “다른 병원에선 이주노동자를 꺼릴 뿐만 아니라 치료비가 비싸서 물리치료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이 병원 입원 환자의 68.4%를 차지하는 의료급여 수급자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부 지원으로 치료를 받는 노숙인, 쪽방거주자, 새터민 등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일반 병원에선 대체로 푸대접받기 일쑤다. 심지어 입원을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환자들이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기를 꺼리는데다 병원 수익에도 큰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최창규 대구적십자병원노조 지부장은 “이주노동자와 홀몸노인들을 돌려보낼 때는 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때 대구적십자병원은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등 8개 진료과목을 갖추고 있었으나, 지난해부터 진료과목을 하나씩 줄이다가, 이젠 진료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150명이던 직원은 55명으로 줄었고, 남은 직원들도 열달치 급여를 받지 못한 상태다.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적십자병원을 줄이지 말고 유지·확대하는 게 좋다”고 말했지만, ‘말뿐’이었다. 직원들은 이주노동자들의 무료 진료만이라도 맥을 이어가려고 다른 병원을 찾아가 협조를 구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병원’으로 불리는 적십자병원은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 등 영리보다는 공익을 위해 운영하면서 재정수지가 계속 악화돼왔다. 대구적십자병원의 경우, 지난해 18억2000만원의 적자를 내는 등 누적적자만 116억원에 이른다. 전국의 적십자병원 6곳 가운데 4곳이 해마다 30억~50억원의 적자를 내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대한적십자사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2008년 적십자사는 적십자병원 6곳에 모두 3억6500만원을 지원했는데, 이는 국민이 낸 적십자회비 479억원의 0.8%에 그친 수치다. 정부도 시설과 장비에 대한 지원을 벌이긴 했지만 누적적자 해소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이나 공공성 확충에는 힘쓰지 않았다.
정백근 경상대 교수(예방의학)는 “적십자병원의 적자는 취약계층 진료 등 공익 서비스로 발생한 적자”라며 “정부가 해야 할 사업을 적십자병원이 대신하고 있으니, 적십자사와 함께 정부도 적자 보전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박주희 기자, 김소연 기자 hope@hani.co.kr
정백근 경상대 교수(예방의학)는 “적십자병원의 적자는 취약계층 진료 등 공익 서비스로 발생한 적자”라며 “정부가 해야 할 사업을 적십자병원이 대신하고 있으니, 적십자사와 함께 정부도 적자 보전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박주희 기자, 김소연 기자 hop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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