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 1종만 남기고 2종은 폐지 추진
수급자 부담 인상도…시민단체 “의료빈곤층 늘리는 개악”
수급자 부담 인상도…시민단체 “의료빈곤층 늘리는 개악”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빈곤층의 의료급여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물론 중장기적인 계획이지만, 시민단체들은 공공부조인 이 제도의 설계가 잘못되면 수십년 동안 빈곤층의 삶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9일 복지부와 보사연 ‘빈곤정책 제도개선 기획단’의 ‘기초생활보장급여 중장기 개편안’을 보면, 정부는 현재 의료급여 1종과 2종 가운데 1종만 남기기로 했다. 의료급여는 빈곤층의 의료비를 정부가 대신 지급해주는 제도다. 노인·환자 등 ‘근로 무능력자’ 판정을 받은 의료급여 1종 수급자들은 현재 값비싼 비급여 항목을 제외하고는 외래 진료 때 1000원만 내면 된다. 입원비와 약값도 무료다. 하지만 제도가 개편되면 외래 진료 본인 부담금은 1500원으로 오르고, 입원비와 약값도 각각 5%씩을 내야 한다.
김창보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실장은 “지금도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등으로 1종 수급자가 입원할 때 내는 본인 부담금이 전체 의료비의 8~15%나 된다”며 “여기에 법정 본인 부담금 5%를 더 부과하면 빈곤층이 내야 할 돈이 전체 의료비의 20% 정도까지로 늘 수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보사연이 낸 ‘의료비 과부담이 빈곤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국민 10명 중 1명 이상이 의료비 때문에 의료 이용을 포기한 경험이 있었고, 특히 저소득층은 이 비율이 4~5명 가운데 1명꼴이었다. 그만큼 저소득층에게 본인 부담 의료비 인상은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수급자들이 대거 탈락할 가능성도 있다. 개편안은 현재 의료급여 2종 수급자를 원칙적으로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기로 했다. 학생·한부모 등 근로능력이 있어도 개인사정 때문에 당장 돈을 벌 수 없는 사람들의 경우 지금은 의료급여를 받고 있지만, 앞으로는 건보료를 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의료급여 축소 우려가 나오는 것은 정부의 개편안이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생계, 주거, 의료, 교육급여를 일괄 지급하는 현행 제도를 바꿔, 각 급여별로 쪼개서 필요한 것만 지원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고령화의 영향으로 국가재정 지출이 증가할 게 뻔한 상황에서 ‘급여 일괄 지급 체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는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급여 미지급금이 매년 1500억원씩 발생하고 있다”며 “의료급여 수급자 가운데는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많고,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특별한 의료 수요가 없는 이들이 많아 큰 문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정숙 활동가는 “지금도 우리나라 빈곤층의 7%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집계되는데, 2종 수급자를 없애면 의료 빈곤층이 더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가 재정을 늘리기보다는 수급자를 줄이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