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의학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요의 계절,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가 지나갔다.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못다 한 얘기를 나누면서 따뜻한 정을 느끼고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추석이라고 해서 기분이 마냥 즐겁고 유쾌하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꽉 막힌 도로에서 오랜 시간 운전으로 지쳐버렸거나 명절 음식 준비와 손님맞이에 기진맥진한 적이 있는 사람 등 명절만 되면 ‘녹초가 되는’ 경험을 가진 이들도 많다.
여기에서 녹초는 ‘녹은 초’를 뜻하며, ‘녹초가 되다’의 사전적 의미는 초가 녹아내린 것처럼 흐물흐물해지거나 보잘것없이 된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전적인 의미보다는 ‘아주 맥이 풀어져 힘을 못 쓰고 늘어진 상태, 피곤해서 힘이 빠진 상태’의 의미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기혈순환 장애’와 스트레스이다. 오랜 시간 운전을 하거나 여러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같은 자세를 긴 시간 동안 유지하게 되는데, 이때 우리 몸의 전체적인 기혈순환과 신진대사가 원활해지지 않고 근육이 쉽게 굳어 여러 근육에서 통증이 생긴다. 또 과도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고 이를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할 경우, 기가 울체되고 기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피로, 두통, 근육통, 답답함 등 각종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런 증상을 막기 위해서는 스트레칭이 효과적이다. 운전이나 음식 준비를 하면서도 한 자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스트레칭을 해서 뭉친 근육을 이완시켜주면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지압도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다. 어깨가 많이 뭉친 경우에는 목부분의 척추인 경추 7번에서 견갑골의 바깥쪽 끝부분으로 높이 도드라져 있는 견봉을 연결하는 선의 중간인 견정혈을 지압하는 것이 좋다. 또 허리가 많이 뭉쳤을 때에는 배꼽과 같은 높이의 척추에서 양쪽으로 손가락 2마디가량 떨어진 지점인 신수혈을 지압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한방차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잘 말린 귤껍질인 진피나 향부자는 기를 조절하고 울체를 풀어주는 효능이 있으므로, 이를 차로 끓여 마시면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또 갈근차의 경우, 목과 어깨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숙취를 해소하는 효능이 있다. 만약 피로나 근육통, 스트레스가 심할 때에는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피로의 원인을 진단받고 원인에 따른 적절한 조치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추석이 지난 뒤 ‘녹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는 명절을 긍정적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육체적으로는 충분한 휴식과 스트레칭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민족의 최대 명절을 맞이해 주변을 되돌아볼 수 있는 풍성하고 여유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 역시 필요하다. 여정구/다봄한의원 의정부점 원장·청년한의사회 학술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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